[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고대 로마인은 어떻게 와인을 마셨을까

기사등록 2022/09/03 06:00:00

최종수정 2022/09/03 06:10:42

[서울=뉴시스] 폼페이에서 출토된 암포라(항아리). 와인 등을 담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사진=위키피디아 캡처)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폼페이에서 출토된 암포라(항아리). 와인 등을 담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사진=위키피디아 캡처)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탈리아 사람들은 “와인이 없는 식사는 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미국의 금주법 시대에도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 가정에는 가내 소비를 조건으로 와인 양조를 허락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와인 사랑은 2500년전 고대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 와인의 역사는 BC 8세기경 고대 로마가 태동할 즈음부터 시작됐다. 그 무렵엔 지금의 토스카나를 포함하는 이탈리아 반도의 북·중부 지역은 에트루리아가, 남부 지역은 그리스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 당시 이들은 이미 질 높은 와인을 생산하고 있었고, 이베리아 반도와 지금의 프랑스 영토인 갈리아 지역까지 와인을 수출했다. 또 포도나무 재배법과 와인 양조법도 함께 전파했다.

로마는 서서히 세력을 확장해 BC 272년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BC 27년에는 유럽,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까지 진출해 로마제국으로 발전했다.

로마는 팔라티노의 작은 언덕에서 시작해 제국으로 발전한 700여년 동안 정복전쟁을 통해 거대한 영토를 확장했다. 더불어 와인 산업도 비약적으로 발전해 점령지 곳곳에 와인과 포도나무를 전파했다.

기원전 3~2세기경 로마가 카르타고와 치른 포에니 전쟁에서는 한 때 한니발이 이탈리아로 진군하면서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 등 경작지를 초토화했으나, 결국 로마는 승리하고 마고(마곤)가 쓴 선진적인 포도 재배법도 입수했다.

2000년전 로마에서는 와인이 이미 일상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당시 인구가 100만명에 달했던 로마에는 연간 1억8000만ℓ의 와인이 공급됐고, 로마인들은 매일 1인당 평균 0.5ℓ 정도의 와인을 마셨다. 그 양이 3ℓ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군인들에게는 하루 1ℓ의 와인이 제공됐는데 전투 시에는 1~2ℓ가 추가로 제공됐다.

와인은 보관이 어려워 대부분 식초화가 진행된 쉰 와인을 물에 희석한 ‘포스카(Posca)’, 거기에다 꿀을 탄 한 단계 고급인 ‘물슘(mulsum)’, 시럽과 같은 달콤한 음료에 가까운 ‘파슘(passum)’, 양조 후 남은 포도 찌꺼기에다 물을 부은 ‘로라 (lora)’, 말린 포도로 만든 ‘비넘 둘체(Vinum Dulce)’ 같은 종류가 있었다.

와인에 밀가루, 허브, 향신료, 송진, 대리석 가루, 바닷물을 섞기도 했고 단맛을 강화하기 위해 심지어 납성분을 추가하기도 했다. 또 지금의 뱅쇼처럼 와인이나 포도즙을 끓여 마시기도 했다. 포스카의 경우 물과 와인을 보통 8:1로 희석했다. 공중목욕탕에서도 와인을 마셨는데 네로 황제의 스승이자 철학자였던 세네카는 이를 비판하기도 했다.

기원 후 와인이 로마 경제를 떠받칠 정도로 발전했지만, 로마 와인의 질은 그리스 와인에 미치지 못했다. 플리니우스(AD 23~79)가 쓴 박물지를 보면, 그리스 와인은 귀한데다 비싸서 공식 연회에서도 소량만 제공됐다. BC 1세기경 공화정 시대의 세도가인 루쿨루스가 주최한 만찬에 그리스 와인이 한번 이상 서빙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플리니우스는 지금의 와인 평론가처럼 와인에 등급을 매기기도 하였다. 또 오늘날처럼 와인 생산지를 분류해 현재의 최상위 등급인 DOCG에 해당하는 지역 2곳, 그 아래의 DOC에 해당하는 18곳을 추렸다. 와인 숍과 와인 바도 있었다. 그 당시에 유통되던 와인은 100여종이 넘었고 수입산만 40여종이나 됐다.

이탈리아 남부의 캄파니아 지역에서 생산되던 최고급 ‘팔레르넘(Falernum)’ 와인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노예를 거래할 때 화폐 대신 쓰이기도 했다. 팔레르노 와인의 가격은 보통 와인의 4배나 되었는데 현재 가치로 1ℓ에 13만원 정도다. 이로 인해 가짜가 넘쳐 나기도 했다.

수정 용기에다 160년간 숙성한, 황제를 위해 와인도 있었다. 15년 숙성한 ‘알바넘(Albanum)’은 상류층에게 특히 인기가 있었고,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즐겨 마셨던 ‘세티움(Setinum)’ 와인은 최고 중의 최고로 꼽혔다.

초기 로마 여성들에게는 일반적으로 와인이 허용되지 않았지만, 아주 묽게 희석된 파슘이나 로라는 소량 허용됐다. 남편이 불시에 부인에게 키스를 하여 와인의 음주 여부를 검사하는 관습도 있었다. 여성이 남성들과 함께 와인을 마시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됐고, 이를 어기는 경우는 이혼을 당하거나 태형, 혹은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BC 2세기경 역사가인 폴리비오스의 기록에도 그 당시의 상황이 묘사돼 있다. 와인을 마셨다는 이유로 아내를 살해한 메세니우스를 로마의 초대 왕인 로물루스가 사면했다는 기록도 있다.

시간이 지나 공화정 후기부터는 여성에게도 와인이 허용됐고, 심포지엄에 참석도 가능했다. 고대 그리스의 심포지엄에는 여성이 참석할 수 없었지만 고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 이집트에서는 여성이 와인을 마시는 데에 제한이 없었던 것과 대비된다.

제2의 대도시이자 와인 무역항이었던 폼페이에서도 오늘날 ‘tavern(술집)’의 기원이기도 한 ‘타베르나(taberna)’라는 와인 바가 즐비했다. 하지만 AD 79년 일어난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폼페이는 화산재 속으로 사라진다. 이로 인해 2년치의 재고량이 땅속에 묻혀 와인 가격이 폭등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와인 재배지가 급격히 늘고 곡물 생산이 줄자 포도나무를 뽑아 내기도 했다. 얼마 전 폼페이의 유적에서 화산재에 묻힌 2000년 전 와인 바 거리가 발굴됐는데 오늘날의 모습과 큰 차이가 없었다. 프랑스의 라타라 지역에서도 BC 2세기경의 로마시대 와인 바 유적이 발굴됐다.

2000년전이나 지금이나 마시는 와인은 달라도 사람이 와인을 마시는 모습은 같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딜리버리N 대표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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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고대 로마인은 어떻게 와인을 마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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