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박은빈 "7개월간 고시공부 하듯 대사 외웠죠"

기사등록 2022/08/24 08:00:00

박은빈
박은빈

[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탤런트 박은빈(30)의 자폐 스펙트럼 연기는 현실성이 높지 않았다. 기존 매체에서 배우들이 장애 증상을 표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박은빈은 조금 더 사랑스럽게 표현했다. 오히려 대중들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박은빈)에게 편견을 가지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케이블채널 ENA 종방극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신드롬급 인기를 끄는데도 한 몫했다.

"현실성과 비현실성 문제는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같이 갖고 가야 할 문제였다. 장애라는 증상을 구현하는데 초점을 맞춘다면, '방어적으로 연기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인물이 가진 잠재력, 가능성 등을 간과하게 될 것 같았다. 이 캐릭터 만큼은 우영우 세계관 안에서 마음껏,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었다. 초반에 '우영우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보여주기 앞서 '이상하다'는 인상을 주면서 이상하지 않게 일을 잘 하는 모습 보여줘야 했다. 이를 '어떻게 조율할까?'가 굉장히 어려운 과제였고 심사숙고해 표현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0.9%의 기적을 보여줬다. 1회 0.9%(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로 시작, 입소문을 타면서 16회 17.5%로 막을 내렸다. 세계 넷플릭스 TV쇼 부문 3위까지 올랐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우영우 대사를 따라하는 등 각종 패러디물이 쏟아졌다. 이를 보고 불쾌해 하는 시청자도 많았다. "일단 따라하는 분들도 비하하려고 한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며 "영우를 연기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코 가볍지 않게 다가갔다. 영우는 세계관 내에서만 존재했으면 좋겠다. 좀 더 간곡하게 말하자면, 영우를 사랑해줘서 감사하지만 외형, 말투 등을 흉내 내는 것은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기에 지양해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처음에 박은빈은 이 드라마를 수차례 거절했다. 스스로 확신이 없어서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유인식 PD와 문지원 작가가 믿어줬기에 "보답하고 싶고, 도전해보고 싶은 모험 섞인 마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전작인 '연모'(2021) 종방 후 우영우를 준비하는 시간은 딱 2주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워낙 대사가 긴 만큼 "7개월간 매일 시험 보는 기분으로 살았다"며 "법정용어가 어려운 게 많아서 '고시공부 한다'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끝까지 잘 해내고 싶어서 악전고투했다"며 "혼신의 힘을 다해서 다시 안 돌아가고 싶을 정도"라고 했다.

"사실 대사를 못 외우는 편은 아니다. 대사를 그냥 외워서 시간을 가지고 차분하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속사포로 내뱉고 발음도 정확하게 해야 했다. 내가 영우처럼 천재적인 두뇌를 갖지 않아서 대사량에 익숙해지는 게 첫 번째였고 내성을 들이는데 시간을 들였다. 법정용어는 그냥 들으면 이해하기 어려워서 A4 용지에 쓰면서 통으로 외웠다. 미리 외울 수 없어서 조금 힘에 부딪쳤다. (대사가) 내일도 많고 모레도 많고 항상 많았다. 신경 쓰인다고 일주일 전에 외울 수 있는 게 아니라 당장, 또 내일이 급해서 그 때 그 때 많은 양을 외우는 게 어려웠다. 쉬는 날에도 마음의 짐이 가득했다."

영우가 좋아하는 고래는 동심을 불러일으켰다. 극 중간 중간 고래를 컴퓨터그래픽(CG)로 삽입해 흥미를 더했다. 초고에는 고래가 없었지만, 유 PD와 문 작가가 영우의 판타지를 시각화할 수 있는 요소를 고민하다가 택한 소재다. 고래 대사를 외울 때 고생을 많이 봤지만, 시청자로 볼 때는 좋았다며 '이 지구상에 이런 생명체가 살아 숨 쉴 수 있다니···'라고 놀라게 해준 매개체다.

박은빈은 16회에서 "흰고래 무리에 속한 외뿔고래와 같다"고 표현한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고 꼽았다. "영우가 이 드라마에서 하고 싶은 말이었다"며 "극본을 받은 순간 '이 얘기를 하기 위해 영우가 16부 동안 성장해야 했구나' 싶었다. 영우가 흰고래 무리에 속한 외뿔고래라는 걸 인정하는 게 감동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극중 영우는 '우당탕탕 우영우'라는 별명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박은빈은 마음에 들어했다. "그저 현상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뭔가 소란을 일으켜서라도 '현 상황을 정복시키겠다'는 의미가 있지 않느냐"면서 "우당탕탕 사는 게 나쁜 것 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중 다양한 인간 군상이 나오는데, 어찌보면 영우보다 이상한 사람도 등장한다. 영우만이 이상한 게 아니고, 이상한 게 이상한 게 아닌···. 과연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게 무엇이고, 반대 개념인 비정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물론 기존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클리셰 요소가 곳곳에 등장해 진부한 면도 있었다. 영우의 출생의 비밀, 법무법인 '한바다' 송무팀 직원 '이준호'(강태오)와 로맨스, 선배 변호사 '정명석'(강기영)의 위암 3기 판정 등이 대표적이다. 그래도 영우와 준호의 사랑은 뻔하지만 순수하게 표현해 많은 여성들을 설레게 했다.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영우와 사랑도 가능할까?'라는 의문도 있겠지만, "'이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는 걸 미디어를 통해 보여줘야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짚었다. "꼭 러브라인이 개인 성장에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영우는 자신만이 가득한 세상에 살았기에 너라는 존재를 알게 되고 내적으로 성장이 있을 수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미 제작사 에이스토리는 우영우 시즌제 제작을 확정한 상태다. 박은빈은 정식으로 제안 받은 적 없기에 난감한 듯한 눈치였다. "어려운 문제이긴 하다"면서 "이미 사랑을 받은 만큼 기대치와 바라는 게 더 많아질텐데 '과연 그 이상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싶다"는 생각이다. "현재로서는 어느 것도 확언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마지막 엔딩에서 영우의 모습이 사진 찍히듯이 남아 그대로 '보물상자에 넣어주면 어떨까?' 싶다. 촬영할 때 정말 뿌듯하게 영우를 보내주고 싶었다. 만약 보물상자를 다시 열어보라고 한다면, 처음에 영우를 마주하기로 했을 때부터 더 큰 결심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아역 출신인 박은빈은 어느덧 데뷔 27년 차를 맞았다. 1996년 아동복 모델로 데뷔,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성인이 된 후 '청춘시대' 시즌1·2(2016~2017) '스토브리그'(2019~2020) 등으로 주목 받았는데, 우영우를 통해 스타성까지 겸비하게 됐다. 다음 달 4일 데뷔 후 처음으로 팬미팅도 열 예정이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27년 차인지도 몰랐는데, 이렇게 서른 살이 넘고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을 만난 건 큰 복이다. 해외 진출 계획도 있냐고?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할리우드에 진출하고 싶거나 거창한 꿈은 없다. 아직 휴식다운 휴식을 못 보내 차기작을 검토하지 못했다. 그래도 '우영우 다음으로 어떤 모습 보여줄까?'는 큰 고민은 아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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