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 "김익상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의거 100주년"

기사등록 2021/09/12 12:24:40

1920년 의열단 가입…2021년 총독부 침입

황포탄 의거 참가했다 검거돼 일본 압송

[서울=뉴시스] 김익상 자료. 2021.09.12. (자료=국가보훈처 페이스북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김익상 자료. 2021.09.12. (자료=국가보훈처 페이스북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국가보훈처는 12일 독립운동가 김익상의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의거 100주년을 기념했다.

김익상의 본명은 김봉남이다. 그는 1895년 6월25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3형제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마포 삼호보성소학교에 재학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퇴했다. 평양에서 철공 일을 배웠고 경성 전기회사에서 전기 수선을 했다.

1919년 25세 때 경성 교북동(현 종로구 독립문 사거리 인근) 광성연초공사에서 기계감독으로 일하다 1920년 5월 중국 봉천 지점 기관수로 발령이 났다.

중국에 도착한 김익상은 어릴 적 꿈이었던 비행사가 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비행학교가 있는 중국 광둥으로 향했다. 그러나 비행학교는 중국 군벌 간 다툼의 여파로 폐교 중이었다.

베이징으로 향한 김익상은 현지에서 조선 독립운동을 목격하고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을 만났다. 김원봉의 연설에 감동 받은 김익상은 의열단에 가입했다.

1921년 김익상은 김원봉으로부터 총독 암살 밀령을 받고 국내로 침투했다. 그는 9월12일 전기 수리공으로 변장한 채 남산 조선총독부에 잠입해 2층 비서과와 회계과장실에 폭탄을 투척했다. 비서과에 던진 폭탄은 불발됐지만 회계과장실에 던진 폭탄은 터졌다. 현장을 빠져나온 김익상은 평양을 거쳐 9월17일 베이징으로 돌아가 김원봉에게 의거 사실을 보고했다.

그는 1922년 3월28일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가 상하이 부두인 황포탄에 도착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오성륜, 이종암과 함께 다나카 암살 계획을 세웠다.

3월28일 배를 타고 황포탄에 도착한 다나카를 향해 오성륜과 김익상이 총을 쐈지만 맞지 않았고 폭탄도 불발됐다. 다나카가 자동차를 타고 도주하자 이종암이 폭탄을 던졌지만 터지지 않았다.

김익상은 피신 중 영국 경찰의 총탄에 맞아 체포됐다. 오성륜은 현장에서 체포됐고 이종암은 피신했다.

이후 일본으로 끌려가 사형을 선고 받은 김익상은 나가사키, 시즈오카, 구마모토, 가고시마 등 형무소를 옮겨다니며 20년간 수감생활을 한 끝에 1942년 출옥했다. 출옥 후 일본 고등경찰에게 연행된 뒤 종적이 묘연해져 암살설이 불거졌다.

정부는 1962년 삼일절에 김익상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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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 "김익상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의거 100주년"

기사등록 2021/09/12 12:24:4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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