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석 교수 "'서울로 7017' 걷다 보니 옛 경성역과 이상이 보였죠"

기사등록 2021/10/03 05:02:00

1인 관람극 '코오피와 최면약' 연출

[서울=뉴시스] 서현석 작가. 2021.10.01. (사진 = 국립극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서현석 작가. 2021.10.01. (사진 =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관람 가능 관객은 불과 168명뿐인데, 화제성이 뛰어난 연극이 있다.

오는 3일까지 서울로7017 일대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하는 '코오피와 최면약'이다. 50분가량의 한 회차당 모든 스태프들이 관객 한명만을 위해 움직이는 '1인 관람극'이다.

'코오피와 최면약'을 연출한 서현석(56) 작가(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이미 매회 단 한 명이 관람하는 공연을 선보여 왔다. 세운상가 일대를 배경으로 한 '헤테로토피아', 옛 남산예술센터 공연장을 통째로 사용했던 '천사-유보된 제목' 등이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시대에 '1인 관람극'은 새로운 의미를 형성한다. 최근 국립극단에서 만난 서 작가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고자, 마음 먹은 건 아니다. 그런데 작품이 요즘 사람들이 느끼는 고립감과 무기력에 맞닿아 있더라"고 말했다.

다음은 서 작가와 일문일답.

[서울=뉴시스] '코오피와 최면약'. 2021.10.01. (사진 = 국립극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코오피와 최면약'. 2021.10.01. (사진 =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1인 관람극 형태가 코로나19 거리두기 시대에 맞물린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20대 청년들로부터 '무기력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저도 그런 것에 대해 공감을 했죠. 그런 상황에서 국립극단이 제게 '서울로 7017' 활용을 제안하셨고, 걷다 보니 옛 경성역(서울역)이 보였고, 그곳을 오간 작가 이상이 생각났죠. 연극 제목 '코오피와 최면약'은 이상이 쓴 '날개' 속에서 아내가 (주인공인) '나'에게 수면제(아달린)를 먹였다는 내용에서 따온 거예요. '나'는 그렇게 정신 없는 와중에 '커피'를 마시죠. 그런데 그건 21세기 한국이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죠. 너무 많은 자극이 주어지는데 무력함을 느끼고, 그러다보니 모든 것에 예민해지죠. 관계 때문이 아니라 신문의 사회면만 봐도 대중이 예민하게 느낄 사건이 많잖아요. 그런 예민함은 무력감과 중첩이 됩니다."

-공연뿐만 아니라 비디오아트,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다원 예술 작업을 하십니다. 그런데 세운상가, 영등포시장, 남산예술센터 등에서 장소 특정형·이동형 퍼포먼스 작업을 많이 하셨습니다.

[서울=뉴시스] 남산예술센터 '천사 - 유보된 제목'. 2021.10.02. (사진 = 서울문화재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남산예술센터 '천사 - 유보된 제목'. 2021.10.02. (사진 = 서울문화재단 제공) [email protected]
"이동하면서 경험의 구조를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껴요. (직접 편집할 수 있는) 영화도 아니고 음악도 아닌데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코오피와 최면약'이 (회현역 인근의) 서울로 7017에서 시작하는데 원래는 명동예술극장에서 국립극단까지 오는 동선을 제안해주셨어요. 그런데 제가 걸어보니까 관객들에게 너무 멀겠더라고요."

-앞서 2017년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한 '천사 - 유보된 제목'은 60분 동안 홀로 극장을 돌아보는 공연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이번에도 관객이 홀로 서울로 7017을 걸은 뒤 182석의 백성희장민호극장에 홀로 앉게 됩니다. 극장에 대한 어떤 기억을 갖고 있나요?

"90년대 초반 한 극장에서 연극을 본 적이 있는데요. 티켓을 사서 30분 일찍 공연장 안에 입장했습니다. 공연이 시작됐는데, 아무도 입장을 하지 않는 거예요. 객석에 저 혼자만 덩그러니 앉아 보게 됐죠. 그런데 1인극이었어요. 관객이 저 혼자인데도 그 배우가 정말 열연했죠. 감동을 받았는데, 한편으로는 무서웠습니다. 그런 기억을 갖고 있었고, '천사 - 유보된 제목'에서 배우와 관객을 일대 일의 관계로 만들었죠. 배우가 무대에서 정해진 대사를 읊으면서 연기하는 게 아니라 관객과 직접 교감을 하고 심지어 사적인 관계가 발생하게 됐죠. 연극이라는 틀 안에서 발생하는 일상적 체험과 그 틀 안에서 또 발생하는 예술적 체험의 경계가 어디인지 유연하게 실험하고 설정하고 싶어요. 멀리서 무대를 관망하면서 교감을 하느 게 연극인데, 제4의 벽(연극에서 객석을 향한 가상의 벽을 일컫는 말)이 깨지고 작품과 객석의 영역이 허물어졌을 때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서울=뉴시스] 서현석 작가. 2021.10.01. (사진 = 국립극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서현석 작가. 2021.10.01. (사진 =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4년 전 공연한 '천사 - 유보된 제목', 공연 중인 '코오피와 최면약' 모두 가상현실(VR) 장비를 착용하는 것이 관람법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천사 - 유보된 제목'에서 VR을 처음 사용했어요. 관객들에게 영화의 '플래시백'(순간적인 변화를 연속으로 보여 주는 기법)을 경험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죠. VR 고글을 쓰고, 돌아다니는 기술은 작년에 처음 써봤는데 가만히 앉아서 볼 때와는 다른 감각, 신체적 움직임이 나오더라고요."

-코로나19 이후 아날로그적인 공연에서도, 기술이 도드라지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아날로그적인 사람이에요. 기술에 대해 받아들이는 것도 느린 편이고요. 그러니 기술로 인한 공연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예언은 힘듭니다. 그런데 기술이 근대화로 인해서 타성에 빠져 고착이 된 감각을 다시 일깨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술을 통해 열리는 예술의 영역에 대해 '신기하다'는 반응 또는 '기술적 매혹'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술에 대해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신선한 자극이 됐으면 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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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석 교수 "'서울로 7017' 걷다 보니 옛 경성역과 이상이 보였죠"

기사등록 2021/10/03 05:02:0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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