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돼지 분뇨가 마실 수 있는 물로…갈길 멀지만 첫 걸음 뗀 제주 양돈

기사등록 2022/08/28 11:00:00

최종수정 2022/08/28 11:17:00

제주 양돈 농협 운영 가축 분뇨 공동 자원화 공장 방문

돼지 등 가축 분뇨 처리 고민…제주에서만 하루 수백톤

퇴·액비화에 한계…에너지화 이어 정화수 생산 새 대안

분뇨 처리 과정 악취 없어…수돗물 수준 맑은 물 생산

일 150t 정화수 자체 사용 그쳐…농업용수 등 활용 제약

분뇨 처리 정화수 재이용 가능하도록 법·규정 마련해야

[제주=뉴시스]  제주시 한림읍 상대리에 위치한 제주 양돈 농협 가축 분뇨 공동 자원화 공장 전경. (사진=공동취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뉴시스]  제주시 한림읍 상대리에 위치한 제주 양돈 농협 가축 분뇨 공동 자원화 공장 전경. (사진=공동취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뉴시스] 오종택 기자 = 제주에서도 물 맑기로 소문난 한림읍. 제각각 이름을 가진 오름들 사이를 지나다보니 제주 양돈 농협이 운영하는 가축 분뇨 공동 자원화 공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공장을 둘러싼 제주 돌담 주변에 핀 코스모스와 날아다니는 잠자리가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렸다. 분뇨 처리장하면 으레 악취가 코를 찌를 것 같았지만 탁 트인 주변 경관과 멀리 제주 바다가 먼저 눈에 들어올 정도 거부감이 없었다.

제주시 한림읍 상대리 일대 3만7361㎡(1만1300평) 부지에 들어선 이곳 자원화 공장은 인근 양돈 농장에서 발생하는 하루 약 300t의 돼지 분뇨를 정화 처리한다.

축산업 발전과 사육두수의 지속적인 증가로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가축 분뇨 처리 문제는 정부와 지자체, 축산업계의 큰 고민이다. 2020년 기준 가축분뇨 발생량은 5194만t이나 된다. 이 가운데 돼지 분뇨가 2037만t으로 전체 40%를 차지한다.

제주 대표 먹거리로 감귤과 함께 흑돼지를 꼽을 정도로 제주에는 면적 대비 양돈 농장이 많다. 양질의 돼지를 사육하는 이면에 하루에도 수백 톤씩 배출되는 돼지 분뇨 처리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퇴비와 액비로 재생산해 처리하고 있지만 국내 토양의 양분 과잉과 농경지 면적 감소로 인해 살포지도 줄어 한계가 있다. 일부 농가에서는 액비를 자체 정화해 방류한다고 해도 퇴·액비는 농경지 살포 외에는 처리 방법이 마땅치 않다.

특히 제주 지역은 비가 많이 내리는 기후적 특성상 퇴·액비를 살포할 수 있는 여건도 제한적이다. 몇 해 전 양돈 농가에서 분뇨를 무단 방출했다가 큰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제주=뉴시스] 제주 양돈 농협이 운영하는 가축 분뇨 공동 자원화 공장에서 돼지 분뇨를 정화해 생산한 재이용수를 공장 관계자가 보여주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뉴시스] 제주 양돈 농협이 운영하는 가축 분뇨 공동 자원화 공장에서 돼지 분뇨를 정화해 생산한 재이용수를 공장 관계자가 보여주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정부와 지자체의 가축 분뇨 자원화 정책으로 퇴액비화와 함께 바이오가스나 고체연료 등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려는 노력도 시도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제주 양돈 농협의 정화수 생산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다.

전국에 가축분뇨 공동 자원화 시설은 86곳이 있다. 제주에도 9곳의 자원화 시설이 있지만 정화수를 생산해 재이용수로 공급하는 곳은 이곳 한림읍 자원화 공장이 유일하다.

환경오염과 탄소발생량 증가로 골칫거리인 가축 분뇨를 정화 처리해 깨끗한 물로 만들어 내는 것으로, 퇴비와 액비를 생산하는 것을 넘어 액비를 정화해 일반 수돗물 수준의 정화수를 생산한다.

지난해 5월 본격적인 공장 가동 이후 원희룡 당시 제주도지사가 방문해 액비를 정화한 물을 직접 마셔 보이기도 했다. 이번에 공장을 찾은 취재진 일부도 정화수를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냄새는 물론 맛에서도 일반 수돗물과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그러고 보니 드넓은 대지에 있는 공장은 분뇨 처리 시설이 맞나 싶은 정도로 악취가 전혀 없었다. 공장 내부에 액비를 정제액비로 정화하는 과정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후각을 불편하게 하는 자극적인 냄새는 없었다. 공장 관계자는 분뇨 처리 시설에 어울릴법한 파리나 모기조차 보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제주=뉴시스] 제주 양돈 농협이 운영하는 가축 분뇨 공동 자원화 공장의 오영종 공장장이 돼지 분뇨 정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뉴시스] 제주 양돈 농협이 운영하는 가축 분뇨 공동 자원화 공장의 오영종 공장장이 돼지 분뇨 정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잘 조성된 조경에는 깨끗한 물이 연신 뿜어져 나왔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올라타기 전 새빨간 붕어들이 떼를 지어 헤엄치는 연못이 보였다.

가축 분뇨 처리장이 더 이상 혐오시설이 아닌 친환경 시설임을 강조하기 위해 물고기를 인위적으로 풀어놓은 것인데, 자칫하면 물고기 양식장으로 오해 받을 만 한 광경이었다.

공장 관계자는 자연스러운 번식 활동이 이뤄지면서 1년 만에 개체수가 이렇게까지 늘어났다고 멋쩍어했다. 이곳의 물도 돼지 분뇨에서 생산한 정화수로 채워진 것이다.

가축 분뇨를 정화한 물에서 이렇게 많은 물고기가 살 수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분뇨 처리시설에서 정화한 물을 자연으로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지하수와 같이 농업용수 등으로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오영종 공장장은 "유명 생수회사와 비교해 미네랄 함량 정도만 낮은데 정화수는 나쁜 것도 걸러주지만 좋은 것도 걸러버리기 때문"이라며 "굳이 음용수로 활용할 필요는 없겠지만 농업용수나 청소수로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제주=뉴시스] 제주 양돈 농협 가축 분뇨 공동 자원화 공장 돼지 분뇨 정화 과정(위)과 돼지 분뇨 정화수로 조성한 연못(아래).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뉴시스] 제주 양돈 농협 가축 분뇨 공동 자원화 공장 돼지 분뇨 정화 과정(위)과 돼지 분뇨 정화수로 조성한 연못(아래). *재판매 및 DB 금지


역삼투압 과정을 거쳐 생산한 정화수는 방류수 수질 기준을 충족할 뿐 아니라 제주대 생명과학기술혁신센터가 검사한 먹는 물 수질 검사에서도 적합 판정을 받았다.

다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분뇨에서 생산한 정화수를 일반 지하수처럼 활용하기에는 법적, 제도적 한계가 있다.

제주 양돈 농협이 분뇨에서 정화수를 생산하기 위해 기존 시설을 증설하고 지난해 5월17일 준공 허가가 떨어지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현재 지역 양돈 농장에서 수거한 분뇨를 활용해 하루 150t가량의 정제된 정화수를 생산하고 있지만 공장 내 청소용, 조경용, 안개 분무용 등 자체 사용에 그치고 있다.

농업용수 등 수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가축분뇨 처리 관련 규정에 정화수를 재이용할 수 있는 기준은 따로 없다. 덜 정화된 액비는 초지 등에 살포가 가능하지만 정작 더 깨끗한 정화수는 그냥 흘려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고권진 제주양돈농협조합장은 "정화수를 수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현행 가축분뇨법이나 환경법의 개정이 필요하다"며 "기술은 고도화하고 있는데 법규정이 이를 쫓아오지 못하는 사례"라고 안타까워 했다.
[제주=뉴시스] 고권진 제주 양돈 농협조합장. (사진=공동취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뉴시스] 고권진 제주 양돈 농협조합장. (사진=공동취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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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돼지 분뇨가 마실 수 있는 물로…갈길 멀지만 첫 걸음 뗀 제주 양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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