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뮤지컬배우 바다·최정원도 다녀가
빈소 명동성당...추기경 유리관 안치
거리두기속 일반인 조문도 이어져
장례, 5일장으로 5월1일까지 진행
[서울=뉴시스] 남정현 기자 = 정진석 추기경이 27일 향년 90세의 나이로 선종한 가운데, 그의 빈소가 마련된 명동성당에 정계 인사들의 조문이 잇따랐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신자들과 시민을 대상으로 28일 오전 7시부터 조문을 허용했다. 조문객은 장례 나흘째인 오는 30일 정 추기경 시신이 정식 관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유리관에 안치된 시신 가까이서 마지막 인사를 올릴 수 있다.
유리관 속 정 추기경은 모관을 쓰고 반듯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대성전 안엔 정 추기경이 1970년 주교품을 받으며 첫 사목 표어로 삼았던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정계 인사 등 귀빈들은 서울대교구 총대리인 손희송 주교가 직접 응대했다. 인사들은 귀빈실에서 방명록을 작성한 후, 대성전으로 들어가 정 추기경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현 국무총리 대행)은 오후 3시54분께 정 추기경을 조문하고 나와 "추기경님이 선종하실 때 모든 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남기셨다고 들었다. 우리 모두가 사회적 약자를 아우르면서, 우리 사회가 추기경님의 뜻과 정신대로 사랑과 행복이 가득찬 사회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어 "저희 같은 정책 당국자는 특히 그와 같은(사목 표어인 '모든 이에게 모든 것') 정신과 뜻을 앞장서 실천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다시 한 번 애도드리고 영면하시기를 기도드린다"고 했다.
또 홍 부총리는 가톨릭 신자로써 정 추기경과의 직접적인 인연은 없지만 늘 그의 뜻을 받들고자 노력해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의 세례명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하비에르)다. 명동 성당에서 영세를 받았다. 남다른 마음이 든다"고 했다.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는 오후 1시5분께 명동성당에 도착했다. 김 후보자는 고인과에 대한 마지막 기억을 묻는 질문에 "최근엔 못 뵀다. 2011~12년으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로 (제가) 국회에 있을 때 사형제 폐지 법안을 냈었다. 당시 주교님께서 각별히 관심 가져 주셨다. 주교님을 모시고 간담회도 하고 사형수들을 다룬 영화도 같이 봤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김수한 추기경님은 정신적 지도자셨다"고 했다.
김 후보자는 18대 국회 당시 사형제 폐지에 앞장섰다. 김 후보자는 당시 민주당 의원으로 재직할 당시 사형폐지특별법을 대표발의했다. 같은 날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한 천주교인 10만481명은 사형 폐지 입법청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김 후보자와 정 추기경은 11월4일 열린 영화 '집행자' 시사회에 같은 날 참석했다.
김 후보자는 "추기경님이 세상에 여러 빛을 남기셨지만, 특히 사형제 폐지에 관심이 많으셨다. 우리 사회의 어른이 남기신 큰 사랑을 우리가 다시 어려울 때일수록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오후 4시55분께 조문을 마치고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자신의 육신, 재산를 모두 주고 가셨다. 가장 우리에게 크게 주신 건 사랑이다. 그 사랑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시리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오후 5시10분께 자리했다. 천주교 신자인 오 시장은 "최근에 자주 못 뵀다. 과거에는 자주 찾아 뵙고 좋은 말씀 들을 기회가 자주 있었다. 가슴이 아프다. 애통하다. 모든 걸 내어 주시고 가신 신부님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하고 기도 드린다는 취지로 방명록을 남겼다"면서 "옛날에 많이 귀여워 해주셨다. (마지막으로 뵌 지) 6~7년은 된 것 같다"고 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오후 1시55분께 조문을 마치고 나가며 "추기경님의 말씀과 삶을 통해서 저희들이 사랑과 행복의 세상을 만들도록 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 본인 말씀처럼 모든 것을 남기고 떠나신 추기경님의 마지막 발걸음도 저희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셨다. 그런 추기경님이 이 땅에 계셨던 것에 감사드리고 왔다. 추기경님이 계셔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김상희 국회부의장과 원유철 전 미래한국당 대표, 양승조 충남도지사도 정 추기경의 마지막 가는 길에 인사했다.
연예인으로는 유일하게 뮤지컬배우 바다와 최정원이 얼굴을 비쳤다. 바다는 "천주교 신자다. 존경하는 분이시고 하니 인사드리러 왔다. (생전에 시민들에게) 따뜻한 마음 (전)해 주셨다. 감사한 마음으로 왔다"고 했다.
이날 조문객 수는 점심 시간에 최대 80여 명을 기록했다. 오후 시간에는 평균적으로 이보더 적은 조문객이 명동성당을 찾았다. 미사와 연당(천주교식 위령 기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매시각 정해진 인원에 한해 80명씩 참석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오후 5시10분께 자리했다. 천주교 신자인 오 시장은 "최근에 자주 못 뵀다. 과거에는 자주 찾아 뵙고 좋은 말씀 들을 기회가 자주 있었다. 가슴이 아프다. 애통하다. 모든 걸 내어 주시고 가신 신부님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하고 기도 드린다는 취지로 방명록을 남겼다"면서 "옛날에 많이 귀여워 해주셨다. (마지막으로 뵌 지) 6~7년은 된 것 같다"고 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오후 1시55분께 조문을 마치고 나가며 "추기경님의 말씀과 삶을 통해서 저희들이 사랑과 행복의 세상을 만들도록 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 본인 말씀처럼 모든 것을 남기고 떠나신 추기경님의 마지막 발걸음도 저희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셨다. 그런 추기경님이 이 땅에 계셨던 것에 감사드리고 왔다. 추기경님이 계셔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김상희 국회부의장과 원유철 전 미래한국당 대표, 양승조 충남도지사도 정 추기경의 마지막 가는 길에 인사했다.
연예인으로는 유일하게 뮤지컬배우 바다와 최정원이 얼굴을 비쳤다. 바다는 "천주교 신자다. 존경하는 분이시고 하니 인사드리러 왔다. (생전에 시민들에게) 따뜻한 마음 (전)해 주셨다. 감사한 마음으로 왔다"고 했다.
이날 조문객 수는 점심 시간에 최대 80여 명을 기록했다. 오후 시간에는 평균적으로 이보더 적은 조문객이 명동성당을 찾았다. 미사와 연당(천주교식 위령 기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매시각 정해진 인원에 한해 80명씩 참석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추기경은 27일 오후 10시15분께 선종했다.
1931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 추기경은 발명가를 꿈꾸며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6·25 동란 이후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1961년에 사제품을, 1970년에 주교품을 받으며 최연소 주교가 됐다. 만 39세의 나이로 제2대 청주교구장에 임명돼 28년간 청주교구를 이끌었다. 1998년부터 12년간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임했다.
2006년 3월 고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추기경에 서임됐다. 2012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나 은퇴했다. 이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주교관에서 머물며 저술활동을 이어 왔다.
장례는 천주교 의례에 맞춰 5일장으로 5월1일까지 진행된다. 시민들은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조문할 수 있다. 장례미사는 염 추기경의 주례로 5월1일 오전 10시에 봉헌된다. 이후 고인은 장지인 경기 용인 성직자묘역에 영면하게 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1931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 추기경은 발명가를 꿈꾸며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6·25 동란 이후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1961년에 사제품을, 1970년에 주교품을 받으며 최연소 주교가 됐다. 만 39세의 나이로 제2대 청주교구장에 임명돼 28년간 청주교구를 이끌었다. 1998년부터 12년간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임했다.
2006년 3월 고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추기경에 서임됐다. 2012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나 은퇴했다. 이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주교관에서 머물며 저술활동을 이어 왔다.
장례는 천주교 의례에 맞춰 5일장으로 5월1일까지 진행된다. 시민들은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조문할 수 있다. 장례미사는 염 추기경의 주례로 5월1일 오전 10시에 봉헌된다. 이후 고인은 장지인 경기 용인 성직자묘역에 영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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