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서 한국 첫 대규모 개인전
"압제에 맞설 수 없다면 예술이 아니다" 억압 저항 작품으로
표현의 자유·난민 문제 다룬 사진 설치 등 120여점 전시
‘디지털 세상’, '인간 미래’ 담은 메시지 가득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사실 우리가 현실의 일부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생산적인 현실이다. 우리는 현실이지만, 현실의 일부라는 것은 우리가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아이웨이웨이 블로그' 책 중에서)
2008년 쓰촨 대지진 발생 후, 아이 웨이웨이(Ai Weiwei·64)는 더 이상 예술가로만 머물지 않았다. 시민조사단을 결성하며 행동에 나섰다. 피해자 가족, 관리, 노동자들을 인터뷰하고 죽은 아이들의 이름과 숫자를 집계해 블로그에 올렸다. 당국이 사망자 숫자를 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중국의 부조리를 세상에 알렸다. 현장에서 촬영한 영상은 무료로 배포했다. 그 해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설계에 참여했지만, 그는 중국 당국의 정치범 구금과 김시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중국 정부에 미운털이 콱 박히는 순간이었다.
중국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반체제 예술가로 낙인됐다. 2011년 81일간 탈세 혐의로 독방에 구금됐고, 정치 탄압 논란이 일었다. 여권이 압류당해 4년만인 7월 되돌려 받았고 2015년 중국을 떠나 독일에 거주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억압에 대한 저항. 중국의 부조리한 현상을 세계에 집중시킨 그의 예술적 영향력은 강력하다.
어쩔 수 없이 중국을 떠난 그는 유럽에 체류하면서 주로 난민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중국을 향한 통쾌하고 직설적인 외침은 2014년 발간한 책 '아이웨이웨이 블로그'에 고스란히 담겼다. 아이웨이웨이가 온라인에 발표했던 텍스트를 골라 엮은 책이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아이웨이웨이의 블로그에 올라 왔던 글들로 여기에 소개된 1백여 편의 짧은 에세이들은 미술, 건축, 사진, 사회, 정치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중국의 민감한 문제까지 거론하며 진짜 중국의 민낯을 보여준다.
블로그,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를 무기로 사회정의와 진실폭로를 이어가는 그는 "예술은 압제에 맞설 수 없다면 예술이 아니다"라는 신념이다. 아트리뷰 '세계 미술계 파워 100인' 1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에 선정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전 개막...120점 전시
1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막하는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전은 아이 웨이웨이의 한국 첫 대규모 개인전이다. 억압의 저항과 난민 문제등을 다룬 설치, 영상, 사진, 오브제 등 대표작부터 최신작까지 120여 점을 소개한다.
중국의 자존심 톈안먼 광장과 미국 백악관 등을 배경으로 가운뎃 손가락을 올려 권력을 조롱한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을 비롯해 12m 크기의 대나무 구조물 '옥의'(2015), 로힝야족(미얀마에 거주하는 무국적의 인도-아리아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 '로힝야'(2021), '코카콜라 로고가 있는 신석기 시대 화병'(2015)까지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 120여 점은 작가가 걸어온 여정처럼 전시됐다.
전시명 ‘인간미래’는 아이 웨이웨이 예술세계의 화두인 ‘인간’과 그의 예술활동의 지향점인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결합시킨 것이다.
소크라테스처럼 아이 웨이웨이는 세계 시민의 일원으로서 책임감과 휴머니즘(인간다움)에 대해 고민해왔다. 그는 "예술적 실천을 통해 자유롭고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를 강조하며 미래세대가 그러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작품을 통해 역설한다.
난민 인권문제 다룬 대표작 '빨래방', 영상 '살아 있는 자'까지
2016년 5월 말, 그리스 정부는 이도메니 캠프를 비우고 거주 중인 난민들을 이동시켰다. 아이 웨이웨이는 캠프에 남겨진 물품을 모아 베를린 스튜디오로 운반하여 세탁, 수선하고 다림질한 뒤 목록을 만들었다. 신생아를 위한 옷부터 어린이용 드레스, 알록달록한 물방울 무늬 바지 등 유아부터 어른까지 모든 연령대의 옷들이 망라된 '빨래방'은 지금 여기, 부재한 사람들의 존재를 불편하게 환기시킨다.
영상 '살아 있는 자'는 멕시코에서 부패한 지역 경찰이 교육대학 학생들이 탄 버스를 지역 갱단에 적군 갱단이라고 허위정보를 전달하여 43명의 학생들을 납치한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상 작품이다. 가족들은 실종된 아이들을 찾기 위해서 탄원하고 시위를 벌였지만 학생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아이 웨이웨이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개인전에 실종된 학생들의 초상화를 전시했고, 그때의 조사 과정과 인터뷰 등을 모아 발표했다.
아이 웨이웨이는 “이웃집 아이들이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된 지 4년이나 지났는데 정부가 아직 사건을 해결하지도 못하고 있다면, 그게 무슨 정부인가. 그게 무슨 사회인가”라고 비판하며 "예술가인 것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이 전시를 준비했다"고 밝혀 여전히 세상에 날카로운 그의 사고를 드러낸바 있다.
그의 작품이 여전히 중국에 파장을 미치고 세계 예술계에 영향을 미치는 건 우리가 사는 동시대 정치 사회 문화를 저격하는 메시지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번 한국전시에 선보이는 '라마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파카인 동물' 설치 작품이 보여준다. 금빛의 화려함이 빛나지만 트위터의 상징인 ‘새’와 수갑, 감시카메라 등을 조합해 만든 이미지다. 그가 감시 카메라에 감시당하는 동안 외부와 연결하는 통로가 되어 주었던 트위터가 영감이 됐다.
대형 쇼핑몰, 지하철, 엘리베이터 등 현대 사회의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존재를 종종 망각한다. 안전을 이유로 설치된 수많은 감시 카메라는 안전을 보장해주는 측면도 있지만 우리의 일상을 과도하게 침해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금빛의 문양으로 빛나는 공간은 수많은 카메라로 둘러싸인 감옥과 같다.
전시 복도공간에서는 작가의 폭넓은 예술활동을 보여주는 아카이브 공간이 마련된다. ‘표현의 자유’, ‘예술과 행동주의’, ‘정부, 권력, 그리고 도덕적 선택’, ‘디지털 세상’, ‘역사, 역사적 순간, 미래’, ‘개인적 사유’ 등 여섯 개 주제로 펼친다. 신간도서 '천년의 기쁨과 슬픔'(1000 Years of Joys and Sorrows, Crown, 2021)을 포함한 도서 30여 권 등이 소개되어 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 전시는 작가가 제안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세계시민으로서의 삶의 가치를 성찰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필람'을 당부했다.
아이 웨이웨이는 왜중국 반체제 예술가가 되었나
아버지가 완전히 복권된 후 1975년 베이징으로 돌아왔고 1978년 베이징영화학원 애니메이션과에 입학해 1979년 현대미술 그룹 ‘성성화회’에서 활동했다.
1981년 뉴욕으로 건너가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재스퍼 존스 등의 작품을 접하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확립해 나갔다. 1993년 베이징으로 귀국 이후, 베이징 동쪽 지역 차오창디 예술촌 형성에 참여했고, 헤르조그 & 드 뫼롱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인 ‘베이징 국가 체육장’ (종종 ‘새의 둥지’로도 불린다)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거침없는 견해 표명으로 중국 정부로부터 원치 않는 관심을 받았지만 중국 국경을 넘어서는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미 그의 작품은 유수한 세계적인 전시회들에서 점점 더 많이 전시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억압에 대한 저항을 담은 작품은 예술가로서, 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사회 내의 구성원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요건이다.
표현의 자유를 억누를수록 그 중요성은 더 커지고, 인권의 필요성은 더 절실해진다. 미술, 건축, 사진, 사회, 정치 등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며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아이 웨이웨이의 예술과 삶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생각하고 꿈꾸고 현실로 만든다.
오미크론 확산 여파로 내한하지 못한 작가는 2022년 초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아티스트 토크를 진행할 예정이다. 전시는 2022년 4월 17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