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도루왕 김일권, 통산 5차례 도루 1위
전준호, 549도루로 통산 최다 도루 1위…이종범, 단일 시즌 최다 84도루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도루란 말 그대로 누를 훔치는 일이다.
한 베이스를 더 가서 득점 가능성을 높이는 공격 방법이지만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도루 능력이 있는 타자가 누상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상대 배터리와 수비를 괴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고투저가 대세가 되면서 최근 몇 년 사이 부상 위험이 높은 도루에 대한 평가가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상대를 흔들며 득점 확률을 높이는 도루는 가치 있는 플레이다.
LG 트윈스 박해민은 지난 4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다. 1회 안타를 때려낸 그는 곧이어 2루를 훔쳐 시즌 20호 도루를 신고했다. KBO리그 역대 3번째 9년 연속 20도루를 달성한 순간이다.
4차례(2015~2018년) 도루왕에 올랐던 박해민은 꾸준하게 빠른 발로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대도'의 길을 향해 가고 있다.
이 부문 최고 기록은 은퇴한 정근우가 가지고 있다. 그는 2006년부터 2016년까지 11시즌 연속 20도루에 성공했다. 도루 2위만 두 차례 하는 등 선수 생활 내내 한 번도 도루 1위에 오르진 못했지만 꾸준히 베이스를 훔치는 부지런한 야구로 팀의 공격 활로를 뚫었다.
도루의 생명은 '스피드'다. 포수의 송구보다 빠르게 베이스를 터치하느냐가 운명을 결정한다.
물론 속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롯데 자이언츠는 1983년 육상 단거리 선수인 서말구를 선수 겸 코치로 영입했다. 당시 서말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른 사람이었다. 1979년 찍은 100m 10초34는 2010년 김국영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31년 간 한국 기록이었다.
배트를 제대로 휘둘러 본 적도 없는 서말구의 역할은 분명했다. 장기인 빠른 발로 내야를 뒤흔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말구는 등록 기간 3년 간 한 차례도 경기에 나서지 못한 채 코치직만 수행하다가 팀을 떠났다.
도루에는 스피드 외에도 스타트, 센스 등의 능력이 필요하단 걸 보여준 사례가 됐다.
KBO리그에서 가장 많이 베이스를 훔친 '대도'는 전준호다.
1991년 데뷔 첫 해부터 18도루를 기록한 그는 2008년까지 18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를 거두며 누구보다 꾸준한 발을 자랑했다. 그가 두 자릿수 도루를 작성하지 못한 건 은퇴 시즌이었던 2009년(2도루)뿐이었다.
선수 생활 내내 쉬지 않고 달렸던 그는 통산 549도루를 거둬 역대 최다 도루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KBO리그에서 최초로 400도루 시대를 연 것도, 500도루를 넘어선 것도 모두 전준호였다.
당분간 전준호의 549도루를 넘어설 만한 후보도 보이지 않는다.
현역 선수 중 최다 도루를 기록 중인 키움 히어로즈 이용규는 387도루를 작성했다. 전준호의 기록과 100개 넘게 차이가 나는 데다 선수 생활 막바지로 가고 있단 점에서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 내긴 쉽지 않아 보인다.
도루 부문에서 압도적인 발자취를 남긴 전준호를 넘어서는 '원조' 대도도 있다.
KBO리그 출범 첫 해 도루왕에 올랐던 김일권이 그 주인공이다.
김일권은 1982년 75경기를 뛰면서 53차례 도루에 성공하며 놀라운 발야구를 선보였다.
1983년과 1984년에도 각각 48개, 41개의 도루로 이 부문 타이틀을 지킨 김일권은 1985년 KBO리그 최초로 단일 시즌 50도루에 성공한 김재박에 밀려 4연패에 실패했다. 그해 김일권은 39도루로 부문 2위에 자리했다.
그러나 1989년 62도루로 최초의 60도루 시대를 열며 다시 타이틀을 찾아왔다. 그리고 이듬해 48도루로 5번째 도루왕에 올랐다. KBO리그에서 5차례나 도루왕을 차지한 건 김일권이 유일하다.
김일권-전준호로 이어진 대도 계보를 잇는 '바람의 아들' 이종범도 KBO리그에 한 획을 그었다.
프로 입단 첫 해였던 1993년 9월26일 해태 타이거즈 소속이던 그는 전주 쌍방울 레이더스와 경기에서 6차례 누를 훔쳐 한 경기 최다 도루 신기록을 수립했다. 그해에만 73도루를 수확하며 심상치 않은 등장을 알린 그는 당시 75도루를 거둔 전준호에 밀려 2위에 멈춰섰다.
그러나 이듬해 이종범은 무려 84도루에 성공하며 역대 한 시즌 최다 도루를 남겼다.
그야말로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이종범은 꾸준히 잘 치고, 잘 달렸다. 통산 1439경기에서 510도루를 남겨 전준호에 이어 통산 최다 도루 2위 부문을 지키고 있다.
이종범의 뒤를 잇는 대도 정수근은 1996년부터 2002년까지, 7시즌 연속 40도루를 일궈내는 진기록을 세웠다.
'슈퍼소닉' 이대형은 전준호의 기록을 넘어설 후보로 손꼽혔지만 선수 생활 막바지 당한 무릎 부상의 여파로 505도루만 남기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역대 통산 최다 도루 3위의 기록.
그러나 이대형이 2008~2010년 세운 KBO리그 최초 3년 연속 60도루는 여전히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최근엔 도루 시도가 많이 줄어들면서 한 시즌 50도루도 보기 힘들어졌다.
가장 최근 50도루 고지를 밟은 건 박해민이다. 2015년 60도루로 생애 첫 도루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그는 2016년 52도루로 1위를 유지했다.
그래도 꾸준히 도루를 시도하는 '대도 꿈나무'들이 있다.
키움 김혜성은 지난해 46도루를 성공, 2017년 박해민(40도루) 이후 4년 만에 40도루 주인공이 됐다. 데뷔 후 처음으로 도루왕도 차지했다. 올해도 가장 먼저 30도루 고지를 밟고 도루왕 2연패에 도전 중이다.
삼성 라이온즈 김지찬은 올 시즌 의미 있는 기록을 썼다. 그는 4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2회 2루 도루를 성공하며 개막 후 22연속 도루에 성공했다.
2020년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이 세웠던 21경기 연속 도루 기록을 넘는 이 부문 신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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