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아트스페이스서 11월13일까지
브론즈로 만든 진짜같은 고목 눈길
한 땀 한 땀 노동집약형 '조각 끝판왕'
계단 공중에 설치된 7m 금속나무 대작 압권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이것은 고목이 아니다.'
아무리 봐도 말라 비틀어진 나무 껍질인데, 이럴수가 있나 싶다. 진짜 나무처럼 보인다. 고목에 꽃을 피우는 생명의 위대함처럼 조각가 송필은 21세기 마술사다.
세월의 무게를 벗고 전시장에 경쾌하게 떠오른 갈색의 메마른 고목에는 껍질을 뚫고 청매화가 꽃망울을 후드득 터뜨리고 있다.
서울 청담동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개막한 송필 개인전(Beyond the Withered)은 신작전으로, 생명의 무한한 순환성을 전한다.‘말라죽었거나 시든 상태의 너머’의 메시지를 담았다. "결국 지금의 시듦이 끝이 아니라, 그 너머에 새로운 희망이 순환될 것"이라는 뜻이다.
나목(裸木)이나 죽은 나무의 껍질 처럼 보이지만, 브론즈와 스테인리스로 제작됐다. 조각 본연의 섬세함이 깃든 노동집약형 작품의 끝판왕이다.
작가주의적 조각 작품의 진수를 느껴볼 수 있다. 작품 제작 캐스팅에 사용될 나무나 바위 수집부터 세밀 용접까지 보조 없이 직접 작가가 손수 제작했다. 작품들은 야광특수 안료로 제작되어 낮과 밤이 다른 작품으로 선보인다.
호리아트스페이스에 문인화의 격조에 비유될 만한 매화 모티브 작품을, 4층 아이프라운지에는 문학적 서정성이 가미된 나목 나무줄기 시리즈로 나눠 전시됐다.
“송필의 청매화는 향기를 뿜어내진 않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그의 매화는 절개, 혹은 희망의 상징이나 봄의 전령이란 일반적 해석보다, 죽은 나무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소생이자 불멸의 꽃이란 의미가 더 강하다. 그의 매화는 생명에 대한 희망이다.” (미술평론가·제주현대미술관 관장 변종필)
‘고사목에 핀 매화(梅花)’ 시리즈는 억겁의 시간이 스민 자연물들을 작가가 직접 깊은 산에서 채집해 활용해서인지 더욱 실재감이 넘친다.
특히 이번 전시는 7m에 육박하는 초대형 스테인리스 작품도 공중에 설치되어 눈길을 끈다. 상업화랑에서 여는 뮤지엄급 개인전이다.
전시장 계단 공중에 매단 '허공에 뿌리내린'이라는 작품은 경이로움을 전한다. 1~2mm의 세밀한 잔뿌리와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수백 개의 크고 작은 크리스털(스와로브스키)은 빛의 미세한 흔들림에 따라 오묘한 빛깔의 아우라를 선보인다.
호리아트스페이스 김나리 대표는 "이 작품은 이전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무한한 생명력의 결정체"라며 "송필의 작품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 생명의 새롭고 무한한 희망을 노래한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모든 작품의 형식과 재료가 다르지만 결국은 ‘삶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뿌리를 동여맨 나무' 시리즈가 나온 건 작가의 삶의 바탕이 배경이다. 그의 고향이 댐 개발로 수몰되었다. 어쩔 수 없이 삶의 터를 옮길 수밖에 없는 실향민의 아픔이 녹아있다.
한 땀 한 땀 장인처럼 제작하는 송필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진정성이다. 작품의 주제나 제작방식에 어떤 인위성도 찾아볼 수 없다. 있는 그대로, 동요된 마음의 상태를 온전하게 작품에 투영했다.
조각가로서의 삶의 무게를 숙명으로 받아들인 작가는 무엇보다 관람객과 소통하고 싶어했다.
"저를 포함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조각이라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것입니다. 조각 작품을 통해 삶의 무게, 처연한 아름다움 등 삶의 솔직한 모습에 닿아 있는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삶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들은 작품을 통해 공감대가 형성되길 바랍니다. 작품으로 거짓이 아닌 진정한 위안과 공감을 주는 작가로 기억되길 늘 갈망합니다.” 전시는 11월13일까지.
조각가 송필은 누구?
작품은 골프존 조이마루(한국),서울 북부지검(한국), 경기도미술관(한국), 서울시립미술관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한국), 폴리옥션(중국 베이징), MANET MUSEUM(중국 베이징), 상하이 젠다이 MOMA MUSEUM(중국 상하이), 왕화상미술관(중국 베이징) 등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