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기념행사까지 참여, 믿기지 않아…안식 기원"
"고인 숙원인 항쟁 정신 계승, 진상 규명 힘쓰겠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주도' 혐의로 억울한 옥고를 치르고, 항쟁 진상 규명 활동 등에 앞장 선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별세 소식에 오월 단체와 시민사회가 일제히 애도를 표했다.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29일 뉴시스와 통화에서 "믿기지 않는다. 전날 오후 9시 넘어 항쟁 42주년 기념 행사 '오월의밤'을 마치고 자택까지 모셔다 드리며 고인이 지었던 미소가 생생하다"고 밝혔다.
이어 "생전 마지막 대화 역시 온통 5·18에 대한 근심 뿐이었다. 특히 5·18유공자 단체들이 공익법인 전환 이후 항쟁 정신 계승, 유공자 선양 사업을 보다 잘 이끌어가야 한다며 거듭 강조하셨었다"며 고인의 마지막 뜻을 전했다.
황일봉 5·18부상자회장은 "신군부에 의해 '5·18 사형수'로 평생을 굴레 속에 살면서 무엇보다도 5·18이 민주화운동으로서 제대로 평가 받기를 바라셨다"며 "먼저 간 오월 영령들의 뜻을 왜곡하지 않고 널리 계승하는 데 늘 앞장섰던 고인의 삶을 깊이 애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월 영령 앞에 어느 누구보다도 살아남은 자로서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안고 사셨던 만큼, 이제는 편히 쉬시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임종수 5·18공로자회장은 "이른바 '5·18 사형수'로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항쟁 기념 행사에 참여하면서 오월 정신 계승에 온 힘을 다했다"며 "작고 소식에 황망하기 그지 없고 많은 오월 동지들이 슬픔에 잠겼다. 남겨진 이들은 고인의 뜻을 받들어 오월 정신 계승에 더욱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류봉식 광주진보연대 대표는 "42주년 항쟁 기념행사위 마지막 회의, 저녁 식사까지 함께 할 정도로 건강한 분이셨는데 황망할 따름이다"며 "매국적 한일수교 반대 운동부터 반민주·반독재 투쟁까지 민주 진영의 큰 어른이셨다"며 추모했다.
또 "생애 마지막까지 항쟁 정신을 바로 세우고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의지로 5·18기념재단까지 이끄셨던 고인의 뜻이 못다 이뤄진 것 같아 안타깝고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고(故) 정 이사장은 이날 오전 10시 광주 남구 자택 인근 모처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고 정 이사장은 1964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을 맡았고, 1965년 한일굴욕외교 반대 투쟁을 이끌다 구속·제적당했다. 이후 사회 생활을 하다 37세였던 1980년 복학했으나 5·17비상계엄 확대 조치로 예비 검속으로 옥고를 치렀다.
전두환 신군부가 꾸며낸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의 일환으로 당시 김대중 총재의 자택에 방명록을 남겼다는 이유로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한 뒤 내란수괴 혐의를 뒤집어썼다. 군사 재판에서 이른바 '광주사태 주동자'로 분류, 사형을 선고받았다.
1982년 12월에서야 성탄절 특별사면조치로 석방됐으며, 5·18 진실 규명을 비롯한 사회 운동에 헌신했다.
1988년 국회 광주 청문회에서는 신군부의 고문 수사가 사실이라고 폭로했고, 1994년에는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35명을 내란 목적 살인 등 혐의로 고소해 처벌을 이끌어냈다. 1995년 검찰의 5·18 학살 책임자 불기소 처분에는 수사 결과를 검증하며 지속적으로 투쟁을 벌였다.
고 정 이사장은 광주민중항쟁연합 상임의장,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의장, 5·18민중항쟁 30주년 기념행사위원회 상임행사위원장, 이철규 열사 사인규명대책위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1999년 광주 남구청장 재보궐선거에 출마, 당선됐다. 이후 2002년 광주시장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지난해에는 제14대 5·18기념재단 이사장으로 선출돼 온전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활동에 힘썼다. 올해에는 42주년 5·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았다.
특히 전날 밤 열린 항쟁 기념 행사 '오월의 밤'에도 참석하는 등 진상 규명 등 5·18 미완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앞장섰다.
5·18항쟁기념행사위원회를 비롯한 광주시민사회 각 단체들은 이날 오후 긴급 회의를 열어 민주국민장 거행 여부 등 장례 절차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고 정 이사장의 빈소는 광주 동구 학동 금호장례식장 301호에 차려졌다. 발인은 오는 31일 오전 열린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명자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과 아들 재헌·재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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