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퉁소 연주자...국내 10명도 채 안돼
옌볜 출신으로 유명..."중저음 퉁소는 왕단소"
"국악관현악단에 연주자들 편제에 넣었으면"
![[서울=뉴시스]최민(사진=국립국악원 제공)2020.12.11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0/12/11/NISI20201211_0000654743_web.jpg?rnd=20201211172345)
[서울=뉴시스]최민(사진=국립국악원 제공)2020.12.1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남정현 기자 = 지난 4일 국립국악원에서 생황, 양금, 대피리, 퉁소, 철현금 등 국악기 중에서도 비주류에 속하는 악기들의 협연 무대 '비주비즈'가 열렸다.
그중 퉁소 연주자 최민(39)이 주목받았다. 퉁소 연주도 독특하지만 옌볜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최민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미쟝향, 일명 '퉁소마을'에서 출생했다. 밀강 퉁소마을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북한의 함경북도 지역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너 이주해 정착하면서 생긴 마을이다.
함경도에서 많이 연주되던 퉁소도 그대로 밀강에 전승돼 전해진다. 최민은 잔치와 대소사에서 신나게 연주하는 퉁소에 매료돼 자연스럽게 퉁소를 불게 된다.
1997년 옌볜조선족자치주 정부가 미쟝향을 '퉁소지향'(퉁소의 고향)으로 지정했다. 중국 정부는 2008년 '퉁소지향'을 추인하면서 '비물질문화유산'(무형문화재)으로 인정했다.
마을에서는 150명이 퉁소를 합주한 적이 있는데 최민은 당시 5학년의 나이로 최연소 연주자로 참여했다.
그중 퉁소 연주자 최민(39)이 주목받았다. 퉁소 연주도 독특하지만 옌볜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최민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미쟝향, 일명 '퉁소마을'에서 출생했다. 밀강 퉁소마을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북한의 함경북도 지역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너 이주해 정착하면서 생긴 마을이다.
함경도에서 많이 연주되던 퉁소도 그대로 밀강에 전승돼 전해진다. 최민은 잔치와 대소사에서 신나게 연주하는 퉁소에 매료돼 자연스럽게 퉁소를 불게 된다.
1997년 옌볜조선족자치주 정부가 미쟝향을 '퉁소지향'(퉁소의 고향)으로 지정했다. 중국 정부는 2008년 '퉁소지향'을 추인하면서 '비물질문화유산'(무형문화재)으로 인정했다.
마을에서는 150명이 퉁소를 합주한 적이 있는데 최민은 당시 5학년의 나이로 최연소 연주자로 참여했다.
![[서울=뉴시스]퉁소(사진=국립국악원 제공)2020.12.11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0/12/11/NISI20201211_0000654747_web.jpg?rnd=20201211172441)
[서울=뉴시스]퉁소(사진=국립국악원 제공)2020.12.11 [email protected]
그의 한국행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 왔다. 대학을 다니던 중 안식년을 갖고 있던 국립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초대원장인 백대웅 교수가 그의 연주를 우연히 보고 한예종 석사 과정을 제안한 것이다.
집안 형편이 어렵던 그를 위해 백대웅 교수는 그가 장학금에 생활비까지 지원받으며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도왔다.
그렇게 2006년에 한국문화관광부의 아시아 프로젝트 국비전액아마장학생(art major asia)으로 국립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석사과정에 입학해 대금 전공으로 한국유학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퉁소 연주과정이 없는 탓에 그는 옌볜예술고등학교부터 옌볜예술대학교, 한예종까지 저대(북한식 개량 대금)와 대금 등 다른 악기를 전공해야만 했다.
백 전 원장은 최민에게 18분짜리 퉁소협주곡 '만파식적의 노래'를 직접 작곡해 주기도 했다. 이는 한국 최초의 퉁소협주곡이다. 11일 국립국악원에서 만난 최민은 백 전 원장을 "인생의 은인"이라고 표현했다.
퉁소를 설명해 달라는 말에는 "왕단소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간명하게 말했다.
이어 "세로로 부는 관악기다. 백제시대에도 존재했던 악기였는데 옛날에는 대금보다 더 연주가 많이 됐다고 한다. 국악관현악에 편성이 돼지 않아있다 보니 연주자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북한에서도 명맥이 거의 끊겼다고 하더라"고 부연했다.
집안 형편이 어렵던 그를 위해 백대웅 교수는 그가 장학금에 생활비까지 지원받으며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도왔다.
그렇게 2006년에 한국문화관광부의 아시아 프로젝트 국비전액아마장학생(art major asia)으로 국립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석사과정에 입학해 대금 전공으로 한국유학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퉁소 연주과정이 없는 탓에 그는 옌볜예술고등학교부터 옌볜예술대학교, 한예종까지 저대(북한식 개량 대금)와 대금 등 다른 악기를 전공해야만 했다.
백 전 원장은 최민에게 18분짜리 퉁소협주곡 '만파식적의 노래'를 직접 작곡해 주기도 했다. 이는 한국 최초의 퉁소협주곡이다. 11일 국립국악원에서 만난 최민은 백 전 원장을 "인생의 은인"이라고 표현했다.
퉁소를 설명해 달라는 말에는 "왕단소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간명하게 말했다.
이어 "세로로 부는 관악기다. 백제시대에도 존재했던 악기였는데 옛날에는 대금보다 더 연주가 많이 됐다고 한다. 국악관현악에 편성이 돼지 않아있다 보니 연주자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북한에서도 명맥이 거의 끊겼다고 하더라"고 부연했다.
![[서울=뉴시스]최민(사진=국립국악원 제공)2020.12.11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0/12/11/NISI20201211_0000654750_web.jpg?rnd=20201211172507)
[서울=뉴시스]최민(사진=국립국악원 제공)2020.12.11 [email protected]
기다란 대에서 나오는 퉁소 소리는 웅장했다. 그는 퉁소에 대해 "대금은 고음이 매력적인 악기고, 퉁소는 중저음이 풍부한 악기다. 호방하고 직설적인 느낌이 강하다. 고구려의 기상을 닮은 악기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소외받는 악기인 만큼 연주할 곳이 많이 없지 않을까 궁금증이 생겼다. 하지만 국악관현악단에는 편성돼 있지 않지만 퉁소의 희소성 덕분에 그를 불러주는 곳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는 KBS국악관현악단,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등 유수의 악단과 수십 회의 협연을 했다. 현재는 '통일앙상블'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통일에는 '남북의 통일', '동서양의 만남'의 의미가 담겼다고 한다.
그는 '퉁소'가 사라질것 같아 가장 큰 걱정이다. 실제로 현재 국내에 퉁소 연주자는 열 명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퉁소 전공이 개설된 학교도 존재하지 않고, 당연히 퉁소 연주자라 할지라도 다른 악기를 전공해야만 한다.
그는 "대금 전공자들이 부전공으로라도 퉁소를 배울 수 있도록 하고 국악관현악단에 퉁소 연주자를 편제에 넣어 주면 퉁소를 배우려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그러면서도 연주자로서의 자부심은 넘쳤다. 그는 자신을 "시라소니"에 비유했다.
"드라마 '야인시대'의 시라소니처럼 초야의 고수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소외받는 악기인 만큼 연주할 곳이 많이 없지 않을까 궁금증이 생겼다. 하지만 국악관현악단에는 편성돼 있지 않지만 퉁소의 희소성 덕분에 그를 불러주는 곳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는 KBS국악관현악단,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등 유수의 악단과 수십 회의 협연을 했다. 현재는 '통일앙상블'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통일에는 '남북의 통일', '동서양의 만남'의 의미가 담겼다고 한다.
그는 '퉁소'가 사라질것 같아 가장 큰 걱정이다. 실제로 현재 국내에 퉁소 연주자는 열 명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퉁소 전공이 개설된 학교도 존재하지 않고, 당연히 퉁소 연주자라 할지라도 다른 악기를 전공해야만 한다.
그는 "대금 전공자들이 부전공으로라도 퉁소를 배울 수 있도록 하고 국악관현악단에 퉁소 연주자를 편제에 넣어 주면 퉁소를 배우려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그러면서도 연주자로서의 자부심은 넘쳤다. 그는 자신을 "시라소니"에 비유했다.
"드라마 '야인시대'의 시라소니처럼 초야의 고수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