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집집' 극작가 한현주 "아파트는 '욕망의 블록'"

기사등록 2021/08/31 06:01:00

9월 2일~17일 혜화동 연우소극장

'소년이 그랬다'·'괴물B'로 주목 받는 작가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 '집집' 한현주 작가가 지난 26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1.08.28.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 '집집' 한현주 작가가 지난 26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1.08.2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삶이 콘크리트라는 물질적 육신에 담보 잡혀 있는 시대다. 집이 '사는 곳'이 아닌 '사는 것'이 된 이유다.

사회의 균열들을 톺아봐온 극작가 한현주가 '집'을 둘러싼 욕망·불안·모순을 다룬 신작을 선보인다. 극단 해인의 연극 '집집 : 하우스 소나타'(9월 2일~17일 서울 혜화동 연우소극장)다.

작품의 주 무대는 임대아파트 603호. 2002년과 2020년의 시간적 격차를 두고 동일한 공간에 거주하는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도록 설계된 '중첩과 교차의 공간'이다.

2002년 난지도에 무허가 집을 짓고 살다 새로 건설된 임대아파트에 입성한 '박정금'과 2020년 친구의 도움으로 임대아파트에 불법 입주한 '연미진', 두 사람이 마주한 '가혹한 현실'을 다룬다. 18년의 차이가 있지만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다. 연미진이 낡은 싱크대를 리폼하는 과정에서 박정금의 숨겨진 돈다발을 마주하면서 욕망과 현실이 엇갈려 맞물린다.

최근 대학로에서 만난 한 작가는 "아파트에 대해 기본적으로 '욕망의 블록'이고, 그것이 쌓여진 공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공간에 이사를 오면서 그것이 블록처럼 쌓아진다고 봤어요." 다음은 일문일답.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 '집집' 한현주 작가가 지난 26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2021.08.28.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 '집집' 한현주 작가가 지난 26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2021.08.28. [email protected]
-최근 부동산 관련 이슈가 많은데 언제 떠올려 쓰신 작품인가요?

"작년 1월에 쓰기 시작했는데 떠올린 건 오래 전이에요. 결혼 7년차가 됐는데 신혼 집 구하면서 겪은 일들이 떠올랐어요. 집에 대한 불안을 항상 안고 살았죠. (경북 경산 출신으로) 서울 사람이 아니라 이 도시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체감을 못했는데 상암동에서 일을 하고 방송사들이 들어오면서 그걸 간접적으로 느꼈어요. 여의도나 강남이 이렇게 커졌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상암동 주변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난지도에 대해 찾아보고 문화비축기지도 알아보고, 변화되 도시의 욕망 분출에 대해 생각한 거죠. 그 과정에서 월드컵이 있던 2002년을 떠올렸어요."

-제목이 흥미롭습니다. '집집'에서 집을 두 번 적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우스 소나타'에서 소나타는 클래식 작품 구성 방법(제시부·발전부·재현부)에서 따온 제목인가요? 학창시절에 클래식 라디오 방송 작가가 꿈이었다는 앞선 인터뷰를 봤습니다.

"보통 '집집마다'라는 표현을 쓰잖아요. 그리고 흔히 돈돈이라는 표현을 쓰죠. 그런 것들을 표현하는 동시에 궁극적으로 두 사람에 대한 욕망을 나타내기도 해요 '집에 대한 집착'을 붙여서 나오는 어감이기도 하죠. 엄밀하게 소나타라는 음악적 형식을 따온 것은 아니지만 주제가 반복되거나 변주되는 부분은 있습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 '집집' 한현주 작가가 지난 26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2021.08.28.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 '집집' 한현주 작가가 지난 26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2021.08.28. [email protected]
-대한민국 국민이 집에 대해 갖고 있는 욕망 중 무엇이 가장 흥미롭나요?

"우리 근현대를 보면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여유를 가질 기회를 별로 갖지 못한 거 같아요. 피란민의 정서가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내 공간에 대해 움켜주는 것'에 대한 갈망이 있죠. 그런 정서가 연극에 들어가는 건 아닌데 불안은 배어 있죠. 20~30대 여성들의 주거 위협도 기본적인 심리적 불안이기도 하고요."

-작가님은 개인적으로 집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집은 편해야 하죠. 문학적으로나 연극적으로 집은 기억이고요. 유년 시절 이사를 많이 다녔어요. 그래서 저는 집에 대한 기억이 불안한 거 같아요. 할머니 시골 집이 제게는 중요한 곳이에요. 원형적 공간이고, 할머니에 대한 경외감을 들게 했죠."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 '집집' 한현주 작가가 지난 26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1.08.28.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 '집집' 한현주 작가가 지난 26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1.08.28. [email protected]
-최근 부동산 이슈와 맞물려 원래 쓰셨던 부분을 수정한 것이 있나요?

"원래 2020년 여주인공이 부동산 스터디를 하는 장면이 있어요. 인터네 카페와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하는 설정이었죠. 공공임대, 국민임대 등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을 공부하기 위해서요. 제가 실제 가입도 했고요. 그런데 부동산을 다룬 TV 프로그램에 직접 전화를 거는 걸로 바꿨어요. 조금 더 큰 욕망이 반영됐으면 했거든요."

-쓰시면서 조심했던 것이 있을까요?

"힘든 현실을 대상화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조심스러워했죠. 리서치가 된 임대 아파트 공간이 있어요. '야외 음주 금지'라는 푯말이 있고 주변 파출소도 그 공간이 골치 아프다고 했죠. 그래서 임대 아파트 공간이라면 생각나는 뻔한 장면을 썼어요. 그런데 어느 따듯한 봄날의 5월에 그곳에 다시 갔는데 너무 평화로운 거예요. 그래서 그 장면을 바꿨습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 '집집' 한현주 작가가 지난 26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1.08.28.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 '집집' 한현주 작가가 지난 26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1.08.28. [email protected]
-그간 '소년이 그랬다' '괴물 B' 등을 통해 청소년,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톺아봐오셨습니다. 자연스레 연극에 대한 태도, 삶에 대한 태도의 일치와 불일치에 대해서도 고민하셨을 거 같아요.

"전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저를 '예술 노동자'로 생각했어요. 스스로를 사회적인 약자로 생각한 건 아니지만 불안하게 규정을 하고 노동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여겼죠. 글을 쓴 지 12년이 됐는데 최저 임금을 받더라도, 정규직 노동자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 했습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고 새롭지 않지만, 멀리 떨어뜨리고 싶은 질문을 한번쯤 던져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다만 제 글이 현실의 약자에게서 빚을 진 건 분명히 있어요. 그걸 나누기를 통해서 갚고 싶어요."

-역시 사회적 약자와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양구 연출님과 처음 작업하십니다. '세월호 프로젝트' 등 이미 여러 자리에서 봐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이 시기에 이 작품으로 협업하시게 된 이유가 있나요?

"제가 4년정도 헤매던 시기가 있었어요. 작가적 동력을 상실한 때였어요. 이 연출님이 그 때 이것저것 해보자고 제안을 주셨고, 덕분에 근근이 작가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됐어요. 낯간지러워서 연출님께 이런 얘기를 해본 적은 없어요. 하하."

-벌써 데뷔하신 지 12년이 됐습니다. 초창기 연극을 대하셨던 마음과 지금 연극을 대하시는 마음이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작가로서 암흑기를 보내다 2018년 이양구 연출님의 제안으로 강량원 예술감독이 계시는 인천시립극단과 창작극 개발을 하게 됐어요. 그 때 떠올린 게 (최근 초연한 노동 문제를 다룬) '괴물B'였어요. 인천이 근대 노동의 흔적이 있어 떠올린 건데 초고가 난해했어요. 근데 그 때 느꼈어요. 글쓰기는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요. 잘 쓰는 것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깜냥만큼만 할 수 있는 '스토리텔러'가 돼도 기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후 다시 글쓰기에 재미가 생겼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성실하게 하자'는 생각을 했고, 그러자 더 연극에 애정이 생겼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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