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인 향수 짙은 크림반도 합병 땐 압도적 지지
우크라이나 분쟁, 서방에 책임 있다고 생각하지만
참전 의지는 미약…전쟁때 푸틴 지지할 지는 미지수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모스크바 중심가 크레믈린궁 성벽 바로 밑에는 연말연초 연휴를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붉은 광정에도 흥청거리는 사람들이 넘친다.
이곳에서 수천 km 떨어진 곳에서 러시아 정부 대표들이 서방국들을 향해 안보보장을 요구하고 있고 서방국 대표들은 우크라이나 접경 러시아 군대를 물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모스크바 분위기만 보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8살 난 아들과 6살 딸에게 밀크셰이크를 먹이고 있는 크리스티나 코스토바는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해 묻자 "사람들이 전쟁을 원하느냐구요?"라면서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좋아한다. 정치적 차이는 있지만 지금처럼 갈등하는 건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남편 미하일도 "전쟁은 안 일어날 것"이라며 "일어난다고 해도 우리가 어쩌지는 못하겠지만"이라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몇 달 동안 우크라이나 접경지에 군대를 증강시켰고 러시아 국영 TV는 전쟁 가능성을 언급해왔다. 친정부 정치 토크쇼에선 서방이 부추기는 탓에 우크라이나에서 민족주의가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 TV들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소비에트 연방 시절 동상을 무너트리는 장면을 내보내고 있다. 지난 여름 우크라이나 서부 리비프시 주민들이 구 소련군이 나치독일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기념비를 해체했다. 이를 두고 러시아 TV는 "우크라이나에선 러시아 소비에트 시절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파괴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 가운데 푸틴 대통령이 2주간의 휴일 전야에 서방을 향해 최후통첩을 보냈다. 러시아는 2014년 2월 크림반도에 군대를 보냈고 그해 연말에 돈바스 지역을 장악한 반군을 도와 우크라이나 정부군을 몰아냈다.
크림반도를 합병한 뒤 푸틴에 대한 지지율이 80% 이상으로 치솟았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서도 러시아 국민들이 푸틴을 지지하는 지는 확실치 않다. 지난달 레바다센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국민 40%가 지지한다고 했지만 38% 가까운 국민은 전쟁이 안 일어날 것이라고 했고 15%는 전쟁가능성을 아예 부정했다. 러시아국민들의 과반수가 전쟁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카네기 모스크바센터의 선임연구원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는 "도시와 잘 사는 곳에선 자식을 전쟁에 내보내고 싶은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장에서 만난 크림 반도 출신 청년 막심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나서 "징집되면 첫 공격에 죽을 지 모른다. 누구를 보낼 수 있나? 틱톡하는 아이들?"이라고 이죽거렸다.
크림반도는 러시아인들에게 큰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곳이다. 오래도록 러시아인들은 여름만 되면 크림반도의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곤 했다. 이 때문에 2014년 크림 반도 합병으로 푸틴 대통령은 큰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서방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비난하면서 G8에서 러시아를 축출하고 제재를 가했다.
콜레스니코프는 "크림반도는 총 한 방 쏘지 않고 찾았다. 전쟁은 없었고 승리만 있었다. 러시아 사람들로선 평화롭고 손쉬운 정의구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돈바스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정서는 크림반도와 다르다. 또 몇 년 째 이어지는 전쟁으로 러시아인들이 신물을 낼 정도가 됐다.
레바다센터 데니스 볼코프 대표는 러시아인 과반수가 돈바스를 합병하길 원치 않으며 다만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주민들이 독립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했다. 러시아인들은 푸틴대통령이 주장대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동질성을 가진다는 점을 지지한다.
그러나 돈바스의 독립이나 합병을 위해 러시아의 젊은이들이 전쟁에 나서는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다.
지난 몇년 동안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인의 역사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중 한가지가 우크라이나가 현대 러시아와 분리된 역사와 문화를 가졌음을 부정하는 내용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분리할 수 없고 우크라이나인들의 독립 움직임은 서방이 러시아를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다.
푸틴의 이 주장이 먹혀드는 분위기도 있다. 레바다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국민들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대해선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해선 부정적 생각을 보인다.
이 점이 푸틴대통령이 현재 진행중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협상에서 초점을 맞추는 대목이다. 레바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 절반이 미국과 NATO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16%가 우크라이나에, 4%만이 러시아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쟁이 발발하는 경우 러시아인들은 침략자가 러시아가 아닌 NATO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볼코프 대표는 "NATO가 우리를 전쟁에 끌어들인다면 돈바스의 러시아어 사용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대응해야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볼코프는 러시아인들은 NATO와 미국이 옛 소련연방 회원국과 러시아간 갈등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크림반도와 달리 돈바스 지역 문제에서도 러시아인들이 푸틴을 지지할 지는 두고볼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전쟁이나 국제적 긴장에 염증을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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