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정옥주 기자 =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판결에 따른 후폭풍이 금융권에도 몰려오고 있다. 특히 금융사 노조 측이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임금피크제 폐지 또는 전면 개편을 요구하고 나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사측도 법원이 제시한 유·무효 기준을 놓고 검토에 들어갔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대법원은 한국전자기술연구원 근로자가 제기한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으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다음날인 27일 서울남부지법은 한국전력거래소 직원 3명이 사측을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에서 '정년 연장'을 동반한 임금피크제는 합법하다는 1심 판결을 내려 혼란이 가중됐다.
임금피크제는 근로자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뒤 고용 보장이나 정년 연장을 조건으로 임금을 감축하는 제도로, 크게 정년을 유지하면서 임금을 삭감하는 '정년유지형'과 정년을 연장하는 조건으로 임금을 깎는 '정년연장형' 등으로 나뉜다. 대법원이 무효 판결을 내린 사례는 정년연장 없이 임금만 삭감한 '정년유지형'으로, 대다수 기업들이 채택하는 '정년연장형'과는 다르다.
다만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라 하더라도, 임금을 과도하게 깎는 등 사안에 따라 무효가 될 수 있어 당분간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혼선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정년유지형 효력 판단기준으로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가 입는 불이익의 정도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여부 등을 제시했다.
금융권에서는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줄어든 임금을 돌려달라는 금융권 근로자들의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금융권에는 임금피크제가 2003년 7월 신용보증기금을 시작으로 도입됐고, 이후 2005년부터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우리은행, KB국민은행, 하나은행, IBK기업은행 등이 잇따라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이들 대부분은 대상을 만 55세로 정하고 정년을 만 60세까지 늘린 뒤 매년 임금을 순차적으로 깎는 '정년연장형' 방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직원의 임금을 줄이는 대신, 업무량과 강도를 낮추는 등 노사 합의에 따라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정년연장과 업무 조정 없이 임금만 삭감한 대법원 판결 사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사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노조 측은 일부 영업점 직원들이 임금피크제 적용 전과 같은 업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중은행 중에서는 KB국민은행 노조가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국민은행 노조는 대법원 판결 이후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직원들과 간담회를 가졌고, 이번 주부터 소송인단을 공개모집해 7월께 소송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류제강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현재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343명 중 여전히 창구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인원이 133명으로, 30~40%정도가 임금피크제 전과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돼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책은행은 시중은행과 비교해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 비중이 더 높다.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 직원 대비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자 비율은 산업은행 8.9%, 기업은행 7.1%, 수출입은행 3.3%이었다. 반면 시중은행인 국민은행은 2.3%, 우리은행 2.1%, 신한·하나은행 0.1%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의 경우 이미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이 진행 중인 상태다. 산업은행 시니어 노조는 2019년 임금피크제로 깎인 임금을 돌려달라는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기업은행 현직자와 퇴직자 470명도 지난해 1월 사측을 상대로 임금피크 무효과 임금 삭감분을 반환하라는 소를 제기했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임금 감액 전 충분히 보상 조치를 했고, 업무량과 시간도 크게 줄였기 때문에 이번 판결로 인해 크게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진 않다"며 "다만 은행마다 소송 쟁점이 제각각이라 대응이 어려워 이번 기회에 임금피크제 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금융권에서는 금융노조 측이 이번 대법원 판단을 계기로 임금피크제 전체를 무효화하거나, 대폭 개선을 요구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 한국노총은 지난 2일 산하조직에 "개별 사업장의 임금피크제가 위법하다고 판단될 경우 적극적인 폐지나 보완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는 대응 지침을 배포했다. 전국사무금융노조도 성명을 내고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나이에 희망퇴직으로 등을 떠미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며 "희망퇴직의 배경이 바로 임금피크제 도입인 만큼, 지금 즉시 임금피크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같은 지침에 발맞춰 각 은행 노조들도 올해 임단협에서 임금피크제 폐지 또는 임금 삭감폭을 줄이는 등 전면적인 제도 수정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 은행 노조 관계자는 "현재 공동임금단체협상(공단협)에서서 정년연장, 임금피크 제도 폐지 등을 요구하고 있고, 공단협이 끝나면 개별 지부에서는 임금 삭감률 완화 등의 요구를 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공기업이나 은행 같은 경우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는데 문제가 굉장히 많다"며 "젊은 직원들의 경우 본인들의 승진 등에 악영향이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이 있어 이번 판결을 기초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점진적으로 임금피크 제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대법원은 한국전자기술연구원 근로자가 제기한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으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다음날인 27일 서울남부지법은 한국전력거래소 직원 3명이 사측을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에서 '정년 연장'을 동반한 임금피크제는 합법하다는 1심 판결을 내려 혼란이 가중됐다.
임금피크제는 근로자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뒤 고용 보장이나 정년 연장을 조건으로 임금을 감축하는 제도로, 크게 정년을 유지하면서 임금을 삭감하는 '정년유지형'과 정년을 연장하는 조건으로 임금을 깎는 '정년연장형' 등으로 나뉜다. 대법원이 무효 판결을 내린 사례는 정년연장 없이 임금만 삭감한 '정년유지형'으로, 대다수 기업들이 채택하는 '정년연장형'과는 다르다.
다만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라 하더라도, 임금을 과도하게 깎는 등 사안에 따라 무효가 될 수 있어 당분간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혼선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정년유지형 효력 판단기준으로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가 입는 불이익의 정도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여부 등을 제시했다.
금융권에서는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줄어든 임금을 돌려달라는 금융권 근로자들의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금융권에는 임금피크제가 2003년 7월 신용보증기금을 시작으로 도입됐고, 이후 2005년부터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우리은행, KB국민은행, 하나은행, IBK기업은행 등이 잇따라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이들 대부분은 대상을 만 55세로 정하고 정년을 만 60세까지 늘린 뒤 매년 임금을 순차적으로 깎는 '정년연장형' 방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직원의 임금을 줄이는 대신, 업무량과 강도를 낮추는 등 노사 합의에 따라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정년연장과 업무 조정 없이 임금만 삭감한 대법원 판결 사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사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노조 측은 일부 영업점 직원들이 임금피크제 적용 전과 같은 업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중은행 중에서는 KB국민은행 노조가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국민은행 노조는 대법원 판결 이후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직원들과 간담회를 가졌고, 이번 주부터 소송인단을 공개모집해 7월께 소송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류제강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현재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343명 중 여전히 창구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인원이 133명으로, 30~40%정도가 임금피크제 전과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돼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책은행은 시중은행과 비교해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 비중이 더 높다.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 직원 대비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자 비율은 산업은행 8.9%, 기업은행 7.1%, 수출입은행 3.3%이었다. 반면 시중은행인 국민은행은 2.3%, 우리은행 2.1%, 신한·하나은행 0.1%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의 경우 이미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이 진행 중인 상태다. 산업은행 시니어 노조는 2019년 임금피크제로 깎인 임금을 돌려달라는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기업은행 현직자와 퇴직자 470명도 지난해 1월 사측을 상대로 임금피크 무효과 임금 삭감분을 반환하라는 소를 제기했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임금 감액 전 충분히 보상 조치를 했고, 업무량과 시간도 크게 줄였기 때문에 이번 판결로 인해 크게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진 않다"며 "다만 은행마다 소송 쟁점이 제각각이라 대응이 어려워 이번 기회에 임금피크제 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금융권에서는 금융노조 측이 이번 대법원 판단을 계기로 임금피크제 전체를 무효화하거나, 대폭 개선을 요구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 한국노총은 지난 2일 산하조직에 "개별 사업장의 임금피크제가 위법하다고 판단될 경우 적극적인 폐지나 보완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는 대응 지침을 배포했다. 전국사무금융노조도 성명을 내고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나이에 희망퇴직으로 등을 떠미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며 "희망퇴직의 배경이 바로 임금피크제 도입인 만큼, 지금 즉시 임금피크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같은 지침에 발맞춰 각 은행 노조들도 올해 임단협에서 임금피크제 폐지 또는 임금 삭감폭을 줄이는 등 전면적인 제도 수정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 은행 노조 관계자는 "현재 공동임금단체협상(공단협)에서서 정년연장, 임금피크 제도 폐지 등을 요구하고 있고, 공단협이 끝나면 개별 지부에서는 임금 삭감률 완화 등의 요구를 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공기업이나 은행 같은 경우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는데 문제가 굉장히 많다"며 "젊은 직원들의 경우 본인들의 승진 등에 악영향이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이 있어 이번 판결을 기초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점진적으로 임금피크 제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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