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부처 의견 취합한 정부안 국회 제출
의원 입법안 대비 후퇴 지적…노동계 반발
노조법 개정 이어 노정관계 순탄치 않을듯
[서울=뉴시스] 강지은 기자 = 정부가 의원 입법안과 비교해 처벌 수준은 낮추고 적용 유예 대상은 확대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향후 노동계와의 첨예한 대립이 예상된다.
이미 지난 9일 경영계 요구를 일부 반영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노동계 숙원인 중대재해법도 원안보다 크게 후퇴한 상태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당분간 노정관계 악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29일 노동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법무부 등 관계부처 의견을 취합해 지난 28일 국회에 제출된 중대재해법 정부안은 당초 법안 제정의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개악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산업안전 의무를 소홀히 해 노동자를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기업을 형사 처벌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게 골자다.
올해 초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비슷한 사망사고가 반복되자 노동계를 중심으로 중대재해법 제정 목소리가 나왔고, 여야 의원들이 제정안을 발의하면서 논의에 속도가 붙었다.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이탄희·박범계 의원이 각각 발의한 제정안과 정의당 강은미 의원,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발의한 제정안 등 5건이 발의돼 있다.
그러나 지난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법안소위 논의 결과 발의된 법안에 대한 일부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면서 지적된 내용을 반영한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문제는 제출된 정부안이 기존 의원 입법안과 비교했을 때 대폭 후퇴했다는 점이다.
우선 중대재해 발생 책임 수위가 낮아졌다. 원안은 건설공사 등에서 빚어진 산업재해에 대해 '발주처'까지 안전의무를 지우고 있는데, 고용부는 "발주만으로 안전보건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과잉"이라며 해당 조항의 삭제 의견을 냈다.
원청의 책임도 줄어들었다. 원안은 사업주나 법인 등이 제3자에게 임대·용역·도급 등을 한 경우 공동의무를 지우도록 했는데, 정부안은 "(원청이) 설비 등을 소유하거나 그 장소를 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로 한정"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등에 대한 처벌 수준도 낮아졌다. 안전보건 조치를 위반할 경우 '5억원 이상' 벌금에 처한다는 원안과 비교해 정부안은 이를 '5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바꿔 벌금 하한선을 대폭 낮추고 상한선을 뒀다.
적용 유예 대상은 더욱 확대됐다. 박주민 의원 법안 중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법 적용을 4년 유예한다'는 부칙을 살리면서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법 적용을 2년 유예하자는 대목을 추가로 담은 것이다.
여기에 핵심 쟁점이자 위헌 소지로 시비가 있었던 '인과관계 추정'은 정부안에서 아예 삭제되고, 징벌적 손해배상의 경우도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로 한정하면서 사실상 경영계 입장을 수용한 안이란 지적이 나온다.
노동계는 즉각 반발하고 있다.
제1노총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는 중대재해를 근절하기 위한 의지가 있느냐. 핵심이 빠진 누더기 법안으로 정말 안전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보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것이 중대재해기업 '면제법'이지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이냐"면서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며 촉구하는 내용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온전하게 즉각 입법하라"고 외쳤다.
노동계가 무엇보다 강력 반발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 사회'를 기치로 출범했음에도 그간 이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는 데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등을 담은 노조법 개정안,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주52시간 적용유예 등이 모두 이번 정부 내에서 이뤄졌다고 노동계는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모든 개악의 내용이 자본과 재계의 요구다. 이러고도 노동존중을 말할 수 있느냐"며 "미적지근한 정권의 행보, 아니 노골적 친재벌 행보를 보이는 정권에 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있음을 직시하길 바란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노정관계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점이다.
특히 민주노총은 최근 '투쟁파'로 불리는 양경수 당선인이 내년 1월부터 3년간 민주노총을 이끌 신임 위원장에 오른 상태다. 양 당선인은 이날 온전한 중대재해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양 당선인은 '전태일 3법' 쟁취를 위해 내년 11월3일 총파업도 예고했다. 그는 당선 소감에서 "정권과 자본은 '낯선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며 "그동안의 관행과 제도, 기억은 모두 잊기를 경고드린다"고 밝혔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이러한 노정관계 악화의 피해는 결국 노동자에게 돌아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사회적 대화는 이전보다 어려워지고 민주노총은 더욱 고립되면서 노동자 권리는 뒷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노동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가 더욱 머리를 맞대고 한 발씩 양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회 법사위 법안소위는 이날 현재 정부안을 기준으로 중대재해법 논의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내년 1월8일까지인 이번 임시국회 내 본회의에서 제정안을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이미 지난 9일 경영계 요구를 일부 반영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노동계 숙원인 중대재해법도 원안보다 크게 후퇴한 상태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당분간 노정관계 악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29일 노동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법무부 등 관계부처 의견을 취합해 지난 28일 국회에 제출된 중대재해법 정부안은 당초 법안 제정의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개악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산업안전 의무를 소홀히 해 노동자를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기업을 형사 처벌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게 골자다.
올해 초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비슷한 사망사고가 반복되자 노동계를 중심으로 중대재해법 제정 목소리가 나왔고, 여야 의원들이 제정안을 발의하면서 논의에 속도가 붙었다.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이탄희·박범계 의원이 각각 발의한 제정안과 정의당 강은미 의원,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발의한 제정안 등 5건이 발의돼 있다.
그러나 지난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법안소위 논의 결과 발의된 법안에 대한 일부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면서 지적된 내용을 반영한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문제는 제출된 정부안이 기존 의원 입법안과 비교했을 때 대폭 후퇴했다는 점이다.
우선 중대재해 발생 책임 수위가 낮아졌다. 원안은 건설공사 등에서 빚어진 산업재해에 대해 '발주처'까지 안전의무를 지우고 있는데, 고용부는 "발주만으로 안전보건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과잉"이라며 해당 조항의 삭제 의견을 냈다.
원청의 책임도 줄어들었다. 원안은 사업주나 법인 등이 제3자에게 임대·용역·도급 등을 한 경우 공동의무를 지우도록 했는데, 정부안은 "(원청이) 설비 등을 소유하거나 그 장소를 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로 한정"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등에 대한 처벌 수준도 낮아졌다. 안전보건 조치를 위반할 경우 '5억원 이상' 벌금에 처한다는 원안과 비교해 정부안은 이를 '5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바꿔 벌금 하한선을 대폭 낮추고 상한선을 뒀다.
적용 유예 대상은 더욱 확대됐다. 박주민 의원 법안 중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법 적용을 4년 유예한다'는 부칙을 살리면서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법 적용을 2년 유예하자는 대목을 추가로 담은 것이다.
여기에 핵심 쟁점이자 위헌 소지로 시비가 있었던 '인과관계 추정'은 정부안에서 아예 삭제되고, 징벌적 손해배상의 경우도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로 한정하면서 사실상 경영계 입장을 수용한 안이란 지적이 나온다.
노동계는 즉각 반발하고 있다.
제1노총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는 중대재해를 근절하기 위한 의지가 있느냐. 핵심이 빠진 누더기 법안으로 정말 안전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보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것이 중대재해기업 '면제법'이지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이냐"면서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며 촉구하는 내용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온전하게 즉각 입법하라"고 외쳤다.
노동계가 무엇보다 강력 반발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 사회'를 기치로 출범했음에도 그간 이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는 데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등을 담은 노조법 개정안,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주52시간 적용유예 등이 모두 이번 정부 내에서 이뤄졌다고 노동계는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모든 개악의 내용이 자본과 재계의 요구다. 이러고도 노동존중을 말할 수 있느냐"며 "미적지근한 정권의 행보, 아니 노골적 친재벌 행보를 보이는 정권에 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있음을 직시하길 바란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노정관계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점이다.
특히 민주노총은 최근 '투쟁파'로 불리는 양경수 당선인이 내년 1월부터 3년간 민주노총을 이끌 신임 위원장에 오른 상태다. 양 당선인은 이날 온전한 중대재해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양 당선인은 '전태일 3법' 쟁취를 위해 내년 11월3일 총파업도 예고했다. 그는 당선 소감에서 "정권과 자본은 '낯선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며 "그동안의 관행과 제도, 기억은 모두 잊기를 경고드린다"고 밝혔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이러한 노정관계 악화의 피해는 결국 노동자에게 돌아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사회적 대화는 이전보다 어려워지고 민주노총은 더욱 고립되면서 노동자 권리는 뒷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노동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가 더욱 머리를 맞대고 한 발씩 양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회 법사위 법안소위는 이날 현재 정부안을 기준으로 중대재해법 논의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내년 1월8일까지인 이번 임시국회 내 본회의에서 제정안을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