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김재환 기자 = 기원전 5세기 무렵, 대부분 국가의 질서를 주도한 건 종교였다. 국가는 신을 섬기고 그의 말씀을 실천하는 방향으로 운영됐다. 백성은 국가 지도자와 교리를 그대로 따라야 하는 신민에 불과했다. 그 시기 유일하게 종교의 교리보다 합의가 우선되고, 신민이 아닌 시민이 존재했던 곳이 그리스 아테네다.
아테네에선 합의 없이 국가가 운영되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 군대를 보낼 것인지, 전쟁에서 공을 세운 이에게 상을 줄 것인지 등에 관해 항상 토론하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했다. 다수의 합의를 거쳐 정해진 사안도 다른 의견이 있다면 언제든 뒤집을 수 있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히 박탈)을 서둘러 추진하는 더불어민주당과는 사뭇 비교되는 모습이다.
지난달 23일 "새 정부 출범 전까지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고 밝힌 민주당이 2주간 취한 행동은 검찰뿐 아니라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엔 충분했다. 같은 당 출신 무소속 의원을 법제사법위원회로 데려와, 의견을 달리하는 법안을 심의하는 안건조정위원회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꼼수를 부렸기 때문이다.
국회 대응 업무 등을 담당하는 대검찰청 주무과장이 "이미 지난해 공수처법, 탄소중립법, 사립학교법, 언론중재법 등에서 비슷한 형태의 사·보임을 통해 안건조정위가 무력화됐던 사례가 있다"며 진의를 의심했지만, 여당은 "검찰이 환골탈태할 때까지 개혁을 멈추지 않겠다"고 맞설 뿐이었다.
여당은 이처럼 사실상 절차를 무력화시키면서 검수완박을 서두르려는 이유로 '민생'을 든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검찰의 권한남용을 방지해 국민이 억울한 일을 없게 하려 입법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박탈하려는 검찰의 직접수사권은 현재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서만 유효하다. 이것들이 '민생'과 가까운 수사분야인가.
오히려 국민들의 억울한 일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검·경 수사권조정'으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중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센터는 지난해 수사권조정 이후 소속 변호사들을 상대로 한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한 소속 변호사 47명 중 '수사과정이 좋아졌다'고 응답한 건 단 2명뿐이었다. '나빠졌다'는 응답은 32명에 달해 부정적 견해가 지배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답변에는 국민들의 억울함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처리기간이 너무 길고 조사내용 또한 전혀 전문적이지 못하다", "고소 사건을 경찰서에서 임의로 반려하거나 접수하기를 꺼렸다", "○○경찰서는 불기소 통지도 없었다", "복잡한 사건은 별다른 수사없이 불송치 결정했다", "법리를 모르고 부실수사 후 불송치 결정했다", "대형 경찰서는 고소사건이 사소하다고 생각하면 대충 수사하고 장기간 방치했다", "작은 경찰서는 복잡한 경제범죄 사건은 관련 회계 서류를 파악하지 못하는 등 수사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 등.
6대 범죄보다 민생과 밀접한 고소사건을 맡은 변호사들의 설문으로, 수사기관이 아닌 국민의 생각이 반영된 내용들이다. 이렇듯 수사권조정으로 지난 1년간 민생 현장에선 혼란이 여전한데, 민주당의 당론은 후속 대책이나 개선안과는 거리가 멀다. 오로지 '정권교체 전 검수완박'을 위해 속도를 낼 뿐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목적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기 힘든 것이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이미 6대 범죄로 검찰 수사권을 줄여놓은 상태에서 아예 박탈하는 게 정말 국민을 위한 것인가 의심된다"며 "국민들이 보기에는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검찰의 권력수사에 대한 두려움이 반영된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검심(檢心)까지 완벽히 설득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국민이 현재의 형사사법체계에서 느끼고 있는 불편은 무엇이며, 그것을 검수완박이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지 최소한의 설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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