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레에다 히로카즈…'브로커'

기사등록 2022/06/08 10:43:34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의 정수를 원했다면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송강호·강동원·아이유·배두나·이주영 등 주연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을 기대했다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 '브로커'를 고레에다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걸작' 카테고리에 두기는 어려워 보인다. '브로커'는 역시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만큼 탁월한 면을 갖고 있는 반면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가 맞는지 의아한 대목도 있는 작품이다. 그래도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고레에다 감독이 만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뛰어나다. 강동원·배두나·이주영은 든든하게 뒤를 받치고, 아이유는 과감하게 치고나간다. 그리고 송강호는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은 물론이고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어떤 경지를 보여준다.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는 교회가 운영하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들 중 일부를 빼돌려 정식 입양 절차를 밟지 않고 아기를 키우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돈을 받고 파는 일을 하는 브로커다. 이번에도 버려진 남자아이를 몰래 데려와 애를 넘겨받을 부모를 물색하는데, 아기 엄마가 애를 되찾으러 교회에 오는 일이 발생한다. 베이비 박스에 뒀던 아이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안 엄마가 경찰에 신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동수는 이를 막아서며 자신과 상현이 하는 일에 관해 설명한다. 그러자 엄마 소영(아이유)은 아기를 입양할 부모를 직접 고르겠다며 상현과 동수의 거래 현장에 동행하기로 한다. 상현과 동수를 인신매매 용의자로 보는 형사들(배두나·이주영)은 이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기 위해 뒤를 쫓는다.

일각에서는 송강호의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그에 대한 칸의 예우라고 평가절하한다. 그간 송강호가 다양한 영화로 칸 경쟁 부문을 찾았고, 심사위원도 했기 때문에 이런 누적된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남우주연상을 줬다는 얘기다. 그러나 '브로커'를 보고 나면 이런 말을 더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위대한 배우는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은 이 영화에서 극도로 세밀한 연기를 보여주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특히 몇 몇 장면에서는 잊기 힘든 얼굴을 보여준다. 극 후반부 상현이 딸과 대면하는 시퀀스는 이 대배우의 하이라이트 필름을 만들 때 반드시 들어가야 할 아름다운 연기다(고레에다 감독은 이 장면을 수차례 봤는데도 볼 때마다 대단한 연기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송강호의 연기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브로커'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렇기는 해도 고레에다 감독의 전작들을 잘 알고, 이번 영화를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작가에 초점을 맞추며 기다린 관객에게 '브로커'는 아쉬운 영화일 공산이 크다. '아무도 모른다'(2004) '걸어도 걸어도'(2009)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어느 가족'(2018) 등 그의 걸작 가족영화에 비하면 '브로커'는 유난히 무디다. 고레에다 감독의 전작들이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와 가족이라는 집단의 실체에 대한 예리한 통찰, 사회 안에서의 가족의 의미 등에 관한 화두를 던지며 도약하는 정교한 각본과 연출을 보여줬던 반면 '브로커'는 이와 유사한 형태로 설계됐으면서도 모든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허술한 구석이 많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사회 현실에 대한 잔인할 정도로 냉철한 시선을 교차하는 특유의 관점 역시 그대로이지만 '브로커'에서는 초점이 잘 맞지 않는다.

관건은 캐릭터의 윤리다. 이 영화를 관객이 납득하려면 세 주인공 상현·동수·소영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게 '브로커'의 최대 약점이다. 가족에게 버려진 이들 세 사람의 처지에 대한 연민과는 별개로 이들이 생명을 돈으로 거래해왔으며 아기를 돈으로 흥정하는 사람들이라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물론 고레에다 감독은 두 명의 형사를 통해 이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기도 하고 법적 처벌까지 받게 함으로써 최소한의 윤리성을 확보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영화는 세 사람의 인간성을 반복해서 강조함으로써 너무 일찍 이들에게 면죄부를 준다. 이 부분은 '버려진 생명'이라는 소재를 개인의 문제에서 한 발 나아가 사회 문제로 확장하기 위한 결정인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 행위가 관객 대부분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종류의 것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고레에다 감독의 이전 영화에서 거의 보이지 않던 작위적 설정이나 인물 간 관계의 극적인 변화, 정교함이 떨어지는 대사 등도 있다. 상현·동수·소영·우성·해진이 '유사 가족'으로 관계 맺는 과정은 일부 인위적인 구석이 있다. 이들이 서로의 과거와 현재 상황 등을 단시간에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모습은 급작스럽다. 게다가 일부 대사는 고레에다 감독 영화답지 않게 부정확하다. 특히 소영이 자신의 행위를 비난하는 형사 수진(배두나)을 향해 "아기를 낳기 전에 죽이는 게 아기를 낳고나서 버리는 것보다 죄가 가볍냐"고 항변하는 대사는 비교 선상에 둘 수 없는 두 가지 사안을 붙여놓음으로써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물론 이 대사를 소영의 자기변명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 말에 수진의 말문이 막혀버린다는 건 그리 좋은 연출로 보이지 않는다.

고레에다 감독 영화를 건조하고 냉정해서 덜 따뜻한 영화와 담백하고 따뜻해서 덜 냉정한 영화로 구분할 수 있다면 '브로커'는 역시 후자에 해당한다. 그의 영화 중 걸작으로 불리는 작품은 대체로 전자에, 상대적으로 평작으로 여겨지는 영화는 후자에 속했다는 건 고레에다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브로커'의 위치를 짐작하게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브로커'는 유독 덜 냉정하고 유독 더 따뜻한 작품이다. 고레에다 감독의 이전 작품에서 잘 보이지 않던 다소 감성적인 설정과 대사는 그의 영화를 오래 지켜봐온 관객에게는 낯설고 어색하게 보일 수 있다. 반면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보는 관객에게 '브로커'는 이 거장의 영화 세계로 편하게 진입하게 해주는 작품이 될 수도 있다.

'브로커'는 '어느 가족'과 함께 고레에다 감독의 '유사 가족 2부작'을 이룬다. '어느 가족'이 아동 학대와 보육에 중심을 두고 진행된다면,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를 가운데 두고 가족에게서 버려진 삶들을 그러모아 전진한다. 두 영화는 매우 닮은 데가 있는 반면 완전히 다른 면모도 있다. 버려진 사람들, 이들이 모여 이룬 유사 가족, 사람을 죽인 여자, 경찰이 대변하는 사회 일반의 시각, 결국 가족이 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게 된 상황 등은 공통점이다. 이렇게 같은 소재를 활용하고 있지만 연출 방식과 메시지의 내용, 메시지를 전하는 과정은 분명 다르다. 다만 '브로커'가 '어느 가족'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낮고 무게감도 떨어지는 작품이라는 점은 고레에다 감독의 가족영화 세계가 아직은 '어느 가족'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인상을 준다.

확실히 해둬야 할 것은 '브로커'를 향한 이런 지적들이 모두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라서 받아야 하는 비판이라는 점이다. 그가 지난 십여편의 작품을 통해 보여준 최고 수준의 각본 및 연출과 비교했을 때, 아쉬움이 있고 단점이 존재한다는 것이지 영화 자체가 수준 이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른 평범한 영화감독에게 '브로커' 정도 되는 영화는 그가 만든 최고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작품이다.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은 그의 영화 중에서도 특히 '브로커'에 깊게 스며들어 있다. 그러면서도 그런 인간들이 가엾다고 해서 삶을 무책임하게 낙관하지 않는 사려깊은 모습을 여전히 담고 있다. 무엇보다 '브로커' 속 사람들에게는 자기 연민이 거의 없다. 누구라도 '브로커'를 비판할 수 있겠지만, 이 영화를 싫어하기는 힘들다.

'브로커'에는 잊히지 않는 장면 하나가 있다. 극 후반부 소영이 한 방에 누운 상현·동수·우성·해진에게 차례로 "태워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시퀀스다. 이 말은 에둘러 가지 않고 영화 전체를 꿰뚫는다. 이처럼 직접적인 메시지가 담긴 대사는 고레에다 감독의 이전 영화들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고레에다 감독 또한 기존의 자기 방식과 상반된 성향의 대사라는 걸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이런 대사를 집어넣은 건 그만큼 이 메시지가 절실했다는 의미로 보인다. 이건 '어느 가족'의 쇼타와 유리에게,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아사노에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케이타와 류세이에게, '아무도 모른다'의 아키라와 유키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인지도 모른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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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2022/06/08 10:43:34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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