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새 영화 '우연과 상상'(5월4일 개봉)은 현재 세계 영화계가 왜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를 상찬하는지 알게 한다. 하마구치 감독은 카메라로 담아낸 허구의 이야기를 관객이 믿게끔 하고, 그 이야기 속으로 관객을 빠져들게 한다는 영화의 본질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영화의 스펙터클이 꼭 눈을 자극하는 광경일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대신 그의 영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스펙터클로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파동은 서두르는 법 없이 정확한 궤적으로 날아가 목표한 곳에 명중한다. 그러니 그의 영화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우연과 상상'도 그렇다.
제목에 쓰인 우연과 상상 두 단어가 곧바로 이 영화를 설명한다. '우연과 상상'은 삶에서 흔히 발견되는 우연과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올릴 만한 평범한 상상이 현실에 어떻게 스며들어 호응하는지 지켜본다. 하마구치 감독은 "우연이 있는 게 세상의 리얼리티이고, 이 세계를 그리는 게 우연을 그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심플한 설정이지만, 각본은 더없이 정교하다. 어떤 이야기에 우연이 끼어든다는 건 흔히 그 각본의 약점으로 여겨지지만 '우연과 상상'에서 그건 가장 큰 매력이 된다. 우연의 시점과 강도를 조절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하마구치 감독의 예민한 균형 감각은 그가 뛰어난 연출가이면서 최고 수준의 각본가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한다.

이 영화는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 '문은 열어둔 채로' '다시 한 번' 3개 단편으로 구성돼 있다. 다만 각기 다른 영화를 묶어놨다는 인상은 없고, 하나의 큰 이야기를 세 가지 작은 에피소드로 그려낸 듯 각 영화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하나의 세계관을 유지한다. 우연과 상상은 과거엔 드러낼 수 없었던 진심을 꺼내보이게 하고, 우연과 상상은 예상치 못한 시점에 인생을 서늘하게 위협하며, 우연과 상상은 평생 짊어지고 살아온 응어리진 감정을 풀어주기도 한다. 하마구치 감독은 메시지를 전하려 하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건 우연이 침입하고 상상이 끼얹어진 게 우리가 사는 현실이라는 걸 관객이 다시 한 번 감각하게 한다.
'우연과 상상'은 전작 '드라이브 마이 카'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가령 1장에서 츠구미가 택시 뒷좌석에서 메이코와 대화하며 그들과 엮인 한 남자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카후쿠와 다카츠키가 차 안에서 두 사람과 엮인 여자 오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퀀스를 떠올리게 한다. 2장에서 나오와 사사키가 섹스를 한 뒤 모종의 역할극에 관해 대화하는 모습은 '드라이브 마이 카'의 가후쿠와 오토가 정사 후에 극본을 만들어가는 양상과 닮아 있다. 또 3장에서 나츠코와 아야가 서로에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는 양상은 가후쿠와 미사키가 서로에게 과거를 드러내보이는 모습과 유사하다.

두 영화는 연출 방식도 닮았다. '우연과 상상'과 '드라이브 마이 카'는 모두 대사를 적극 활용하고, 대화 하는 인물의 위치를 바꿔가며 그들의 관계 변화를 비유한다. 하마구치 감독이 만든 이 두 편의 영화는 분위기가 판이하게 다르지만, 사실상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드라이브 마이 카'에도 '우연과 상상'이 그려내는 우연과 상상 같은 것들이 서사의 변곡점이었다. 하마구치 감독은 '우연과 상상' 1장과 2장을 각각 2019년 8월과 10월에 찍었고, '드라이브 마이 카'를 2020년 3월부터 촬영하다가 코로나 사태로 일정이 중단되자 같은 해 6월에 '우연과 상상' 3장을 만든 뒤, 11월에 '드라이브 마이 카' 촬영을 재개했다.
'우연과 상상'은 하마구치 류스케라는 이름과 무관하게 편하게 즐길 수 있고, 그의 전작인 '아사코'나 '드라이브 마이 카'처럼 어둡고 무겁지도 않아 부담스럽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만큼 경쾌하고 산뜻하다. 그렇다고 해서 가볍지는 않다. 누구든 이 영화를 보고나면 함께 본 사람과 우연과 상상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하마구치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본 관객이라면, 분명 그의 전작들을 찾아서 보게 될 것이다. 우린 이런 영화를 보기 위해서라도 극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는 관객을 극장에 갈 수밖에 없게 한다는 점에서 이토록 사랑받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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