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없는 사망' 비판론…24년前 판결로 본 전두환의 過

기사등록 2021/11/23 14:46:19

최종수정 2021/11/23 14:57:55

전 前대통령, 24년 전 반란수괴 등 9개 혐의 '무기징역' 확정판결

法 "12·12 일으키고 참모총장 불법체포...광주 진압하며 시민 살상"

全 "내란 아니다…발포명령 안 했다" 의혹들 부인하며 생을 마감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전두환씨가 지난 8월9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고(故)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 항소심 공판기일 출석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2021.08.09. hgryu77@newsis.com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전두환씨가 지난 8월9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고(故)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 항소심 공판기일 출석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2021.08.0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김재환 기자 =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과 없는 사망'에 대한 비판론과 아쉬움을 표하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24년 전 병력을 동원해 불법으로 군을 장악하고 그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을 숨지게 한 혐의로 대법원이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는데, 그는 일관되게 자신의 쿠데타는 내란이 아니다, 시민에 대한 발포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며 의혹을 부인하며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97년 4월17일 반란수괴 등 9개 혐의로 기소된 전씨 상고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전 전 대통령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이듬해 5월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 시민을 무력 진압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10월26일 피살되자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이던 그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아 대통령 암살 사건을 수사했다.

그는 사건을 수사한다며 군을 장악했는데, 자신을 위시하는 군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일당을 요직에 앉혔다. 이를 고(故)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견제하자, 전씨는 군을 동원해 정 총장을 불법체포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노태우 전 대통령,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 등이 대치하던 우리 병력에 공격을 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대 세력을 몰아낸 그는 북한의 위협 등 긴급한 사정이 없는데도 비상계엄을 확대했다. 국회 등에 군 병력을 배치하고 정치인을 구속했으며 광주를 비롯한 지역의 시위를 강경진압했다. 1980년 고인의 명령을 받고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은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폭행했다.

이 밖에 대통령 재직시절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등 기업인으로부터 뇌물 2205억원을 받은 혐의도 있었다.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전두환씨가 사망한 23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추모관 벽면에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재판 모습이 전시되고 있다. 2021.11.23. hgryu77@newsis.com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전두환씨가 사망한 23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추모관 벽면에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재판 모습이 전시되고 있다. 2021.11.23. [email protected]

1심은 사형, 2심은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대법원이 1997년 상고를 기각하면서 판결이 확정됐다.

재판 과정에서 그는 줄곧 자신이 쿠데타를 일으켜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하는 데 성공했으므로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군사반란을 통해 폭력으로 국가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해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며 "우리나라 헌법질서 아래에선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않고 정권을 장악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정승화 참모총장을 체포한 건 정당했다는 주장에 관해서도 "체포 목적이 범죄를 수사하는 데 있던 게 아니라 군의 지휘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는 것에 동조하는 세력을 규합하고 반대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데 있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하나회 군부세력이 군을 동원한 것과 관련해선 "군 정식 지휘계통에 대항해 병력을 동원한 행위로 반란에 해당한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5·18민주화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계엄군에게 발포를 명령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와 관련해 법원은 1980년 5월27일 계엄군이 전남도청에서 대항하는 시민을 진압하기 위해 벌인 '상무충청작전'에선 사실상 발포명령이 포함돼 있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전남도청을 다시 장악하라면 저항하는 시위대와 교전이 불가피하다"면서 "전씨는 이러한 사정을 알면서 작전의 실시를 강행하기로 하고 이를 명령한 데에는 살상 행위를 지시 내지 용인하는 의사가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봤다.

그러면서 "실시 명령에는 사람을 살해해도 좋다는 발포명령이 들어있음이 분명하다"며 "광주 시위를 조속히 제압해 다른 곳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지 않으면 집권에 성공할 수 없는 상황이 있었으며, 작전에 장애가 되는 사람을 살상하는 건 내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었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우리 민주주의와 국민들에게 끼친 악영향을 언급하기도 했다.

법원은 "전씨는 헌법질서를 문란케 해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에 막대한 피해를 가하고 우리 헌정사를 크게 주름지게 했다"라며 "그 과정에서 발포를 하도록 함으로써 수많은 사상을 발생하게 했고, 피해자와 유족들이 지금도 정신·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또 "군을 동원해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됨으로써 국민들에게 그들이 준수하고자 노력해 온 법질서가 파괴돼도 막강한 무력이나 권력 앞에선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과 좌절감을 갖게 했다"면서 "대통령이 된 다음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국민들로 하여금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갖게 했다"고 부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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