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M갤러리서 2019년 이후 3년만에 전시
회화·조각·설치·퍼포먼스 등 60점 공개
QR 코드·스피커 통해 음악도...공감각적 연출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진짜 모습? 그런 건 없다. 지금. 이 순간이 진짜다.
백현진(49)은 '밝은 어두움'이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똘끼 충만 독특한 배우로 존재감이 강렬하던 그가 화가로 등장, 맑은 모습을 보였다.
3일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 멀끔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최근 화제의 드라마 '모범택시'에서 '갑질 회장'으로 나와 변태같은 소름 끼치는 연기로 긴장감을 폭발시킨 그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배우가 아닌 화가로 PKM갤러리에서 3년만에 전시를 연다. 2019년 '노동요: 흙과 매트리스와 물결'이라는 다소 거창했던 제목과는 달리 이번 전시는 '말보다는'을 타이틀로 달았다.
백현진은 "전시장에서 인상적인 텍스트를 본적이 없다. 오히려 방해가 된다"며 "관람객이 각자 보고 들리는 대로 관람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래서 전시장에는 작품을 설명하는 일체의 텍스트가 없다.
이번 전시 '말보다는'은 3년간 리얼타임속 부지불식간에 그린 작업이다.
이번 전시에는 ‘회화, 조각, 설치, 음악, 비디오, 공연, 대본, 퍼포먼스, 연기’로 구성되며, 총 60개의 작품이 전시된다. 구작 회화 3점을 제외하고 모두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신작으로 회화 44점, 설치작품 9개, 음악 4곡, 비디오와 대본 각각 한 편씩과 조각 1점이다.
그림은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희한하게 좋아보인다. 그게 백현진표 그림이다. 이번 작품에는 사람 형상이 빠져있는게 특징이다. 무의식속에서 일어나는 심상의 변화를 즉흥적으로 담아낸다. 수수께끼 같은 도상과 현란한 색채, 감정의 날 것 그대로가 투영된 빠른 붓터치가 방점이다.
그는 "내 그림에 대해 이게 '무슨 그림이냐, 이건 모르겠는데, 무슨 뚱딴지야'라고 생각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쓸모가 있든 무엇이든 아니든 받아들인다"면서 "그 또한 예술적 경험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치부했다.
홍익대 조소과를 입학했지만 졸업은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왕따'라서 거의 나가지 않았다"는 그는 조각을 전공하다, 음악가가 되고, 가수지만 화가가 되어 유명 화랑과 미술관을 제대로 통과하며 붓질도 멈추지 않고 있다.
"저는 제 일을 보는 겁니다"
화가 설치미술과 음악가 배우. 동시다발적으로 활동하지만 "나는 아티스트이든 배우이든(이런게)하나도 안중요하다. 그냥 내 일을 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역병의 시대를 맞아 안해본 생각도 해보며 미술가로서도 생각하게 됐다"면서 "왜 이렇게 물건을 만들어낼까? 이렇게 계속 만들어내도 괜찮을까 지겨워 죽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했다. "배우는 몸뚱아리로 기록된걸 디지털화화고, 음악은 쿨한데, 미술이 (마음에)걸렸다"는 것.
그러다 자신이 쓰고 있는 '유화'라는 재료에 눈을 돌렸다. "알고보니 유화는 영원을 욕망한 상징이더라."
지겨워죽겠는데, 작업실에 수두룩한 유화를 보며 '내돈내산'인데 갖다버리기도 아깝고, 또 있는 것을 버리는 것도 그렇고, 버리는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 사라지는 그림을 그리면 어떨까. 화가로 일한 이후 처음으로 조수를 고용, 구글링해 이미지를 추출하고 유화로 다시 그려 '생분해 가능한 것'이라는 작품으로 변신시켰다.
PKM갤러리와 전속 의리파다. 1999년 인디밴드시절에 만난 PKM 박경미 대표의 안목으로 '작가 백현진'의 이력이 세련되게 이어지고 있다. (PKM갤러리는 국내 대표 기획화랑으로 아무나 개인전을 열어주지 않는 상업화랑이다.)
그는 원래 개성 강한 뮤지션으로 유명했다.1994년 장영규 원일과 함께 '어어부 프로젝트'를 결성해 '인디계의 반칙왕' 등이라 불리며 음악계에 눈도장을 찍었다.
개성 강한 캐릭터처럼 '무대포' 기질도 보였다. 1999년 영화 '반칙왕'에 우연히 오브리 밴드 멤버중 한명으로 출연한 것이 배우로 이어졌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이상한 상무'로 눈길을 확 사로잡았던 그는 최근 배우로 집중한 분위기다.
처음부터 카메라 울렁증은 없었다고 했다. "그냥 기계가 기록을 하는구나. 냉장고 앞, 선풍기 앞에 서 있는 거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후 독립영화에 출연했고 2000년 장률 감독의 '경주' 출연이후 배우 시장에서 연락이 오고 있고, 마다하지 않고 출연한다고 해 소속사가 말릴 정도로 입장이 바뀌었다고도 했다.
그는 하정우 솔비 조영남등과 묶여 '연예인 화가'로 불리는 것에 "나 떴다"고 우스개 소리를 할 정도로 여유를 보였다. "어떤 사람이든 그림 그리는 건 환영한다"고 과장하듯 말했다.
가수로서 이번 개인전을 위해 특별 제작된 음악들도 선보인다. 각 전시장별로 QR 코드, 또는 스피커를 통해 송출되며 공감각적인 환경을 연출한다. 전시 일환으로 퍼포먼스와 라이브 음악 공연이 오는 19일과 7월 3일에 펼쳐지고, 전시의 연계 출판물로 소책자, 포스터, 카세트테이프 한정판 패키지가 6월 중순에 출간된다.
작가 마음대로 그린 그림. 굳이 따진다면 '추상표현주의'에 가깝지만 그 또한 큰 의미가 없다.
백현진이 "뱃속 편하게, 홀가분하게 끝낸" 그 기운이 전해진다. '저것도 그림이냐'고 수군대던 시절도 있었지만 백현진 그림은 '말보다는 실견'이 필요하다. '알듯 모를 듯 한데 편안하고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있어빌리티'한 현대미술의 묘미다. 전시는 7월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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