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왕성 월성 인신공양 흔적
4년 만에 인골 1구 추가...총 24구 발굴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신라시대 왕성 경주 월성에는 얼마 많은 사람들이 바쳤졌을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경주 월성 서성벽 문지에서 인신공희(사람을 제물로 바친 제사)로 추정되는 여성 인골 한 구를 추가로 발굴했다. 여성 인골은 키 135㎝로 체격이 왜소한 20대로 추정된다. 월성 발굴 과정에서 인골이 발견된 것은 이번에 세 번째 사례로 총 24구가 발굴됐다.
7일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여성 시신 1구와 함께 월성의 축조 연대와 축성 방식도 최초로 밝혀냈다고 밝혔다.
월성에서는 다수의 사람이 인신공희 등의 이유로 묻힌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는 1990년 발굴 조사에서 20구의 인골을 출토했으며, 인신공희의 첫 사례로 2017년에 성인 남녀 인골 2구를 발굴한 데 이어 이번에 추가로 여성 인골 1구를 발굴했다.
주거지나 성벽 건축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쓰는 습속인 '인신공희'는 고대 중국(BC 1600~1000께 상나라)에서 성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방이나 건물 축조와 관련된 인주(人柱) 설화로 전해져 왔다. 인주설화는 사람을 기둥으로 세우거나 주춧돌 아래에 묻으면 제방이나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7년 처음 월성 서성벽 아래에서 50대 남녀 인골이 한 구씩 출토된 후 이번에 여성 인골 1구가 더 발굴되면서 이 설화를 뒷받침할 역사적 실체가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사고사 가능성이 제기되고 했으나 이후 조사에서 외상 흔적이 없다고 밝혀졌고 제사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동물뼈와 제기가 발견되며 사실상 인신공희로 밝혀졌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경주 월성 서성벽 문지에서 인신공희(사람을 제물로 바친 제사)로 추정되는 여성 인골 한 구를 추가로 발굴했다. 여성 인골은 키 135㎝로 체격이 왜소한 20대로 추정된다. 월성 발굴 과정에서 인골이 발견된 것은 이번에 세 번째 사례로 총 24구가 발굴됐다.
7일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여성 시신 1구와 함께 월성의 축조 연대와 축성 방식도 최초로 밝혀냈다고 밝혔다.
월성에서는 다수의 사람이 인신공희 등의 이유로 묻힌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는 1990년 발굴 조사에서 20구의 인골을 출토했으며, 인신공희의 첫 사례로 2017년에 성인 남녀 인골 2구를 발굴한 데 이어 이번에 추가로 여성 인골 1구를 발굴했다.
주거지나 성벽 건축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쓰는 습속인 '인신공희'는 고대 중국(BC 1600~1000께 상나라)에서 성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방이나 건물 축조와 관련된 인주(人柱) 설화로 전해져 왔다. 인주설화는 사람을 기둥으로 세우거나 주춧돌 아래에 묻으면 제방이나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7년 처음 월성 서성벽 아래에서 50대 남녀 인골이 한 구씩 출토된 후 이번에 여성 인골 1구가 더 발굴되면서 이 설화를 뒷받침할 역사적 실체가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사고사 가능성이 제기되고 했으나 이후 조사에서 외상 흔적이 없다고 밝혀졌고 제사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동물뼈와 제기가 발견되며 사실상 인신공희로 밝혀졌다.
연구소는 7일 온라인으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17년에 보고된 50대 남녀 인골이 발견된 지점에서 동일한 축선으로 50~70㎝ 떨어진 곳에서 추가로 확인된 여성 인골의 주인을 20대 이상 하급 계층의 성인 여성으로 추정했다.
아무 것도 착용하지 않은 이 남녀인골과 달리, 이 여성 인골은 곡옥 모양 유리구슬을 엮은 목걸이와 팔찌를 차고 있었다. 여성의 키는 약 135㎝ 전후고 체격은 왜소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골의 다리뼈와 손가락뼈는 다 성장해 붙은 상태로 발견돼 이 여성은 뼈가 다 자란 성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여성이 장식물을 차고 있지만, 고급 유물은 없었고 2017년 출토된 남녀인골들처럼 영양 상태가 양호하지 않고 체격도 왜소해 신라 시대 당시 영양 상태가 좋지 못했던 하급 계층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여성 인골을 통해 연구소는 여성 인신공희는 월성 기초부 공사가 끝나고 거대한 성벽을 쌓아 올리기 전 성벽과 문지가 견고하게 축조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거행됐음을 알 수 있었다.
인골 연구를 담당한 김헌석 주무관은 "인신공희 희생의 상태에 대해 현재 발견 중에 있다"며 "뼈에 외상 흔적이 남이 있지 않았다. 인신공희 등 희생 의례를 보면 시신이 똑바로 정면을 보고 누워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는 사람이 편안한 상태로 죽었거나 죽은 후 시신이 이번에 발견된 장소로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2017년 이어 인신공희가 추가로 확인되자 학계는 월성 일대 인신공희 규모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인신공희 지점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약 10m 정도 떨어진 곳에서도 1985년과 1990년 시굴·발굴조사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인골 20구 넘게 일괄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1985년 시굴 및 1990년 발굴 보고서에서 제시된 인골 23구 출토 지점에서도 동물뼈, 골각기 등이 지속적으로 확인됐다. 23구 중 1호와 4호 인골들은 정연하게 안치되어 있다.
연구소는 월성 서성벽이 인신공희로 축조된 국내 유일 성벽으로 4세기 중엽부터 쌓기 시작해 5세기 초에 완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소는 이번에 밝혀진 월성 축성 작업과 비교한 결과, 이 인골들이 출토된 층이 인신공회가 거행됐던 층과 유사하고 성벽 축조 과정에서 이뤄졌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는 문지와 성벽이 꺾여서 진행되는 지점이 무너지지 않게 기원하려고 인신공희가 거행됐을 가능성으로 해석될 수 있어 이 인골들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장기명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17구는 동물 뼈와 흐트러진 형태로 발견되는 등 성벽 중심 골조에 붙어 있는 3구와 같이 '인신공희' 사례라고 불 수 있는 정황 자료가 부족하다"며 "이 부분에 지속적으로 재검토를 해서 그 의미를 유추해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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