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출소 당일 서초사옥 향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기사등록 2021/08/15 12:03:00

급선무·본인역할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

가석방 현실 앞에 "열심히 하겠다"단 말만

반도체 투자·삼성SDI 美 진출 등 경영시계 가속

[의왕=뉴시스] 조성우 기자 = 국정농단 사건으로 복역 중이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광복절을 맞아 가석방으로 풀려나고 있다. 2021.08.13. xconfind@newsis.com
[의왕=뉴시스] 조성우 기자 = 국정농단 사건으로 복역 중이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광복절을 맞아 가석방으로 풀려나고 있다. 2021.08.1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옥승욱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수감 중이었을 때 삼성의 아침은 그 어느 기업보다 일찍 시작됐다. 매일 새벽 이 부회장을 접견하는 변호인에게 당일 삼성 관련 기사를 출력해 전달하기 위해서다. 새벽 5시께 삼성에서 기사를 전달받은 변호인은 이 부회장 접견 때 그 출력된 기사들을 이 부회장에게 건넸다고 한다. 적게는 수십장에서 백장을 넘어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일반적으로 수감자에게 어떤 서류를 전달할 때 교도관들은 그 서류들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꼼꼼히 살펴본다. 하지만 기사는 이미 다 나온 내용들이고 특별할게 없기에 별다른 문제없이 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13일 오전 10시10분 출소했다. 지난 1월 18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법정 구속된 지 207일 만이다. 13kg 가량 빠져 수척해진 모습과 늘어난 흰머리가 옥중생활을 대변한다. 수감 중 충수염 수술로 7kg 정도 빠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날 비춰진 이 부회장은 예상보다 더 야윈 모습이었다.

이 부회장은 출소 직후 "국민 여러분들께 너무 큰 걱정을 끼쳐드렸다. 너무 죄송하다"며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이어 "저에 대한 걱정, 비난, 우려 그리고 큰 기대 잘 듣고 있다"며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1~2초 찰나였지만 이 부회장은 잠시 자리를 뜨지 않고 취재진의 질문을 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할말이 없는지 이내 자리를 떴다. 이동 중에도 기자들이 '경제활성화 대책으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냐', '반도체, 백신 중에 어떤 것이 선순위인가' 등 질문을 했지만 아무 말도 않은채 준비된 차량을 타고 떠났다.

30초 가량의 짧은 인사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우선 걱정이라 함은 그의 건강 상태와 함께 삼성의 현 상황을 연관짓지 않을 수 없다. 이 부회장이 충수염수술을 했고 그로 인해 살이 7~8kg 정도 빠진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본인의 건강을 염려하고 우려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 부회장 또한 옥중에서 본인의 기사들을 잘 챙겨봤기에 이런 우려들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삼성의 현 상황도 걱정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삼성에 대한 걱정은 곧 이 부회장의 걱정이라 봐도 무방하다. 글로벌 파운드리 1위인 TSMC와 후속 주자인 인텔 등은 반도체 투자를 확장하며 삼성으로부터 도망가고 추격해 오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지난 5월 미국에 20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를 발표한 이후 세부 계획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일련의 사안들을 이 부회장에 대한 걱정으로 결부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이 가석방되기 전 사회 전반에선 큰 갈등 양상이 벌어졌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재벌특혜라며 이 부회장 가석방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반면 재계는 가석방이 아닌 기업활동이 가능한 사면을 해달라며 시민단체 등과 큰 입장차를 보였다. 결국 정부에선 대통령이 직접 책임지지 않고 법무부장관 선에서 해결 가능한 가석방이란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부회장 또한 이런 비난을 잘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짧은 인삿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날 발언에서 가장 관심을 끈 것은 큰 기대와 열심히 하겠단 말이었다. 이 부회장이 가석방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은 반도체 위기와 백신 수급에 대한 역할이란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위기감에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비롯한 재계 안팎에선 꾸준히 이 부회장의 사면을 요구해 왔다. 여론에서도 이 부회장의 석방에 대한 찬성 의견은 압도적이었다. 조사기관에 따라 일부 차이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70% 가량이 이 부회장의 가석방에 표를 몰아줬다.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해 "국민 여론을 살피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이 815 가석방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배경으로 판단된다.

이날 이 부회장은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하면서 목적어를 생략했다. 반도체 투자를 열심히 하겠단 것인지 백신 확보를 열심히 하겠단 것인지, 무엇을 열심히 하겠단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이는 이재용 부회장의 현 처지와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부회장은 비록 자유의 몸이 됐지만 이는 절반의 자유에 불과하다. 사면이 아닌 가석방 상태기 때문에 해외출장 등 기업활동에 있어 여러 제약이 따른다. 매주 삼성물산 합병 의혹 관련 재판에 참석해야 하는 것 또한 족쇄로 작용한다. 이 부회장 또한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어 열심히 하겠단 두리뭉실한 말로 본인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선 가석방이 아닌 사면이었다면 향후 경영활동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밝혔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이재용 부회장은 큰 기대에 부응하고 열심히 하겠단 말을 지키기 위해 출소 당일 서초사옥으로 향했다. 이날 사장단 등을 만나며 경영 현안에 대해 직접적으로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 출소로 삼성의 경영시계가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이 부회장 가석방에 대해 "엄중한 위기 상황 속에서, 특히 반도체와 백신 분야에서 역할을 기대하며 가석방을 요구하는 국민들이 많다"며 "국익을 위한 선택으로 받아들이며 국민들께서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재계는 향후 이 부회장의 결단을 주목하고 있다. 가장 빠른 시점에 미국 반도체 투자를 확정한 데 이어, 삼성SDI의 미국 진출에 대한 투자도 결정할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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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출소 당일 서초사옥 향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기사등록 2021/08/15 12:03:0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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