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정리 하고 가야지" "정치 휘두르기에 항의하는 것 같다"
"세월호 땐 아무도 안 나갔는데 이번엔 달라, 멋진 지휘관 응원"
[인천=뉴시스] 김동영 기자 = 해양경찰청장을 비롯한 치안감 이상 간부들이 24일 서해 피격 공무원과 관련 종합적인 책임을 통감하면서 사의를 표명하자 해경 내부에선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번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의견과 ‘지휘부의 일괄 사퇴가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라는 의견이 교차하고 있다.
이날 오전 정봉훈 해양경찰청장은 전국 지휘관들이 참여한 화상회의에서 서해 피격 공무원 사건과 관련해 사의를 표명했다. 또 치안감 이상의 간부 8명도 지휘부로 책임을 공감하면서 자율적인 의사에 따라 사의를 밝혔다.
이번 사의 표명에는 정 청장을 비롯해 ▲차장 서승진 치안정감 ▲중부청장 김병로 치안정감 ▲기획조정관 김용진 치안감 ▲경비국장 이명준 치안감 ▲수사국장 김성종 치안감 ▲서해청장 김종욱 치안감 ▲남해청장 윤성현 치안감 ▲동해청장 강성기 치안감 등 9명이 해당된다.
정 청장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최근 우리 조직에 닥쳐온 위기 앞에서 부족하나마 조직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며 “하지만 오랜 고심 끝에 우리 해양경찰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휘부를 구성하는 것만이 답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앞서 지난 16일 인천해양경찰서는 ‘서해 피격 공무원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지난 2020년 9월 북한 해역에서 총격으로 사망한 해수부 소속 어업지도선 이대준(사망 당시 47세)씨의 월북 의도를 찾지 못했다”고 사건이 발생한 지 1년9개월 만에 중간 수사결과를 번복했다.
이후 정봉훈 청장은 지난 22일 기자들과 만나 “서해 피격 공무원 수사 결과 발표와 관련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며 “국민과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수사결과 번복으로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정 청장은 책임을 통감해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해경 내부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는 해경 조직을 비판하는 내용과 옹호하는 내용의 글이 함께 올라왔다.
게시판에 ‘와 진짜 너무하네’라는 제목의 글을 남긴 한 직원은 “(청장을 비롯한 간부 일괄 사태를 두고) 이게 무슨 책임감이라곤 개X으로 아시나”라고 적었다 해당 글에는 “우린 뭐 어쩌라는 것이냐”, “근데 난 왜 침몰하는 배에서 먼저 빠져나가는 쥐처럼 보이지?”, “적어도 조직 발전을 위한다면 교통정리는 하고 가셔야 한다. 이런 때에 그냥 나간다니 아무리봐도 이해가 안간다”는 댓글이 달렸다.
또 “책임을 안지는 게 아니라 항의하는 것 같다”, “9명 일괄 사의표명이 말이 되느냐, 위에 빠져나간다 그런 댓글 있던데 뭐 잡혀가는 것도 아닌데 어디로 빠진다는건지 참. 그냥 정치보복, 정치 휘두르기에 항의하는 것 같다”, “세월호 때는 사표 내라고 해도 안내더니 청와대 압력 때문인지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여론 형성되니 9명 일괄 사의표명을 내다니. 참 정이 안가는 조직이다”라는 반응 보였다.
반면 세월호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지휘관들을 두고 옹호하는 의견도 나왔다.
한 해경은 “세월호 사고 당시에는 아무도 안나갔다”면서 “이번에는 좀 다르다. 멋진 지휘관들을 응원한다”고 적었다.
실제로 익명을 요구한 한 해경은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내부적으로 세월호 사고와 비교하는 직원들이 많은 상황”이라며 “지휘부들이 일괄 사의를 표명하면서 책임을 지려는 예상치 못한 모습을 두고 ‘놀랍다’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일부 직원들은 이번 위기를 기회로 발판 삼아 조직 혁신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며 “해경 조직이 국민에게 신뢰받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2020년 9월 22일 연평도 근해에서 북한군에 피살당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유가족의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는 해양경찰청장을 비롯한 간부 9명의 사임의사와 관련해 사건 당시 해경청 형사과장과 인천해경서 수사과장도 사의를 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족 측은 오는 28일 윤성현 남해해경청장과 사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 등 4명을 공무집행방해와 직권남용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다고 전했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인 김기윤 변호사는 "피해자의 형 이래진씨는 당시 월북이라고 발표한 관계자 2명도 그만둬야 한다는 의견"이라며 "이들 중 1명인 당시 해경청 형사과장은 국가인권위로부터 인권침해를 이유로 징계 권고도 받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