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수어(手語)는 새로운 영화 언어일까

기사등록 2022/04/28 05:27:00

홍상수 신작 '소설가의 영화' 수어 장면

'드라이브 마이 카' 수어 연기와 겹쳐져

홍상수·하마구치 류스케 수어에 주목해

소수자 주목 경향 수어 예술성 관심으로

시각 언어, 시각 예술 영화와 궁합 맞아

[서울=뉴시스] 영화 '소설가의 영화'의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영화 '소설가의 영화'의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지난 21일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 '소설가의 영화'엔 주인공 준희(이혜영)가 우연히 알게 된 서점 직원 현우(박미소)에게 수어(手語)를 배우는 장면이 나온다. 준희는 "날이 밝지만, 날은 곧 저문다. 날이 좋을 때, 실컷 다녀보자"를 수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가르쳐 달라고 한다. 현우가 알려준 수어를 수차례 따라하던 준희는 "아름답다"고 말한다. 잠깐의 정적 속에서 연우가, 준희가 수어를 하는 모습을 본 관객들 역시 이 시퀀스를 '소설가의 영화' 속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로 꼽는다.

'소설가의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지난해 말 국내 관객을 찾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를 떠올렸을 수밖에 없다. 홍 감독의 영화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작품이지만, 수어가 등장하고 역시 아름답고 강렬하게 그려진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극중 연극 연출자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를 만들면서 각기 다른 언어를 쓰는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그들에게 각자의 모국어를 쓰게 한다. 배우들 중엔 청각장애인 한국 배우 이유나(박유림)가 있고, 이유나는 가후쿠의 방식 그대로 자신의 언어인 수어로 대사를 전달한다. '바냐 아저씨'에서 '소냐'를 연기하는 이유나는 이 연극의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마지막 대사를 수어로 전달한다. 하마구치 감독은 이유나의 이 연기를 카메라에 그대로 담아 자막과 함께 내보냄으로써 수어가 얼마나 강력한 시각 언어인지 관객이 경험하게 한다. '삶은 힘겨운 것이지만, 그래도 살아보자'는 대사가 극중 이유나의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수어와 만나며 묘한 감동을 자아낸다.
[서울=뉴시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이처럼 세계 영화계는 최근 수어를 새로운 영화 언어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홍 감독과 하마구치 감독이 한국과 일본 뿐만 아니라 현재 전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영상 문법을 보여주고 있는 예술가라는 점에서 앞으로 더 많은 영화들에서 수어가 활용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수어가 영화 언어의 하나로 사용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본다. 최근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한 주류 영화계가 소수자와 그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수어 역시 단순히 청각장애인들이 생존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동수 영화평론가는 "'드라이브 마이 카'나 '소설가의 영화' 뿐만 아니라 '이터널스' '콰이어트 플레이스' '고질라 vs 콩' 등 최근 영화에서 수어가 쓰였다"며 "이들 영화에서 수어가 쓰인 맥락은 각기 다르지만, 여성·성소수자·비백인 등 소수자에 관한 영화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은 영화 안에서 수어를 만나는 일이 더 잦아질 것이고 그 활용 방식 또한 다양해질 거라고 예상해볼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 중엔 청각을 잃게 된 드러머의 이야기를 그린 '사운드 오브 메탈'이 있었고, 올해는 청각장애인 부모가 낳은 비청각장애인 아이를 뜻하는 말인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를 그대로 제목으로 삼은 영화 '코다'가 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물론 영화 '코다'에서 수어가 명확하게 영화 언어로 쓰였다고 볼 순 없겠지만, 수어가 주류 영화 안으로 완전히 스며들었다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코다'의 작품상 수상 발표 직후 시상식 참석자들이 기립해 수어로 축하를 전하는 모습은 상징적이었다.
[서울=뉴시스] 영화 '코다'의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영화 '코다'의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영화가 눈으로 보는 예술이고, 수어 역시 눈으로 봐야 이해할 수 있는 언어라는 점에서 영화와 수어가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영화 속에 수어가 나올 때 관객은 발화자의 손동작과 표정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이는 관객의 강력한 몰입으로 이어져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수어의 이런 성질이 무성영화와 닮아있다고 보기도 한다.

김철홍 영화평론가는 "수어는 소리 없이 시각적인 기호만으로 생각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무성영화와 결이 같다"며 "소리 없이 오직 인물의 몸짓과 표정에 집중하게 되는 순간이 영화에 등장할 때, 관객은 정확히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본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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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2022/04/28 05:27:0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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