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 억대 연봉의 명암…'평균의 함정, 상후하박'

기사등록 2022/04/13 10:25:10

최종수정 2022/04/19 10:31:24

웹젠 노조 파업 결의…'평균 연봉의 함정' 규탄

"평균 2000만원 인상? 백만원 단위가 대부분"

'상후하박' 심화…소수 고액 연봉자가 '평균' 올려

[서울=뉴시스] 화섬식품노조 웹젠지회가 지회 설립 1주년인 4월 5일 판교 PDCC타워 앞에서 첫 단체행동을 진행하며 대표이사와의 직접대화를 요구했다. (사진=웹젠 노조 제공)
[서울=뉴시스] 화섬식품노조 웹젠지회가 지회 설립 1주년인 4월 5일 판교 PDCC타워 앞에서 첫 단체행동을 진행하며 대표이사와의 직접대화를 요구했다. (사진=웹젠 노조 제공)
[서울=뉴시스] 오동현 기자 = "지난해 연봉이 평균 2000만원 인상됐다는데, 체감하기 어렵다."

지난해 도미노 연봉 인상으로 주목받은 IT·게임업계 근로자들이 '평균의 함정'을 호소하고 있다. 소수 임원에게만 고액의 보수가 집중되는 '상후하박' 구조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볼멘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평균 연봉이 1억원을 훌쩍 넘겨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체 직원 200명 중 199명이 연봉 5000만원을 받더라도, 임원 1명이 100억원을 받으면 이 회사의 평균 연봉은 약 1억원이 된다. 일부 회사는 이런 상후하박 구조를 '평균'이란 그럴싸한 포장지로 감싸 업계 최고 수준의 임직원 대우를 해준다고 홍보한다.

이 같은 '평균의 함정'이 실제로 벌어졌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웹젠지회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웹젠은 '연봉+성과급 평균 2000만원 인상'을 발표했다. 그러나 노영호 웹젠지회장은 "2000만원은커녕 백만원 단위가 대부분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는 소수 임원만 성과를 독식한 건 아닌지 의구심을 일으켰고, 웹젠에서 게임업계 4번째 노조가 결성된 배경이 됐다.

웹젠 노조는 첫 임금교섭에서 "동종업계 타사 대비 중위연봉이 1000만원 이상 낮다"고 주장하며 '일괄 1000만원 인상'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평균 10% 인상'(약 480만원~500만원)을 제시하면서 협상이 불발됐다. 

이후 웹젠 노조는 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을 거치며 일괄이라는 부분을 양보하고 '평균 16% 인상'에 '일시금 200만원'이라는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사측이 기존에 제시했던 평균 10%에 평가B 이상 200만원 보장이라는 추가 제안을 고수하며 또다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웹젠 노조는 게임업계 최초로 파업을 결의했다. 웹젠 노조가 지난 6~8일까지 실시한 파업 찬반 투표에 조합원 92.8%가 참여했고, ⅔ 이상이 파업에 찬성했다.

노 지회장은 "사측은 2년 연속 사상 최대 매출에도 턱없이 적은 보상을 제시했다. 대표이사와 직접 대화를 요구했는데 답이 없어서 쟁의권 찬반투표 진행한 것"이라며 "쟁의권은 확보했지만 IT위원회와 상의해서 향후 계획을 정할 것이다. 그 사이라도 회사와 대화로 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에 사측은 "노조가 장외 시위로 회사의 입장을 바꾸긴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강구했으면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웹젠은 2020년 연간 매출 2940억원, 영업이익 1082억원, 당기순이익 862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67.0%, 109.0%, 104.5% 증가한 실적이다. 2021년에는 매출 2847억원, 영업이익 1029억원, 당기순이익 86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3.17%, 4.86% 줄었고, 당기순이익은 0.69% 늘었다.

노 지회장은 "웹젠은 대외적으로도 유보금이 많다고 할 정도로 부자 회사다. 지난 3월 25일 주주총회에서는 임원 보수 한도가 100억으로 승인됐다"며 "작년 '평균 2000만원의 함정' 이후 많은 퇴사 인원이 있었음에도, 남은 웹젠 직원들은 1년간 맡은바 업무를 충실히 수행해 그 전년도에 필적하는 성과를 달성했다"고 이번 파업 결의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상후하박' 갈등…임원들 스톡옵션 행사에 상대적 박탈감

[서울=뉴시스] 화섬식품노조 웹젠지회가 지회 설립 1주년인 4월 5일 판교 PDCC타워 앞에서 첫 단체행동을 진행하며 장외투쟁을 벌였다. (사진=웹젠 노조 제공)
[서울=뉴시스] 화섬식품노조 웹젠지회가 지회 설립 1주년인 4월 5일 판교 PDCC타워 앞에서 첫 단체행동을 진행하며 장외투쟁을 벌였다. (사진=웹젠 노조 제공)
기업들은 웹젠에서 촉발한 임직원 간 연봉 갈등이 업계 전체로 불똥이 튀진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IT·게임업계는 지난해부터 돈 보따리를 풀며 우수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던 상황이다. 특히 2020년 고공 성장을 이룬 넥슨, 넷마블, 크래프톤, 컴투스 등 국내 게임사들이 임금 인상을 주도했다. 올해는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 기업들이 경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카카오의 새 경영진은 내정 직후 임금 인상 계획부터 밝혔다. 남궁훈 카카오 대표는 올해 임직원 연봉 예산을 15% 늘리겠다고 했다. 이에 카카오는 연봉 예산의 절반 정도로 임직원 기본급을 500만원씩 인상키로 했다. 또 남은 예산으로는 전년도 성과 등을 고려해 추가로 인상할 예정이다.

네이버는 복지와 임금 두 가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원격 업무기기, 휴가비 지원 등이 담긴 복지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네이버 노사가 올해 임직원 연봉 예산을 전년 대비 10% 인상하는 데 잠정 합의했다. 

그렇다고 두 기업이 '상후하박' 논란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특히 카카오의 경우 계열사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들이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행사로 거액의 시세차익을 거둬 비난받을 때,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젊은 직원들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카카오 임직원 평균 급여는 1억7200만원으로 확인됐는데, 스톡옵션 행사 차익을 제외하면 8900만원이다.

네이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미등기 임원 119명의 평균 급여만 4억630만원에 달한다. 이는 임직원 평균 급여액 1억2915만원보다 3배 이상 많다. 네이버에서 노조가 결성된 2018년 당시에도 "정당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성과급 축소 및 근로 환경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일류 기업들과 경쟁하려면 맨파워 강화가 필수라, 지난해부터 대형 IT 회사를 중심으로 개발자 유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며 "회사는 성과에 걸맞은 보상으로 임직원들의 동기부여를 극대화하려 하지만, 성과 평가 방법 등에서 마찰도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일부 스타 개발자를 제외하면 고액의 연봉을 받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다수의 중소 IT 기업 직원들은 고된 업무 강도와 기대 이하의 연봉을 받고 있어 상대적 박탈감도 상당하다. 반대로 예산이 많지 않은 고용주 입장에서도 인재를 뺏길까 전전긍긍한다"면서 "회사가 고액 연봉을 주는 이유가 있다. 이는 과도한 성과 경쟁으로 이어져 개발자들의 근속 연수도 상대적으로 짧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IT업계 억대 연봉의 명암…'평균의 함정, 상후하박'

기사등록 2022/04/13 10:25:10 최초수정 2022/04/19 10:31:24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