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Z’ 영웅 만들기…러시아 선전 아이콘으로(영상)

기사등록 2022/06/16 06:00:00

최종수정 2022/06/16 09:13:44

러시아국기를 흔드는 우크라이나 할머니가 뜬금없이 러시아의 선전 아이콘으로 떠올라 동상까지 세워지는 등 각광을 받고 있지만 15일 BBC 인터뷰에 따르면 정작 할머니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출처: BBC   *재판매 및 DB 금지
러시아국기를 흔드는 우크라이나 할머니가 뜬금없이 러시아의 선전 아이콘으로 떠올라 동상까지 세워지는 등 각광을 받고 있지만 15일 BBC 인터뷰에 따르면 정작 할머니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출처: BBC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김광원 기자 = 러시아국기를 흔드는 우크라이나 할머니가 뜬금없이 러시아의 선전 아이콘으로 떠올라 동상까지 세워지는 등 각광을 받고 있지만 정작 할머니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15일(현지시간) BBC는 사건의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바부시카 Z’(바부시카는 러시아어로 ‘할머니’. Z는 러시아군의 상징)로 알려진 할머니를 직접 찾아가 인터뷰한 내용을 보도했다.

“러시아인들이 나를 칭송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난 그저 농부일 뿐인데. 내가 왜 유명인사가 됐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할머니 Z’는 BBC 기자가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자 깜짝 놀랐다.

할머니를 유명하게 만든 비디오를 보면 할머니는 붉은 소련기(赤旗)를 들고 두 명의 우크라이나 군인에게 다가간다.

군인들은 할머니를 도우러 왔다며 빵을 건네고 적기를 빼앗아 땅에 내던지고 짓밟는다. 그러자 할머니는 빵을 돌려주며 “내 부모님이 2차 세계대전 때 그 깃발을 위해 죽었다”며 분개한다.

러시아 선전국은 이 장면에 꽂혔고 할머니가 소련의 붕괴를 아쉬워하며 러시아군을 해방군으로 간주하는 사례라고 보았다.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지역을 포함해 우크라이나인들은 대부분 러시아의 침공에 반대하기 때문에 적기를 흔드는 할머니의 행동은 우크라이나 지역민들이 러시아 편을 들고 있는 증거처럼 활용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어머니 러시아’란 엽서에 친숙한 러시아인들은 ‘할머니 Z’에 크게 호응했다.

러시아 선전국은 바로 작업에 착수해 며칠 만에 할머니는 구 소련시기의 스카프를 쓰고, 펠트 구두에 두툼한 스커트를 입은 전형적인 농촌여성으로 이미지가 조작돼 모스크바부터 시베리아를 거쳐 극동 사할린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전역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Z’의 이미지는 벽화, 플랭카드, 엽서, 조각과 범퍼 스티커에까지 활용됐다. 노래와 시가 헌정되고 러시아 관료들은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마리우폴에 세워진 그녀의 동상 제막식까지 거행했다.

최근까지 ‘할머니 Z’가 실존인물인지 여부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BBC 취재결과 할머니의 이름은 안나 이바노브나(69)로 하리키우 근교 벨리카 다닐리브카 마을에서 남편과 함께 가축을 키우며 살고 있었다.

BBC 기자가 그녀의 동상 사진을 보여주자 할머니는 “내가 이렇게 늙어보여요? 너무 낯설게 보이네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실제 이야기는 러시아 미디어들이 선전하는 내용과 너무 달랐다. 할머니는 전쟁을 지지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우리 국민들이 죽는 걸 지지하나요? 내 손자와 증손자도 폴란드로 탈출했고 우린 공포 속에서 살고 있는데.”

유명세를 탄 비디오와 관련, 할머니는 음식을 건네준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러시아 군인으로 오해했다고 주장했다. 

“난 그저 러시아인들이 찾아와 우리와 싸우지 않고 다시 합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나 할머니는 적기는 소련국기도 러시아국기도 아니라며 “모든 가정, 모든 도시, 모든 공화국에서 사랑과 행복을 의미하는 깃발”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당신은 실수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 이런 일을 당하나요? 우리가 가장 고통을 겪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안나 할머니는 “푸틴은 대통령이다. 짜르고 왕, 황제다”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는 꺼려했다.

할머니는 “이제 보니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 국민을 전혀 개의치 않고 우리 땅만 정복하려고 해요”라고 덧붙였다.

이곳은 작은 마을이고 서로를 다 알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은 할머니를 피했다.

할머니는 “그들은 날 반역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끝내고 BBC기자가 작별인사를 고하자 할머니는 낫과 망치가 그려진 적기를 선물하려고 하면서 “난 논란을 원치 않고 사람들이 날 이용하는 것도 원치 않아요”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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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Z’ 영웅 만들기…러시아 선전 아이콘으로(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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