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과학 실재론의 대표자 이언 해킹이 두 번째 작품 '미치광이 여행자'(바다출판사)를 펴냈다.
저자는 1960년 프린스턴대학교 강사를 시작으로 케임브리지대학교 조교수,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부교수, 스탠퍼드대학교 부교수, 토론토대학교 교수 및 유니버시티 프로페서 등을 역임했다. 2000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과학적 개념의 철학과 역사' 학과장이 됐는데 영미권 인물 임명은 이 대학 역사상 처음이었다.
저자는 케임브리지 분석철학파의 전통에서 토머스 쿤, 파울 파이어아벤트와 논쟁하며 과학이론과 별개로 존재하는 과학적 대상의 실재성을 옹호하는 '존재자 실재론'으로 과학 실재론의 대표자가 됐다.
1990년대부터는 미셸 푸코의 영향 아래 자연과학에서 의학이나 심리학 같은 인간과학으로 초점을 옮겨, 역사적 사례연구를 통해서 인간세계의 현상과 그에 대한 개념과 분류의 시간적 상호작용을 추적하는 '역사적 존재론'을 전개했다.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이룬 공로로 2002년 캐나다 최고의 영예인 킬럼상, 2004년 캐나다 훈장, 2014년 국제적 권위의 발찬상 등을 받았다.
저자의 첫 작품 '영혼을 다시 쓰다'가 다중인격을 주제로 사람들의 행동을 기술하는 방식에 따라 그들의 정체성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다뤘다면 두 번째 작품인 '미치광이 여행자'에서는 특정 시기와 장소에 나타났다 사라진 특이한 정신질환 사례를 통해서 정신질환이 서식하는 생태학적 틈새와 그것을 규정하는 여러 힘들의 관계를 탐구했다.
이 책은 19세기 말 유럽에서 유행한 특이한 정신질환에 관한 이야기다. 1887년 프랑스의 한 가스정비공 환자를 통해 처음 알려진, 강박적인 여행 욕구에 시달리는 그 질병은 당시 정신의학계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1909년 마지막 환자를 끝으로 의학사에서 돌연 사라졌다.
'둔주(遁走· 달아나다, 도주라는 뜻에서 유래)', '보행성 자동증', '방랑벽' 등으로 불린 이 정신질환은 현재 미국정신의학협회의 진단과 통계 요람에 '해리성둔주'라는 진단명으로 올라 있지만 사실상 거의 진단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 세기 전 20여 년간 유행한 이 특이한 사례를 검토하며 정신질환의 실재성에 관한 중대한 물음을 던지면서 어떤 시대적 정신질환이 특정 시대와 특정 장소에 나타나 유행할 수 있는 것, 그때 그곳을 서식지로 만들도록 한 여러 상반된 힘, 즉 '벡터'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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