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호 화백 "무서운 호랑이 이미지는 일제 잔재…우리 호랑이는 재미있고 편안" [신년 인터뷰]

기사등록 2022/01/03 05:01:00

'호랑이 수묵화' 작가로 유명한 한국화가·만화가

대통령이 외국 정상들에게 선물한 그림 주인공

임인년 맞아 수묵 만화 '불멸의 호랑이' 출간

'다모'·'미스터 션샤인' 등 활약…최근 '청춘월담' 촬영

"새해는 용맹한 호랑이처럼 당당하고 활기찬 해 되길"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만화 '불멸의 호랑이' 정석호 작가가 지난해 12월 27일 경기도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작업실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2022.01.03.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만화 '불멸의 호랑이' 정석호 작가가 지난해 12월 27일 경기도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작업실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2022.01.0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현주 기자 = "입을 벌리고 포효하거나 대나무밭을 기어 내려오는 식의 무섭고 강한 호랑이 모습은 일제시대 잔재예요. 우리나라 호랑이 그림은 대부분 재밌고 편안하죠."

'호랑이 수묵화' 작가로 유명한 한국화가 겸 만화가인 정석호 화백은 신년맞이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민족이 호랑이를 정말 좋아하는 민족인데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그림이 많이 왜곡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2022년 임인년 검은 호랑이의 해를 맞아 만화 '불멸의 호랑이'를 출간했다. 국내 최초 그래픽노블 기법으로 그려진 호랑이 수묵화들이 한 권의 책에 담겼다.

영웅은 일시적으로는 숨어 있지만 때가 되면 반드시 세상에 드러난다는 뜻의 '맹호복초(猛虎伏草·용맹스러운 범은 풀밭에 엎드려 있다)'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시베리아 불곰에게 공격을 당해 사랑하는 부모형제들을 모두 잃은 백호가 오랜 시간 홀로 시련을 극복하며 대자연에서 맹호로 성장한 뒤 불곰을 물리치고 결국 산의 주인공이 된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정석호 작가의 만화 '불멸의 호랑이' 표지. (사진=작가 제공) 2022.01.03.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정석호 작가의 만화 '불멸의 호랑이' 표지. (사진=작가 제공) 2022.01.03. [email protected]
"원래 2014년에 일본과 한국에서 출간했던 책이에요. 일본 측에서 먼저 요청을 해서 찍게됐죠. 지난해 모든 계약기간이 만료되면서 절판됐는데 호랑이의 해를 맞아 이렇게 다시 출간하게 돼 기쁩니다."

수묵으로 한국화를 그린 지는 30여년, 호랑이를 그린 지는 19년 정도 됐다. 그는 "주로 순수미술 쪽으로만 작업을 해왔는데 만화로 꾸며서 책으로 남기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주문 제작되는 그림은 손님에게 넘기고 나면 그냥 지나갈 때도 많은데 책으로 남으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정 화백은 대통령이 각국 정상들에게 선물로 주는 그림의 주인공으로도 화제가 된 바 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대통령궁에는 그가 그린 '참매', 인도네시아 대통령궁에는 '백호 부부', 아랍에미리트 대통령궁에는 '설악 참매'가 소장돼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시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왔을때 청와대 측으로부터 그림 선물을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우즈베키스탄에 매가 많아서 매 그림을 하게 됐고 제 그림이 선택됐죠. 이후 인도네시아와 아랍에미리트에 방문할 때도 제가 그린 매와 호랑이 그림을 가져갔어요. 문재인 대통령도 아랍에미리트 첫 방문 때 제 그림을 가져갔죠."

처음부터 호랑이를 그렸던 건 아니다. 주로 산수화를 그리다가 개를 좋아해 진돗개를 그리게 됐다. 그 이후로 좀더 강한 동물을 그려보자 하다가 가장 센 동물인 호랑이까지 왔다.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좋아하는 민족입니다. 김홍도 선생을 비롯해 많은 훌륭한 분들이 호랑이를 그려왔죠. 일제시대 잔재가 그대로 내려오면서 공격적 호랑이로 그림이 많이 왜곡돼 있는데 저는 그 관념을 바꾸고 싶습니다."

한국의 호랑이 그림은 편안하고 재미있는 느낌이 많다는 설명이다. 그는 "일본 사무라이들은 사무라이 호랑이라고 해서 강한 기질, 느낌의 호랑이를 병풍으로 방 뒤에 많이 놓았다"며 "그게 아직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 시대 호랑이는 대표적으로 '까치 호랑이'로 설명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우리나라 호랑이는 주로 산신령이나 동자 등과 함께 편안한 모습으로 있죠. 무섭게 표현하는 경우는 드물었어요. 김홍도 선생의 맹호도 정도가 살짝 거칠고 나머지 그림들은 대부분 재밌고 편안하죠."

[서울=뉴시스] 정석호 작가의 작품 '백호'. (사진=작가 제공) 2022.01.03.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정석호 작가의 작품 '백호'. (사진=작가 제공) 2022.01.03. [email protected]
호랑이를 그릴 때 가장 중시하는 부분은 눈이다. 정 화백은 "눈, 얼굴표정을 최대한 차분하고 선하게 그리려고 노력한다. 눈매가 의도한 대로 나오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한다"며 "눈이 제대로 그려지면 90% 이상이 된 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처음 호랑이를 그릴 때는 서울대공원에 많이 갔죠. 그때는 지금처럼 유튜브나 동영상도 많이 없었고, 그런데 너무 멀어서 잘 안보이잖아요. 그래서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 등 외국 잡지나 사진, 책을 많이 참고했죠. 임순남 한국야생호랑이연구소장도 많이 찾아갔어요. 지금은 다큐멘터리 등 동영상이 많아 늘상 틀어놔요."

만화 시장에서는 생소할 수 있는 100% 수작업 수묵화다. 그는 "3~4시간 걸린 그림도 있고, 15일 이상 그린 그림도 있다"며 "호랑이, 특히 백호는 줄무늬가 강한 짐승이라 수묵으로 나타내기 좋다"고 설명했다.

책에서 가장 애착가는 장면은 주인공 백호와 원수 불곰이 싸우는 마지막 장면이다.

"액션에 정말 신경을 많이 썼어요. 호랑이가 점프하는 장면을 보면 과장됐나 싶기도 하지만 실제 박차고 뛰면 이만큼 높이 뛰지요. 앞에서 리얼리티를 잘 살렸는데 뒤에서 과장됐다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뒤쪽을 많이 신경썼습니다."
[서울=뉴시스] 정석호 작가의 작품 '백호'. (사진=작가 제공) 2022.01.03.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정석호 작가의 작품 '백호'. (사진=작가 제공) 2022.01.03. [email protected]


차기작으로 주인공 백호의 아버지 이야기를 그린 '백호 비기닝'을 준비하고 있다. 단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1년 안에는 완성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전망이다.

"호랑이는 혼자 생활하는 동물이에요. 평균 수명이 20~25년 정도 되는데 짝짓기 후 어미는 새끼가 성장할 때까지 지켜보다가 새끼가 크면 영역을 양보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죠. 그런 호랑이의 이야기를 더 그리고 싶네요."

본업인 화가의 끈도 여전히 놓지 않고 있다. 호랑이의 해를 맞아 호랑이 그림을 찾는 사람들은 많아졌지만 코로나 상황이라는 특수 상황 탓에 제약이 많다.

"매년 한 10점 정도는 주문을 받고 그림을 그려요. 기업에서 해외 손님들 선물용으로 많이 주문하죠.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그런게 좀 없어졌네요. 2010년에는 정말 바빴었는데, 지금은 아무래도 코로나 여파가 있어요."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만화 '불멸의 호랑이' 정석호 작가가 지난해 12월 27일 경기도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작업실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2022.01.03.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만화 '불멸의 호랑이' 정석호 작가가 지난해 12월 27일 경기도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작업실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2022.01.03. [email protected]


전시회도 계획했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취소했다. 그는 "작년 초까지만 해도 예술의 전당 같은 곳에서 크게 하려고 했는데, 코로나 상황이 심각하다"며 "이번 호랑이 해는 조용히 넘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래도 여전히 정 화백을 찾는 곳이 많다. 드라마 '다모', '미스터 션샤인', '성균과 스캔들' 등 다수 작품에서 그림을 그리고 대역으로 출연했던 그는 최근 tvN 드라마 '청춘월담' 촬영을 마쳤다.

"'다모'에서 그림 그린 이서진씨 대역이 접니다. 하하. 처음에 붓 잡는 법부터 알려주고, 다 끝나고 난 뒤 제가 이서진씨 옷을 입고 그림을 실제로 그렸죠. 그 다음에 합성을 하더라구요. 드라마 속에 많이 등장하는 용모파기 그림도 많이 그리고, 난을 치거나 할 때도 제가 많이 등장했죠."

새해는 용맹한 호랑이처럼 당당하고 활기찬 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코로나 상황이 2년 이상 이어지면서 많은 분들이 움츠러들어있어요. 코로나가 종식되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그런 해가 됐으면 좋겠네요. 거친 야생에서 고군분투하는 백호의 성장 과정을 통해 삶의 지혜와 강인한 정신력,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길 바랍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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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호 화백 "무서운 호랑이 이미지는 일제 잔재…우리 호랑이는 재미있고 편안" [신년 인터뷰]

기사등록 2022/01/03 05:01:0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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