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총선 총 9번 도전 중 단 한번 승리…8번 낙선
포항지진특별법 제정 1등 공신이라는 평가 받아
포항시민들 '미완의 정치인' 애도 물결
[포항=뉴시스] 강진구 기자 = ·
허대만 전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이 24일 오전 영면에 들었다. 향년 53세.
불꽃 같은 삶을 미처 꽃 피우기도 전에 회한과 같은 도전적 삶을 마감했다. 포항시민들은 포항사랑을 몸소 실천한 '미완의 정치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고인은 지난 1969년 경북 영일군 장기면 금곡리에서 태어나 포항영흥초와 포항중, 대동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포항중학교 재학 당시 전교 1등을 독차지했고 대동고는 체력장 포함 200점 만점으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당시 서울대 정치학과는 전국의 수재들이 모이는 영재의 산실로 대한민국 0.001%수재들, 대입학력고사 340점(체력장 20점 포함) 만점에 310점 이상을 획득한 인재들이 입학하는 곳으로 미래 정치의 산실이었다.
그러나 고인의 정치역정은 이 같은 재능과 달리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고 '담금질'의 시간이었다.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 등 생애 9번의 도전 중 단 한번 무소속으로 포항시의원에 당선된 것이 유일한 승리였고, 나머지 8번의 선거는 모두 낙선했다.
고인은 졸업 후 처음으로 도전한 지난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포항시의원에 당선됐다. 전국 최연소 기초의원이라는 프리미엄으로 전국적 관심을 끌었다.
불꽃 같은 삶을 미처 꽃 피우기도 전에 회한과 같은 도전적 삶을 마감했다. 포항시민들은 포항사랑을 몸소 실천한 '미완의 정치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고인은 지난 1969년 경북 영일군 장기면 금곡리에서 태어나 포항영흥초와 포항중, 대동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포항중학교 재학 당시 전교 1등을 독차지했고 대동고는 체력장 포함 200점 만점으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당시 서울대 정치학과는 전국의 수재들이 모이는 영재의 산실로 대한민국 0.001%수재들, 대입학력고사 340점(체력장 20점 포함) 만점에 310점 이상을 획득한 인재들이 입학하는 곳으로 미래 정치의 산실이었다.
그러나 고인의 정치역정은 이 같은 재능과 달리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고 '담금질'의 시간이었다.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 등 생애 9번의 도전 중 단 한번 무소속으로 포항시의원에 당선된 것이 유일한 승리였고, 나머지 8번의 선거는 모두 낙선했다.
고인은 졸업 후 처음으로 도전한 지난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포항시의원에 당선됐다. 전국 최연소 기초의원이라는 프리미엄으로 전국적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이후 지난 1998년 제6대 경북도의원,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포항남·울릉), 2010년 포항시장,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포항남·울릉), 2013년 제19대 국회의원(포항남·울릉) 재보선에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어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전략지역 비례대표 후보, 2018년 포항시장,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포항남·울릉)에 출마했지만 또 다시 낙선했다.
9번의 도전 중 단 한번을 제외하곤 모두 낙선했지만 고인의 포항사랑에 대한 열정은 산처럼 바위처럼 한결 같았다.
고인은 지난 2017년 7월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과의 정책보좌관으로 근무하면서 포항지진특별법 제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고인은 당시 서울대와 여당 내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지부진하던 포항지진특별법을 제정하는 데 혁혁한 성과를 거뒀다.
포항11·15촉발지진범시민대책위 공원식 공동위원장은 이날 추도사에서 "누가 뭐라해도 포항지진특별법 제정의 1등 공신은 고 허대만 위원장"이라며 "포항지진특별법 제정은 허 위원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애도했다.
고인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일생을 바친 정치인으로, 오직 정도만 걸어온 한결같은 정치인으로도 각인돼 있다.
국회 입성을 위해 타 지역 출마와 정당 변경을 주변에서 수차례 권유했지만 고인은 '포항은 정치적 고향으로 떠날 수 없다'며 비록 낙선할 지언정 평소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심지어 신념을 버려가면서 까지 당선을 위해 정당을 변경하는 것을 부끄러워 했다.
고인은 포항 정치사에서 다양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단 한 번도 흑색선전과 비방, 중상모략 등 정도를 벗어난 선거운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도 정평 나 있다.
다양한 정치 여정에서 크고 작은 유혹이 있었지만 고인은 평생 단 한번도 이 원칙을 깨지 않았다. 항상 정책 선거에 치중하며 선거를 함께 포항을 만들어가는 축제의 장으로 정의하고 '져도 이기는 선거'가 되도록 노력했다.
보수의 심장 경북 포항에서 현재 7명의 야당 시의원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도 모두 고인의 공로이자 피땀의 결실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어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전략지역 비례대표 후보, 2018년 포항시장,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포항남·울릉)에 출마했지만 또 다시 낙선했다.
9번의 도전 중 단 한번을 제외하곤 모두 낙선했지만 고인의 포항사랑에 대한 열정은 산처럼 바위처럼 한결 같았다.
고인은 지난 2017년 7월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과의 정책보좌관으로 근무하면서 포항지진특별법 제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고인은 당시 서울대와 여당 내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지부진하던 포항지진특별법을 제정하는 데 혁혁한 성과를 거뒀다.
포항11·15촉발지진범시민대책위 공원식 공동위원장은 이날 추도사에서 "누가 뭐라해도 포항지진특별법 제정의 1등 공신은 고 허대만 위원장"이라며 "포항지진특별법 제정은 허 위원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애도했다.
고인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일생을 바친 정치인으로, 오직 정도만 걸어온 한결같은 정치인으로도 각인돼 있다.
국회 입성을 위해 타 지역 출마와 정당 변경을 주변에서 수차례 권유했지만 고인은 '포항은 정치적 고향으로 떠날 수 없다'며 비록 낙선할 지언정 평소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심지어 신념을 버려가면서 까지 당선을 위해 정당을 변경하는 것을 부끄러워 했다.
고인은 포항 정치사에서 다양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단 한 번도 흑색선전과 비방, 중상모략 등 정도를 벗어난 선거운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도 정평 나 있다.
다양한 정치 여정에서 크고 작은 유혹이 있었지만 고인은 평생 단 한번도 이 원칙을 깨지 않았다. 항상 정책 선거에 치중하며 선거를 함께 포항을 만들어가는 축제의 장으로 정의하고 '져도 이기는 선거'가 되도록 노력했다.
보수의 심장 경북 포항에서 현재 7명의 야당 시의원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도 모두 고인의 공로이자 피땀의 결실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30년 간 보수 성향이 짙은 경북의 민주당으로 외길을 걸으며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희망의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힘들고 외로운 삶을 당당하게 살아왔다는 평가도 당 안팎에서 받고 있다.
배우자 박민정 씨는 "고인의 꿈은 시장이나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밝고 맑게 자랄 수 있는 포항을 만드는 것, 사랑했던 자식들이 '너거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라는 말을 듣는 것 이었다"고 추모했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두번이나 적이 되어 싸웠지만 고인은 적이 아니라 동지 같은 정치인이었다"며 "누구보다 포항을 사랑했던 정치인이자 자상한 아버지, 동지, 선·후배, 친구, 힘들고 어려울 땐 기댈 수 있는 거목이자 그늘이었다"고 추도했다.
고인은 포항시의회 의원과 노무현 대통령직 인수위 자문위원, 열린우리당 경상북도당 공보실장, 정책실장, 포항시 남구 울릉군 지구당 운영위원장, 민주당 포항시 남구 울릉군 지역위원장, 경북도당 위원장, 민주당·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 위원장, 행정안전부 장관 정책보좌관, 한국산업인력공단 기획운영이사를 역임했다.
자음기획 대표와 자음컴퓨터 대표, 자음리서치 대표, 서경산업 부사장, 포스칼슘 상무이사 등도 지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배우자 박민정 씨는 "고인의 꿈은 시장이나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밝고 맑게 자랄 수 있는 포항을 만드는 것, 사랑했던 자식들이 '너거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라는 말을 듣는 것 이었다"고 추모했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두번이나 적이 되어 싸웠지만 고인은 적이 아니라 동지 같은 정치인이었다"며 "누구보다 포항을 사랑했던 정치인이자 자상한 아버지, 동지, 선·후배, 친구, 힘들고 어려울 땐 기댈 수 있는 거목이자 그늘이었다"고 추도했다.
고인은 포항시의회 의원과 노무현 대통령직 인수위 자문위원, 열린우리당 경상북도당 공보실장, 정책실장, 포항시 남구 울릉군 지구당 운영위원장, 민주당 포항시 남구 울릉군 지역위원장, 경북도당 위원장, 민주당·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 위원장, 행정안전부 장관 정책보좌관, 한국산업인력공단 기획운영이사를 역임했다.
자음기획 대표와 자음컴퓨터 대표, 자음리서치 대표, 서경산업 부사장, 포스칼슘 상무이사 등도 지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