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호 2002 월드컵 4강 신화 주역
[서울=뉴시스] 안경남 기자 = 췌장암 투병 끝에 7일 향년 50세에 하늘의 별이 된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을 전 세계에 알린 골은 2002 한일월드컵 폴란드와 첫 경기 추가골이었다. 당시의 그의 시원한 한 방은 4강 신화의 서막을 알리는 축포이기도 했다.
1994년 울산 현대에서 프로 데뷔한 유 전 감독은 같은 해 A매치에 데뷔하며 일찍이 한국 축구의 미래로 불린 재목이다.
한국 축구가 세계 무대에 끊임없이 도전하던 1990년대 유 전 감독은 대표팀에 없어선 안 될 존재였다.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감독들이 가장 원하는 선수였다.
축구 팬들의 뇌리에 유상철이란 이름 석 자가 강하게 새겨진 건 자국에서 열린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 폴란드와 경기였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02년 6월4일 부산 아시아드스타디움에서 치러진 한국과 폴란드의 월드컵 첫 경기는 지금도 팬들에게 잊히지 않는 명승부로 꼽힌다.
이날까지 월드컵 무대에서 단 1승도 하지 못했던 한국은 유럽의 다크호스로 불린 폴란드를 상대로 기대 이상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1994년 울산 현대에서 프로 데뷔한 유 전 감독은 같은 해 A매치에 데뷔하며 일찍이 한국 축구의 미래로 불린 재목이다.
한국 축구가 세계 무대에 끊임없이 도전하던 1990년대 유 전 감독은 대표팀에 없어선 안 될 존재였다.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감독들이 가장 원하는 선수였다.
축구 팬들의 뇌리에 유상철이란 이름 석 자가 강하게 새겨진 건 자국에서 열린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 폴란드와 경기였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02년 6월4일 부산 아시아드스타디움에서 치러진 한국과 폴란드의 월드컵 첫 경기는 지금도 팬들에게 잊히지 않는 명승부로 꼽힌다.
이날까지 월드컵 무대에서 단 1승도 하지 못했던 한국은 유럽의 다크호스로 불린 폴란드를 상대로 기대 이상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전반 26분 유 전 감독의 건국대 선배이자 대표팀 동료였던 황선홍 전 대전하나시티즌 감독의 선제골로 앞서 나간 한국은 상대의 거센 공세에 시달리다 후반 8분 당시 '유비'로 불린 유 전 감독의 통쾌한 추가골로 2-0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폴란드 골문으로부터 약 20여m 떨어진 위치에서 때린 그의 오른발 슈팅은 당대 유럽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꼽혔던 예지 두덱 골키퍼의 손을 스치며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득점 후 누구보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세리머니를 하던 유 전 감독의 미소에 팬들도 함께 울고 웃었다.
이 골로 히딩크호는 승기를 잡았고, 폴란드의 막판 추격을 뿌리치며 월드컵 사상 첫 승의 기쁨을 누렸다.
유 전 감독은 수비수로 프로 생활을 시작해 미드필더, 공격수까지 안 해본 포지션이 없는 한국 축구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였다.
많은 골을 넣은 선수는 아니었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폴란드전 추가골처럼 굵직한 득점을 여러 차례 남겼다.
폴란드 골문으로부터 약 20여m 떨어진 위치에서 때린 그의 오른발 슈팅은 당대 유럽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꼽혔던 예지 두덱 골키퍼의 손을 스치며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득점 후 누구보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세리머니를 하던 유 전 감독의 미소에 팬들도 함께 울고 웃었다.
이 골로 히딩크호는 승기를 잡았고, 폴란드의 막판 추격을 뿌리치며 월드컵 사상 첫 승의 기쁨을 누렸다.
유 전 감독은 수비수로 프로 생활을 시작해 미드필더, 공격수까지 안 해본 포지션이 없는 한국 축구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였다.
많은 골을 넣은 선수는 아니었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폴란드전 추가골처럼 굵직한 득점을 여러 차례 남겼다.
앞서 1998 프랑스월드컵 벨기에와 조별리그 3차전에선 극적인 동점골로 한국의 자존심을 살렸고, 한일월드컵을 1년 앞두고 국내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 멕시코와 경기에서 후반 44분 결승골로 한국에 승리를 안겼다.
당시 유 전 감독은 전반에 상대 선수와 공중볼을 다투다 부딪혀 코뼈가 골절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헤더 결승골을 넣는 투혼을 발휘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현역 시절부터 팬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던 그는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한 뒤에도 2019년 프로축구 K리그1 인천 유나이티드의 극적 잔류를 이끌며 주목을 받았다.
그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인천의 벤치를 끝까지 지켰고, 돌아오겠단 약속을 하며 치료에 전념했으나, 끝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축구 팬들은 유 전 감독과 그가 넣은 골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당시 유 전 감독은 전반에 상대 선수와 공중볼을 다투다 부딪혀 코뼈가 골절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헤더 결승골을 넣는 투혼을 발휘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현역 시절부터 팬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던 그는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한 뒤에도 2019년 프로축구 K리그1 인천 유나이티드의 극적 잔류를 이끌며 주목을 받았다.
그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인천의 벤치를 끝까지 지켰고, 돌아오겠단 약속을 하며 치료에 전념했으나, 끝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축구 팬들은 유 전 감독과 그가 넣은 골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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