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학년부터 11학년까지 첫 신입생 30명 선발
학생 주관 미디어데이 행사 열고 언론 첫 공개
‘대안교육 전문가’ 하태욱 교수, 초대교장
[수원=뉴시스] 박종대 기자 = 올해 3월 경기도교육청이 개교한 기숙형 공립 대안학교인 ‘신나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7일 미디어데이를 열고 언론사를 초청해 직접 학교를 소개하면서 처음으로 외부에 수업 장면을 공개했다. 이 학교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새로운 교육시스템인 ‘미래학교’ 가운데 첫 사례다.
이 학교는 정식 개교하기 전에 '해리포터 마법학교'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모험과 재미가 가득한 학교 공간으로 만들자는 의미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이날 미디어데이는 경기도 안성시 백성2길 59에 위치한 ‘안성몽실학교’에서 열렸다. '신나는 학교'는 정식 학교 건물이 완공되기 전까지 이곳을 교실로 빌려쓰고 있다. 단위별 소그룹 형태로 꾸려진 ‘신나는 홍보위원회’ 소속 학생 7명이 발표를 맡았다.
해당 학교는 보통 교명에 지역 명칭이 들어가 있는 게 일반적인 우리나라 학교 풍토 속에서 자칫 장난스럽게 보일 수 있는 ‘신나는’이라는 형용사 단어를 학교 이름에 과감히 가져다썼다. 그만큼 생애 첫 미디어데이에 나선 학생들의 얼굴 속에서 푸릇푸릇한 청소년 특유의 장난기 섞인 표정도 엿보였지만, 발표를 할 때만큼은 진지한 자세로 임했다.
한 달 동안 부모의 품을 떠나 생활한 학생들은 일반 학교 진학이 아닌 자신이 개척한 새로운 도전에 낯설어 할 때도 있지만, 조금씩 적응해나가면서 한 뼘 더 성장한 모습처럼 보였다.
이 학생들은 언론에 학교를 소개할 소식지와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물론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 동영상까지 각자 역할을 나눠 스스로 모든 과정을 준비했다. 민간기업·공공기관·단체에서 운영하는 홍보팀 업무를 체험해본 셈이다. 교사의 역할은 학생들의 준비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했을 때 보조하거나 행정적 지원을 위주로 최소화했다.
전체 학생 정원이 90명인 이 학교는 올해 첫 신입생으로 30명(고3학년 미선발)을 선발했다. 예민한 사춘기, 평일 주중에 함께 모여 사는 기숙형 대안학교이기 때문에 학생 선발은 서류 심사와 심층 면접, 팀 프로젝트 등 면밀한 과정을 거쳐 여학생 24명, 남학생 6명을 뽑았다. 학생과 학부모의 뜨거운 관심으로 지원자가 몰리면서 경쟁률도 3대 1를 기록했다.
가장 학년이 높은 11학년 하수연(17)양은 ‘신나는 학교’ 입학 동기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예체능 쪽으로 진로를 고려하고 있는데 부모님 추천으로 ‘신나는 학교’를 알게 됐다. 처음에는 이 학교에 오는 게 무모한 도전으로 생각돼 관심이 없었다”며 “하지만 큰 결심이었지만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꿈과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옛 안성 보개초등학교 건물 리모델링을 마치는 내년 3월부터 학생들은 현재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안성몽실학교'에서 이곳으로 터전을 옮겨와 정식 학교 건물과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 전까지 학생들은 안성몽실학교에서 약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경기도교육청 교직원 연수시설인 안성 수덕원을 기숙사로 쓰고 있다.
이날 소개한 내용 가운데 가장 시선을 잡아끈 것은 학생과 교사가 동등한 수평적 관계에서 나이와 학년을 불문하고 학생 자신이 원하는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신나는 학교’에서는 일반 학교로 따지면 중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까지 나이에 따라 학년을 구분하는 학제가 큰 의미가 없어보였다. 이 학교에서는 중학교 1학년을 7학년으로, 고등학교 3학년을 12학년으로 불렀다.
일반 학생들이 학교가 배정한 대로 같은 학년끼리, 똑같은 정규 교과수업을 듣는다면 이곳 학생들은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주제를 직접 수업과목으로 제안할 수 있다. 무엇을 배우고 어떤 과제를 수행할지도 학생들이 짠다. 이렇게 학생 제안으로 구성된 프로젝트형 수업은 한 학기 내내 진행되지 않는다. 과제 수행이 모두 완료되면 과목도 종료되고, 다른 탐구과제를 개발해서 다음 수업으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한 학생이 공개한 수업시간표를 보면 ‘인간관계와 리더십’, ‘인류의 지혜’, ‘내 삶의 나침반’, ‘팀프로젝트’, ‘자연의 법칙’, ‘상상과 표현’ 등 일반 학교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과목들로 채워져 있다.
하양은 “일반 학교에 다닐 때는 책상에 앉아서 교과서 위주의 수업을 받았는데 ‘신나는 학교’에서는 파쿠르 체험과 같은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업도 한다”며 “그동안 수능과 내신, 대학 입시에 집중된 수업에 답답함을 많이 느꼈는데 여기서는 하고 싶은 것을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달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한 평화의 가치와 세월호 참사 8주기를 맞아 안전의 의미를 탐구해보는 프로젝트를 학생들이 수행 중이다. 이날 다른 교실에서 진행된 프로젝트 수업 중에서 7학년부터 11학년까지 학생들이 세월호 유가족 4명과 함께 노란색 리본 등 세월호 추모품을 만들어보는 수업도 공개됐다.
학교 측은 학생들이 특정 관심사에 빠져 편중된 교육을 받지 않도록 각 시기마다 필요한 국어·영어·수학·과학과 같은 정규 과목도 함께 진행한다. 다만 이러한 수업도 일반 학교와 달리 교사가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하향식이 아닌 학생 참여가 중심이 되는 상향식이다.
이 때문에 ‘신나는 학교’에서 ‘협업’은 무척 중요하다.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이해충돌을 서로 소통을 통해 조율하는 과정이 ‘배움’인 셈이다.
기숙사 생활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고 공동체 생활을 배울 수 있는 일종의 교육플랫폼이다. 교사와 교직원들은 ‘학교와 기숙사’라는 일상 공간 속에서 학생들이 이러한 갈등과 역경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통해 일반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교육적 가치를 깨닫고 이를 삶의 태도로 확대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학교 초대교장은 우리나라 대안교육 분야에서 손꼽히는 학자이자 권위자로 평가받고 하태욱 전 건신대학원대학교 교수다.
하 교장은 “아직 학교 건물도 안 만들어진 상황에서 많은 지원자가 몰린 것을 보고 학생과 학부모들이 이런 교육에 대한 목마름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학생들이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했을 때 거센 파도와 같이 밀려드는 어떤 역경도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는 공간이 아닌 도전하는 학교로서 내 삶을 서핑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학교로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