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남북 어려운 현실 반영…꿈으로 채워진 文 '마지막 연설문'

기사등록 2021/08/15 15:44:41

최종수정 2021/08/15 17:01:20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임기 중 마지막 광복절 경축사에서 유독 꿈을 강조한 것은 현실에서의 어려운 상황들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임기 내 한일관계는 물론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뚜렷한 성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무력감에 빠지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는 발판 마련에 무게둔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1.08.15. bluesoda@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1.08.1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임기 중 마지막 광복절 경축사에서 유독 꿈을 강조한 것은 현실에서의 어려운 상황들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임기 내 한일관계는 물론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뚜렷한 성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다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 284(舊 서울역사)'에서 거행된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 경축사에서 대일·대북 메시지는 물론, 연설문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로 '꿈'을 전면에 내세웠다.

뚜렷한 성과 장담 어려운 상황…무력감 탈피 위한 '셀프 희망가'

문 대통령은 총 7780자, A4 용지 5.5장 분량에 해당하는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꿈'이라는 단어를 총 20회 언급했다. 빈도 수로만 놓고보자면 '경제(18회)' 보다 더 많이 언급했다. 코로나(10회), 방역(4회), 광복(4회), 독립(5회) 등 기타 다른 단어들과도 비교할 수 없이 언급 횟수가 많을 정도로 꿈을 강조했다.

매년 초 신년사에서 밝힌 국정운영 철학의 압축판으로 평가받는 광복절 경축사 속에서 국정과는 무관한 특정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의례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인 국민(16회)과 국가(12회)보다도 꿈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컸다.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식 장소인 '문화역서울 284(舊 서울역사)'를 과거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꿈을 수탈하는 공간에서, 광복 후 자주독립을 열망한 귀향민의 꿈이 모여든 교차적 상징으로 '꿈'이라는 매개를 차용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선열들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주독립의 꿈을 잃지 않았고, 어디서든 삶의 터전을 일구며 독립운동을 펼쳤다"면서 "광복과 함께 (경성)역과 광장은 꿈과 희망의 공간이 됐다. 만주와 연해주에서 출발한 기차에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두가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는 꿈으로 가슴이 벅찼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꿈을 꿨다. 꿈을 잃지 않았기에 여기까지 왔다. 독립과 자유, 인간다운 삶을 향한 꿈이 해방을 가져왔다"며 "이제 선진국이 된 우리는 다시 꿈꾼다. 평화롭고 품격 있는 선진국이 되고 싶은 꿈, 국제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는 나라가 되고자 하는 꿈"이라고 강조했다.

광복절 경축사 속 '꿈 20회' 언급…18회 경제 보다 여러 번 등장 '이례적'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1.08.15. bluesoda@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1.08.15. [email protected]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이를 바탕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선도국가를 향한 정부 의지를 강조하는 과정에도 꿈에 대한 은유는 빠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10월 전국민 70% 백신 2차 접종 완료, 한국판 뉴딜을 통한 선도형 경제로의 전환, 국가균형발전 등의 임기 내 국정 과제를 언급하면서 "경제회복의 혜택을 모두에게 나눠 '함께 잘 사는 나라'의 꿈을 반드시 체감할 수 있는 현실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대일·대북 메시지 원론적…日엔 "대화", 北엔 "공존"  

연설문 곳곳에서 꿈과 희망을 강조해 온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대일(對日)·대북(對北) 메시지도 궁극적으로는 꿈에 닿아 있었다. 마지막 광복절 연설에서 개인적 꿈과 나라의 꿈의 공유하는 '새로운 꿈'이라는 지향점을 제시했다.

일본을 향해 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며 협력을 기대한다는 원론적 입장, 남북관계 개선에 있어서도 구체적 제안 없이 평화의 '한반도 모델'을 남기고 싶다는 희망적 인식론에 꿈이 자리했다.

대일 메시지에서 민족 지도자 '민세(民世)' 안재홍 선생이 해방 이튿날 '삼천만 동포에 고함'이라는 방송 연설을 통해 식민지 민족 피해의식을 넘어 포용을 역설한 내용을 소개한 것은 일본을 향한 우회적 희망을 녹여낸 것으로 풀이된다.

안 선생의 연설을 소개한 문 대통령은 "한일 양국은 국교 정상화 이후 오랫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가치를 기반으로 분업과 협력을 통한 경제성장을 함께 이룰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양국이 함께 가야할 방향"이라고 했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1.08.15. bluesoda@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1.08.15. [email protected]
이어 "정부는 (한일) 양국 현안은 물론 코로나와 기후위기 등 세계가 직면한 위협에 공동대응하기 위한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두고 있다"며 "바로잡아야 할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와 기준에 맞는 행동과 실천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일 양국이 지혜를 모아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나가며, 이웃 나라다운 협력의 모범을 보여주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맥락을 종합하면 위안부·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 해결에 있어 국제사회의 보편적 기준에 따라 해결할 것이라는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일본에는 포용 정신에 입각해 대화와 협력 테이블에 나서야 한다는 당위성을 역설한 것으로 해석된다.

"통일 더 많은 시간…'한반도 모델'로 남북 공존"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메시지에서도 구체적인 대북 정책 제안과 북한의 호응을 촉구하는 대신, '한반도 평화 모델'이라는 원론적 수준의 입장만 밝혔다. 먼저 분단을 극복한 통일 독일 사례를 환기하는 수준으로 여운을 남겼다.

문 대통령은 "올해는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그 1년 전인 1990년 동독과 서독은 45년의 분단을 끝내고 통일을 이뤘다"며 "동독과 서독은 신의와 선의를 주고받으며 신뢰를 쌓았고, 보편주의·다원주의·공존공영을 추구하는 '독일 모델'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 과거에 대한 진정성 있는 반성으로 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우려를 극복하며, 세계의 보편적 가치와 기준을 이끌어가는 EU(유럽연합)의 선도국이 됐다"며 "우리에게 분단은 성장과 번영의 가장 큰 걸림돌인 동시에 항구적 평화를 가로막는 강고한 장벽이다. 우리도 이 장벽을 걷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등 참석자들이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2021.08.15. bluesoda@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등 참석자들이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2021.08.15. [email protected]
문 대통령은 "비록 통일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남북이 공존하며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통해 동북아시아 전체의 번영에 기여하는 '한반도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며 지난해 북한 참여 없이 출범한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 속 논의 성과를 거론했다.

문 대통령은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는 지금 정보공유와 의료방역 물품 공동비축, 코로나 대응인력  공동 훈련 등 협력사업들을 논의하고 있다"며 "코로나의 위협이 결코 일시적이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진 지금 그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다"고 북한 참여의 당위성을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그러면서 "협력을 확대해 나가면서 동아시아 생명공동체의 일원이 북한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만 했다.

이는 남북 생명안전공동체와 평화공동체, 동북아 철동공동체, 보건·의료·삼림협력 등 다양한 과제들을 나열하며 북한의 호응을 촉구했던 지난해 경축사와 비교해도 더 신중한 톤으로 볼 수 있다. 통일의 당위성으로 접근한 '한반도 모델'이라는 희망적 인식만을 밝힌 수준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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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남북 어려운 현실 반영…꿈으로 채워진 文 '마지막 연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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