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공수 11대대 지역대장 신순용 전 소령 민주묘지 참배
신 전 소령 "죄스런 마음…군·경 추가로 양심 고백해야"
[광주=뉴시스] 신대희 김혜인 기자 = "제가 진짜 죄인입니다. 용서해주십시오."
1980년 5월 광주시민 진압에 투입된 3공수여단 11대대 소속 지역대장이었던 신순용(73) 전 소령이 41년 만에 처음으로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오월 영령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신 전 소령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교도소 앞에서 민간인 3명을 사살·암매장했다고 양심 고백한 바 있다. 그의 진실한 사죄가 전두환 신군부의 명령으로 동원된 5·18 계엄군들의 추가 고백·증언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신 전 소령은 21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5·18민주묘지를 찾았다. 계엄군 간부의 민주묘지 방문은 처음이다.
신 전 소령은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님을 위한 행진곡'에 맞춰 민주의 문을 거쳐 추념문에 이르렀다. 제단에서 헌화·분향한 뒤 두 손을 모은 채 묵념했다.
신 전 소령은 41년 동안 마음에 담아 둔 오월 영령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을 큰 절에 담았다. "미안합니다"라며 오월 영령에 큰 절을 세 번 올렸다.
이날 참배에 동행한 차종수 5·18기념재단 고백과 증언센터 팀장이 신 전 소령에게 열사의 묘소를 안내했다.
신 전 소령은 1980년 5월 21·23일 자신이 지휘하던 부대원들에게 희생된 고규석·서만오열사의 묘지를 참배했다.
두 열사는 광주교도소에 주둔(1980년 5월 21일~24일)하면서 외곽봉쇄 작전을 폈던 3공수 부대원들의 총격으로 숨졌다.
신 전 소령은 고규석 열사의 묘지 앞에서 "제가 당시에 처음부터 끝까지 (광주교도소 안팎) 고속도로 참상을 목격하고 관여를 했다. 교도소 담벼락 앞에서 앞 중간, 끝에 1개 조인 총 30명 정도 매복을 섰다. 담양 방면으로 이동하는 트럭을 향해 매복조가 조준사격을 해서 차량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굴러떨어졌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내 둥글납작한 모자(일명 베레모)를 벗었다. 41년의 세월이 지난 그의 이마엔 깊게 팬 주름이 보였다. 그는 묘비 앞에서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라면서 무릎을 꿇었다.
그는 '정의는 새가 하늘을 나는 것을 아무도 방해하지 못한다. 민주여 영원하라!'라고 쓰여진 서만오열사의 묘비 앞에서도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제가 진짜 죄인입니다. 용서하십시오"라면서 또 절을 올렸다.
김영훈 5·18유족회장은 신 전 소령의 손을 맞잡은 채 위로의 말을 건넸다.
김 회장은 "용기를 내서 감사드린다. 40여년 간 얼마나 트라우마에 시달렸을까. 그동안의 트라우마를 이제는 씻고 우리 (유)가족과 화합의 장을 마련하려고 한다"고 신 전 소령을 다독였다.
신 전 소령은 5·18추모탑 앞에서 "지휘관으로서 저도 죄스럽게 생각하고 부하들의 잘못은 제가 다 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더이상 진실이 왜곡되면 안 된다. 다른 (군)지휘관·경찰도 이 기회에 나와 (5·18민주화운동의)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그대로 본 것을 말하고, 용기를 내서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5·18 때 군인들이 먼저 총을 쏴 불가피하게 시민이 무장하게 됐다며 군인들에게 음식을 전해준 광주시민에게 고맙다고 고백했다.
전두환에 대해서도 "자기 직권에 의해서(정권 찬탈을 위해) 많은 광주시민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다는 것에 대해서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신 전 소령은 참배에 앞서 방명록에 '늦어서 죄송합니다. 여러분들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습니다'고 글을 남겼다.
신 전 소령은 1980년 5월 20일 광주에 왔다. 그는 옛 광주교도소 정문으로 접근하는 차량에 총을 쏴 3명을 사살해 교도소 앞 야산에 암매장했다고 2017년 고백한 바 있다.
또 15대대 부대원들이 교도소 남쪽 담장 인근에 주검 12~15구, 북쪽 담장 인근에 10구를 묻는 것을 봤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그는 '정의는 새가 하늘을 나는 것을 아무도 방해하지 못한다. 민주여 영원하라!'라고 쓰여진 서만오열사의 묘비 앞에서도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제가 진짜 죄인입니다. 용서하십시오"라면서 또 절을 올렸다.
김영훈 5·18유족회장은 신 전 소령의 손을 맞잡은 채 위로의 말을 건넸다.
김 회장은 "용기를 내서 감사드린다. 40여년 간 얼마나 트라우마에 시달렸을까. 그동안의 트라우마를 이제는 씻고 우리 (유)가족과 화합의 장을 마련하려고 한다"고 신 전 소령을 다독였다.
신 전 소령은 5·18추모탑 앞에서 "지휘관으로서 저도 죄스럽게 생각하고 부하들의 잘못은 제가 다 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더이상 진실이 왜곡되면 안 된다. 다른 (군)지휘관·경찰도 이 기회에 나와 (5·18민주화운동의)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그대로 본 것을 말하고, 용기를 내서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5·18 때 군인들이 먼저 총을 쏴 불가피하게 시민이 무장하게 됐다며 군인들에게 음식을 전해준 광주시민에게 고맙다고 고백했다.
전두환에 대해서도 "자기 직권에 의해서(정권 찬탈을 위해) 많은 광주시민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다는 것에 대해서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신 전 소령은 참배에 앞서 방명록에 '늦어서 죄송합니다. 여러분들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습니다'고 글을 남겼다.
신 전 소령은 1980년 5월 20일 광주에 왔다. 그는 옛 광주교도소 정문으로 접근하는 차량에 총을 쏴 3명을 사살해 교도소 앞 야산에 암매장했다고 2017년 고백한 바 있다.
또 15대대 부대원들이 교도소 남쪽 담장 인근에 주검 12~15구, 북쪽 담장 인근에 10구를 묻는 것을 봤다고 증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