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남구 5·18송암동 일원 양민 학살 조사
1980년 21~27일 사망자 16명·부상자 17명
군은 3명 사살했다고만 기록, 진상 밝혀야
[광주=뉴시스]김혜인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광주 남구 송암동·효천역 일대 외곽을 봉쇄하는 과정에 비무장 시민에게 무차별 발포해 16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계엄군이 당시 희생당한 민간인 수를 3명으로 축소하고 이를 주요 전과(戰果)로 기록해 학살 사실을 은폐·왜곡한 만큼, 송암동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4일 남구 의뢰로 조선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연구해 펴낸 '5·18 송암동·효천역 일원 양민 학살 문헌 조사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 5월 21일부터 27일까지 송암동 사건 관련 사망자는 16명이다.
부상자는 1980년 5월 21일 2명, 22일 4명, 23일 1명, 24일 10명 등 17명으로 집계됐다.
1980년 5월 21일부터 22일 사이 광주~목포 도로 차단을 위해 송암동·효천역 일대에 투입된 20사단 61연대는 '항쟁 확산을 차단하라. 통행 금지 명령과 검문에 불응하면 사격하라'는 명령에 따라 광주를 빠져 나가던 민간인·차량에 무차별 사격했다. 이 발포로 항쟁의 진실을 알리려던 많은 시민이 희생됐다.
또 1980년 5월 24일 지원동을 봉쇄하던 11공수여단이 상무충정작전을 준비하려고 61연대에게 임무를 인계하고 송정리 비행장으로 향하던 중 무차별 발포를 했다. 당시 저수지에서 친구들과 놀던 중학생 등이 희생당했다.
전교사 보병학교 교도대 병력은 같은 날 오후 2시 10분 효천역 부근에서 11공수여단에 오인 사격을 했고, 11공수 부대원들은 주변 마을에서 시민들을 연행해 '보복 학살'을 자행했다.
최근까지 이러한 반인도적인 사건의 일시·장소·주체와 희생자 규모에 대한 정확한 고증이 이뤄지지 않았고, 연구진이 진상 규명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4개월간 조사를 벌였다.
연구진은 국군통합병원진료 부상자 기록·검찰 조서·적십자 병원 기록물 자료를 한 데 모아 송암동 사건의 사상자 수를 집계했다.
연구진은 군 기록과 주민들의 증언 내용이 엇갈려 정확한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군은 전투상보에 1980년 5월 21일 오후 11시부터 이튿 날 오후 4시까지 광주~목포 도로에서 버스 6대와 대치하는 중 3명을 사살했다고만 기록했다. 군은 3명의 인적사항과 시신 처리 과정을 밝히지 않았고, 이를 전투 과정의 성과로 왜곡했다.
송암동 사건 발포 기록은 축소 또는 감춰졌고, 사상자 수습과 관련한 군 자료는 현재까지 발굴되지 않아 은폐 의혹이 제기된다.
반면 주민은 9구의 시신을 목격한 것으로 증언했다.
주민 증언 구술을 보면 주민 김복동씨는 "버스 세대가 전복, 하나는 완전히 전복, 두 대는 반쯤 전복됐다. (이하 생략) 논바닥에 세 명의 시신, 벌통 밑에 두 명의 시신, 버스 운전대에 두 사람, 바닥에 한 명, 한 명은 유리창에 기대어 사망해 총 9구의 시신을 목격했다"고 했다.
1980년 5월 24일 오인 사격과 보복 학살을 두고서도 군 기록과 주민의 입장이 달라 정확한 조사가 필요하다.
군 기록엔 5월 24일 오인 사격 이전에 있었던 발포를 '총격전(시민군과의 교전)'으로 묘사했지만, 주민과 일부 군인은 '무차별 발포(도망치는 사람을 향해 조준사격 등)'를 주장하고 있다.
안재홍(52)씨는 "군인들이 제석산 쪽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했다"라며 "대대장 같은 사람이 저수지에 있는 애들을 쐈을 것이다. 자기들 말로는 폭도라고 해서 총질을 했다는데, 그 사람들도 제정신이 아니니까 민간인 보고 (총구를)당긴 것이다"고 밝혔다.
당시 11공수여단 소속 이경남 목사는 "개인당 580발의 실탄과 수류탄·가스탄 등의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국도를 따라 이동하던 중 간간이 민간 마을을 향해 사격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왜 군인들이 시내의 소요와 관련 없는 마을을 지나며 사격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실탄 장전이 된 소총을 가진 군인들이 한편으로는 두려움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움직이는 물체를 향해 본능적으로 사격을 해댄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증언한 바 있다.
조선대학교 산학협력단 연구진은 "계엄군의 외곽 봉쇄와 무차별 사격으로 비무장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송암동 사건은 심각한 국가폭력의 사례"라며 "송암동 사건 전반에 대한 고증과 조사를 통한 진상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송암동을 비롯한 민간인 학살사건과 관련한 자료와 관계자들을 특정해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남구는 조선대학교 산학협력단과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1980년 5월 21일부터 27일까지 발생한 송암동 민간인 학살 사건을 재조명하기 위해 문헌 자료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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