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중심 반도체 인재양성, 지방소멸 앞당겨"
"석·박사는 수도권, 이하는 비수도권 등 공생해야"
박 부총리 "수렴했다, 반영하겠다, 소통하겠다" 답변
"수도권 대학 증원 안 하나" 질문엔 "尹에 말하겠다"
[서울=뉴시스]김경록 기자 = 한 비수도권 사립대 총장이 "지방대학 시대를 일관성 있게 실천하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섰다. '지방대학 시대'를 국정과제로 내건 정부가 오히려 '지방 소멸'을 부추기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맹수 원광대 총장은 8일 오후 1시30분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 앞에서 20여분 동안 홀로 시위를 진행했다. 오후 2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의 비공개 간담회를 앞둔 상황이었다.
전북 익산시에 위치한 원광대는 지난 3월, 2004년 만들어진 반도체·디스플레이 학부를 폐과하기로 결정했다. 대학가에 따르면 해당 융합학과는 지난 2017년 중국 랴오디그룹과 글로벌 산학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할 정도로 활성화됐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원 미달문제로 발목을 잡힌 것으로 전해졌다.
박 총장은 취재진에게 "수도권 중심으로 반도체학과 정원이 확대되면 지방은 축소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며 "지방과 수도권이 상생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1인 시위의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반도체 인재양성은 다양한 수준의 인력이 골고루 필요하다"며 "고급인력인 석·박사급은 수도권 대학을 통해, 고졸·학사졸 인력은 지방대도 양성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지방대와 수도권 대학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틀 전 박 총장이 포함된 '비수도권 7개권역 지역대학총장협의회 연합'은 교육부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성명서를 발표하려 했으나, 교육부가 청사 내 기자회견을 거부했다. 윤석열 정부가 반도체 인재양성 관련 검토 중인 '수도권 대학 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회견이 지난 5일 진행된 박 부총리의 취임과 '엇박자'라는 이유였다.
전북 지역대학총장협의회장인 박 총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교육부 장관에 대한 예우를 중시할 만큼 지방대 현실이 한가하고 녹록했는가, 너무도 심각한 지방대 현실을 교육부 관료들이 책상 위에서 안일하게 인식했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당시 회견을 주도한 이우종 청운대 총장(대전·세종·충남 권역 총장협의회장)은 뒤이어 현장에 도착해 "장관이 5일 취임하는데 6일 바로 성명을 내면 박 부총리도 당황스러울 것"이라며 "일단 (이날) 교육부 수장과 진지하게 간담회를 하고, 우리 의견이 관철되는지 여부에 따라 그 다음 액션(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장과 박 총장은 오후 2시께 나란히 "지방대학 시대를 일관성 있게 실천하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박 부총리와의 간담회 장소로 향했다.
이 총장은 1시간여 진행된 간담회를 마치고 취재진과 만나 "참석한 총장 12명이 모두 발언했고, 마지막에 박 부총리가 얘기를 했다"고 밝혔다.
이어 "박 부총리에게 요구사항을 가감 없이 전달했고 총장들은 대학 현장에서 느끼는 이야기들을 모두 전했다"며 "이날 간담회가 결코 스쳐 지나가는 요식행위가 되지 않도록 앞으로 교육부 정책 발표에 간담회에 제시된 정책제안을 포함시켜줄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요구사항은 ▲비수도권 국·공·사립대 10개를 선정해 반도체 인력 대학별 평균 60명 양성 ▲반도체 교육을 위한 전국 반도체 설계교육센터(IDEC) 운영비 지원 강화 ▲반도체 공정교육센터(Fab)에 대한 설비 투자 강화 ▲디지털 혁신공유대학 사업을 통한 반도체 인력 양성 확대 ▲지역 거점대학과 국·사립대 중심의 공동학위제 운영 ▲지역인재의 수도권 유출 대응을 위한 제도 마련 등으로 알려졌다.
이 총장에 따르면 이날 박 부총리는 총장들의 요구사항을 듣고 "수도권 반도체 인력 양성과 관련해서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고 반영하겠다", "지역대학과의 소통 창구를 만들고 기회가 될 때마다 지방대 현장에서 답을 찾겠다"는 내용의 답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총장은 "제가 '수도권 대학정원 증원 안 하실 거죠'라고 물었는데 확답은 안 했고, '대통령께 말씀드리겠다'는 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장은 "(향후 교육부 정책발표에) 우리 요구와 반(反)하는 내용이 들어있다면 우리 연합에서는 또 다른 액션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말로 간담회를 마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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