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돌려주겠다는 우크라 제안에 반응조차 없어
6주 동안 전사자 2만 육박하나 러 발표는 1351명
'파시스트 무찌른다' 선전…전사자 늘어도 푸틴 안전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우크라이나 키이우 주변에서 패퇴한 러시아군의 시신이 곳곳에 널려 있지만 러시아는 전사자숫자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15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모든 군 사망자 정보를 국가 비밀로 정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지난해 러시아는 군의 신뢰도를 떨어트리는 발언을 처벌하는 법을 제정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지난 6주 동안 발생한 러시아군 사망자수를 7000명~1만5000명으로 추정하며 우크라이나 정부는 1만8600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10년 동안 1만4453명의 군인을 잃었으며 2차례의 체첸 전쟁에서는 1만1000명을 잃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전사자를 1351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영 TV들은 이 숫자조차 밝히지 않는다. 러시아가 2차 대공세를 준비하는 가운데 러시아 매체들은 사상자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
알타이 지방 알레이스크에서 온 수십명이 체르니히우 인근 전투에서 사망했다. 이 소식이 가족들에 전해진 뒤 지역 신문은 "존경하는 군가족 여러분! 한 곳에 모이지 않기를 요청한다. 도발적 정보에 속지 말라"는 도깨비같은 말을 실었다.
수십명의 전사자가 발생한 첼랴빈스크에서도 "히스테리를 자극하기 위해 조작된" 허위 정보에 대해 경고한다는 통지가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나치들"이 "허위 정보를 만들기 위해 우리 군인들에 관한 소식을 수집"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모스크바 인근 나로-포민스크 주둔 136 정찰대대 소속 소총사수인 바딤 콜로디예(19)는 장갑차에 탄 채로 공격을 받아 숨졌다고 러시아군이 지난 달 그의 어머니 타티아나에게 통지했으나 어머니는 그의 유해를 받지 못했다.
타티아나는 "정말 화가 났다. 바딤은 탈출시도조차 못했다. 안에서 타죽었다"고 소셜 미디어에 썼다. 콜로디예의 전사소식이 전해진 몇주 뒤 그의 유해라는 그을린 물체를 로스토프의 한 연구소에서 DNA 분석한 결과 콜로디예의 유해가 아니었다.
니키타 데랴빈의 미망인 아냐 데랴비나는 지난달 남편의 장례를 치렀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첼랴빈스크 출신 데랴빈(25)은 부인을 사랑했고 세 아이가 있었다. 군인인 것을 자랑스러워 한 저격수였던 그가 "훈련"에 나갔다가 지난달 8일 전투중 사망했다. 데랴비나는 아직도 남편이 함께 있는 꿈을 꾼다고 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 중 일부는 러시아가 공격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굴나라 발리예바(43)는 아들이 키이우 인근 호스토멜에서 군견과 함께 전사했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러시아가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썼다. 아들을 묻는 뒤 러시아군에 아들이 기르던 죽은 군견의 새끼를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자식대신 기르겠다는 것이다.
반면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아들이 전사한 올가 필리포바는 지난달 11일 "사람들이 가족들이 우크라이나에 갔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소리냐? 무엇 때문에?"라고 썼다.
우크라이나는 약 7000여구의 미확인 러시아군 전사자 시신을 보관하고 있다고 알렉시예 아레스토비치 대통령 보좌관이 밝혔다. 러시아군 전사자가 1만8600명이라는 우크라이나 통계는 전장에서 올라온 보고와 러시아군 통신 도청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발발 3일 뒤 3000명의 러시아군 시신을 돌려주려고 시도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숫자를 믿을 수 없다. 우리 전사자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이후에도 몇 번이나 전사자를 돌려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러시아군은 아예 논의조차 하려들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내무부는 러시아주민들이 전사자와 포로로 잡힌 러시아군 사진을 확인할 수 있는 웹사이트와 텔레그램 채널을 만들었다. 전사자 가족들이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남부 보즈네센스크 출신 예베니 벨리코 소령(32)이 전투가 벌어진 이틀 뒤 주민들에게 러시아군 시신을 모으라고 요청했다. "그들을 어머니와 부인들에게 돌려보내려 했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군이든 아니든 모든 시신을 존중했다"면서 뒤에 시신들을 키이우로 보냈다고 했다.
인근의 바슈탄카 마을 올렉산드르 베레고비 시장은 러시아군 전사자들 기록을 남기고 집단매장했다고 밝혔다.
영국 채텀하우스 케어 자일즈는 서방과 러시아군의 전사자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밤과 낮이다. 민간인 사상자에 대한 태도와 똑같다. 서방 군대의 작전엔 부수적 피해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조기 승리를 기대했지만 실패했다. 자일즈는 "그러자 러시아가 전쟁 승리를 위해 잔인한 방식으로 전환했다"면서 이에 따라 사상자가 양측에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1994년 체첸 전쟁 당시 러시아군은 탱크가 길을 잘 찾지 못한 데다 공중지원을 받지 못하고 무선 통신을 할 수 없었던 탓에 크게 패퇴했다. 당시는 러시아에서 자유언론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러시아 군인들이 장갑차에서 산 채로 불에 타는 장면을 내보냈다. 그러자 부모들이 직접 체첸으로 가 자식들을 데려왔다.
당시 군인어머니위원회 회장이던 발렌티나 멜린코바는 항의와 분노의 표상이었다. 지난해 12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주변에 집결하자 그의 전화가 끊겼다. 2월24일 러시아가 침공하자 부모들에게 1990년대 경험을 들려줬다. 직접 가서 자식을 데려와 숨겨두든지 도망치라고 말하라고 했다고 유투브에서 밝혔다. 그러나 그렇게 한 부모가 한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1995년 2500명이 그로즈니 도로에 방치된 채 동물들에게 뜯겼다"면서 우크라이나의 전사자 집계가 신분증으로 확인한 명단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정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그는 러시아의 통계가 "우리 군이 시신을 수습하지도 부상자를 데려오지도 않는 것을 감안할 때 실제와 차이가 날 것"이라고 했다. "'작전중 실종'으로 보고하는 것이 훨씬 돈이 덜 든다"고 했다.
"민간 군인법"이라는 인권단체 책임자 세르게이 크리벤코는 러시아 사람들이 징집병의 사망에 민감하다고 말했다. 푸틴은 징집병을 우크라이나에 파병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일부가 파병됐다. 러시아군 전사자수가 늘어나면 불만이 커져도 푸틴을 위협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파시스트를 무찌르고 있다는 선전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전사가가 100배 이상 늘지 않는 한 혼란이 일어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