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고령 직원 직무 능력 비하나 모욕감 줄 의도 없어"
대기업이 간부에게 내린 견책 처분은 무효, 전보는 정당
[광주=뉴시스] 신대희 기자 = 대기업 간부가 영업 사원 고령화를 설명하는 과정에 하급자에게 나이를 물어봐 '직장 내 괴롭힘'으로 견책 처분을 받았지만, 소송을 통해 '처분이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기업 자체 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해당 간부가 고령 직원의 직무 능력을 비하하거나 하급자에게 모욕감을 줄 의도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전보 처분은 정당하다고 봤다.
광주지법 제11민사부(재판장 전일호 부장판사)는 모 대기업 지사장 A씨가 대기업을 상대로 낸 징계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고 14일 밝혔다.
재판부는 '기업 측이 A씨에게 한 견책 처분은 무효임을 확인한다. 다만, 전보 명령은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A씨는 2019년 12월 11일 법인 고객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110여 명이 참석한 행사 자리에서 지사 대표로 토의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A씨는 영업 사원의 평균 연령이 50세 이상이라는 점을 설명하기에 앞서 자신(부장)보다 직급(차장)이 낮은 B씨에게 나이를 물어봤고, B씨가 대답하지 않자 마이크를 가까이 대면서 '하우 올드 아 유?'라고 영어로 나이를 재차 물어봤다.
B씨는 '임직원 모두 영업 조직의 고령화를 알고 있는 상황에 A씨가 고령화 현상을 설명하면서 나이를 물어보는 것은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지위의 우위성을 이용한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B씨는 또 'A씨는 고객 관리에 있어 나이 든 분을 배제하고 젊은 신입으로 지정하겠다고 말한 뒤 나이를 물어봤다. 고령자는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로 전달될 수 있다. 불쾌감·모욕감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반면 A씨는 '기존 성과와 내년 사업 추진 방향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영업 사원 평균 연령을 설명하기에 앞서 참석자들의 집중도를 높일 의도였다. B씨를 모욕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의도로 나이를 물어보지 않았다. 고령 직원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표 내용 또한 없었다'고 항변했다.
이 기업 고충 심의·인사위원회는 지난해 3월 A씨의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보고 A씨에게 견책 처분을 했다. 이후 인사 규정에 근거, A씨를 직책이 없는 일반 직원으로 전보했다.
A씨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 징계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A씨가 고령 직원의 직무 능력을 깎아내리는 발언을 했다면, 그 자체가 징계 사유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A씨의 발표 자료에는 '직원들의 역량에 기반해 고객을 배정하겠다. 역량에 맞게 잘 할 수 있는 상품에 집중하겠다'고 기재돼 있다. 이 기업 고충 담당부서 조사 문답서에도 '고객 관리에 나이 든 분을 배제하고 신입으로 지정하겠다'고 A씨가 말했다는 기록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의 주장이 비합리적이라거나 거짓이라고 볼만한 사정은 없는 점, A씨가 B씨와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적이 없는 점 등으로 미뤄 A씨가 지위의 우위를 이용, B씨에게 나이를 물어봤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고충 담당부서가 조사한 참고인 19명 중 5명은 비하 발언에 해당한다고, 5명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9명은 판단을 유보하는 답변을 했다. 행사에서 갑자기 질문을 받을 때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사람에 따라 다양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해당 질문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섰다고 볼 수 없고 정신적 고통을 줬다고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러한 점을 들어 "이 사건 비위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아 견책 처분은 무효"라고 판시했다.
다만 "기업 인사 규정상 전보 명령의 요건으로 징계 처분이 유효할 것을 정하고 있지 않다. 기업이 직원들 사이의 인화를 회복하고 직장 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A씨에 전보 명령을 한 것은 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