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학전 30주년②]'지하철 1호선'→'어린이·청소년극 지킴이'로

기사등록 2021/03/08 09:53:06

최종수정 2021/03/08 16:08:37

2004년부터 어린이·청소년 무대 시리즈 공연

"김민기 대표, 수익 따지지 않고 공연계 지켜"

코로나 여파 30주년 행사 없어·운영도 어려움

[서울=뉴시스] 어린이 뮤지컬 '우리는 친구다'. 2021.03.08. (사진 = 극단 학전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어린이 뮤지컬 '우리는 친구다'. 2021.03.08. (사진 = 극단 학전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학전의 김민기 대표가 돈이 되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대신 본인이 할 일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 어린이·청소년극이다. 수익이 거의 나지 않음에도, 척박한 어린이·청소년 문화를 위해 2004년부터 지금까지 애정을 쏟고 있다.

'우리는 친구다'를 시작으로 '고추장 떡볶이', '슈퍼맨처럼!', '무적의 삼총사' '진구는 게임 중' 등 '학전 어린이 무대' 시리즈를 꾸준히 선보였다. '모스키토' '굿모닝 학교' '복서와 소년' 등 '학전 청소년 무대' 시리즈로 선보였다.

이 중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모스키토'는 독일 그립스(GRIPS) 극단의 원작을 번안했다. 그립스 극단은 '지하철 1호선'의 원작('Linie 1')을 선보인 곳이다.

김 대표는 일찌감치 아동·청소년극 지킴이로 통했다. 1987년엔 어린이 뮤지컬 '아빠 얼굴 예쁘네요' 대본·작곡을 맡았다. 그가 젊은 시절 탄광 마을에 살았던 경험, 마을 아이들의 일기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2004년 '우리는 친구다'를 올리면서 본격적으로 어린이·청소년극에 천착하게 된다. 그립스 극단의 '막스와 밀리(Max und Milli)'가 원작이다. 김 대표가 우리나라 정서에 맞추어 새롭게 번안, 각색했다. 학전 어린이 무대 시리즈 중 역대 최다 관객 수를 기록한 작품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이들의 일상을 담는다. 아이 관객은 인물들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어른 관객은 자신의 잣대로 평가한 아이들의 모습을 다시 톺아본다. 어렵게 느껴지는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 대해 따듯한 성찰을 던진다.

특히 당시 '우리는 친구다'는 기존의 다른 어린이 공연과 달리 주체적이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어린이를 그려서 호평을 받았다.

[서울=뉴시스] '아빠 얼굴 예쁘네요'. 2021.03.08. (사진 = 극단 학전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아빠 얼굴 예쁘네요'. 2021.03.08. (사진 = 극단 학전 제공) [email protected]
극단 학전의 기획실장을 지낸 명필름아트센터 강태희 기획실장은 '우리는 친구다' 초연 첫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강 실장은 "러닝타임 2시간에, 악당·초능력이 등장하지 않는 어린이 이야기가 통할까 싶어 걱정이 많았다"면서 "그런데 커튼콜에서 아이들이 방방 뛰었어요. 너무 신나니까, 아이들이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어 무대 위와 뒤편까지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고 웃었다.

"배우들이 '지하철 1호선'만 해봤지 어린이극은 처음이었잖아요. 대학로 인근 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들하고 축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대본을 나눠 보면서, 공연을 만들어갔던 기억이 난다"고 덧붙였다.

학전 출신 대표적인 배우인 설경구는 뉴시스에 "학전은 대학 졸업 후 막막했던 저에게 커다란 희망의 빛이었습니다. 공연계에서 학전은 예나 지금이나 늘 푸릇푸릇한 솔잎!!! 젊음의 상징인 것 같습니다. 김민기 선생님의 눈길이 머무는 것이 아동, 청소년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본다"고 말했다.

소극장 지킴이 학전, 그 미래를 위해

지난 2018년 2월26일에 열렸던 '2018 학전 신년회'에는 최근 몇년간 음울한 대학로에 보기 드문 잔칫날이었다. 극단 학전을 거쳐 간 약 200명이 모여 음식과 추억을 나누며 앞날에 대한 덕담을 주고받았다.

서로 식구(食口)라 부르며 챙겼다. 말 그대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들의 정겨움이 묻어났다. 이상적인 연극 공동체가 무너졌지만, 대학로에 그것에 가까운 극단이 있었다.

이 덕분에 배우뿐만 아니라 학전을 거쳐간 스태프까지 학전을 떠났어도 학전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이양희 세종문화회관 공연예술본부장, 강태희 실장, 신시컴퍼니에 근무 중인 정옥희 씨 등이 그렇다.

[서울=뉴시스]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독일 투어. 2021.03.08. (사진 = 극단 학전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독일 투어. 2021.03.08. (사진 = 극단 학전 제공) [email protected]
정옥희 씨는 "대학로가 상업지구로 변하고 난 후에 철에 따라 바뀌는 상가들이 들어섰지만, 학전 앞을 지날 때는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담벼락, 담쟁이 덩쿨, 봄에 피는 능소화도 그렇고. 자본주의로 변하는 세상 속에서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오롯이 올바른 사람을 키우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 공간"이라고 기억했다.

"제가 첫 사회생활을 하면서 학전에서 물려받았던 건, 선배님들의 업무 스킬도 있었지만, 감히 따라잡을 수도 없는 김민기 선생님의 정신"이라면서 "진정으로 강한 자한테 강하고 약한 자한테 한없이 약한 분이셨고,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더 큰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신 분"이라고 했다.

13년 동안 학전에 몸 담았던 강태희 실장은 이곳에서 제대로 근무하기 전, 대학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학전 키드'다. 과거 PC통신 '나우누리'에서 학전 방을 드나들었고 '자원봉사단'으로 함께 했다. 강 실장은 "학전의 지하로 내려가면,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막 휘몰아친다"면서 "정말 '친정 같은 곳'"이라고 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옥자'의 정재일 음악감독도 학전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70년대 후반 한국 노동운동의 정경이 담긴 1978년작 김민기의 노래굿 '공장의 불빛'을 재해석한 프로젝트를 2004년 선보이기도 했던 정재일은 김 대표가 일찌감치 점찍은 인물이다.

2018년 '지하철 1호선 ' 공연뿐만 어린이 영상노래극 '아빠 얼굴 예쁘네요' 등 다수의 어린이·청소년극 아니라 극단 학전의 음악감독으로 활약해왔다.

정재일은 뉴시스에 "음악이 어떤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지 알게 해준 김민기 선생님을 처음 만나게 된 곳이고 어린이 연극을 경험해 볼 수 있게 해준 곳"이라면서 "어느 순간부터 신작이 나오지 않고 있는데, 여러 재능있는 아티스트들과 만들어낸 학전의 신작을 관객 입장에서 너무나도 보고 싶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소극장 학전 그린. 2021.03.08. (사진 = 극단 학전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소극장 학전 그린. 2021.03.08. (사진 = 극단 학전 제공) [email protected]
박병성 공연 칼럼니스트는 "학전은 소극장 콘서트뿐만 아니라 번안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개척하며 뮤지컬, 어린이극에서 독보적인 역할을 해온 곳"이라면서 "특히 학전 어린이극의 특징은 어린이 관점에서 어린이들이 실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김민기 대표는 돈은 안되지만, 공연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들을 해오셨다. 자본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공연계를 지켜왔다"고 덧붙였다.

올해는 학전에게 큰 의미가 있는 해이지만, 코로나19 여파로 현재까지 예정된 30주년 행사는 없다. 잇따른 공연 취소 등으로 운영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김 대표는 다른 형태의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대중음악계와 공연계에서는 우리나라 '소극장 지킴이'로 통하는 학전을 계속 지켜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모아지고 있다. 

학전에서 제대로 된 첫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는 기억을 갖고 있는 가수 장필순은 "저희 세대 음악하는 친구들에게 학전은 역사와 같은 곳"이라면서 "해외에서는 유서 깊은 문화 공간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있는데, 수많은 소극장이 사라지는 가운데도 수익을 따지지 않고 소극장 문화를 지켜온 학전이 계속 보존되는 방법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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