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난 진화 호텔·상가까지 개조…정부 11만 가구 공급
아파트 선호하는데…다세대·다가구 공급 실효성 의문
전세난 당분간 '계속'…"시장 매물 늘리는 유인책 필요"
[서울=뉴시스] 박성환 기자 = 사상 최악의 전세난으로 촉발된 중저가 주택 매매수요가 급증하면서 전국 주간 아파트값 상승률이 8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주거 불안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정부가 전세대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향후 2년간 다세대와 호텔, 빈 상가 등을 활용해 전국에 공공임대주택 11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24번째 부동산대책을 발표한 지난 19일 공교롭게도 집값은 한국감정원이 통계를 작성 이후 8년 6개월 만에 최고로 상승했다.
정부는 오는 2022년까지 전국에 11만4100가구(수도권 7만1400가구 포함)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다. 지금의 전세난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내년 상반기 중으로 물량의 40%가 넘는 4만9000가구의 공공임대를 공급한다.
전세난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3개월 이상 공실인 공공임대주택은 무주택자라면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모두 입주가 가능하다. 현재 전국 공공임대 중 3개월 이상 공실인 주택은 3만9100가구로, 수도권은 1만6000가구가 있다.
정부는 또 민간건설사가 짓고 있는 주택 물량을 사들여 '공공 전세'로 전환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오는 2022년까지 1만8000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다. 공공 전세에는 기본 4년에 2년을 추가 거주할 수 있다. 보증금은 주변 시세의 90% 이하 수준으로 결정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주로 매입약정을 통해 물량을 확보하면서 기존 다세대 주택 매입도 병행한다. 다세대, 오피스텔 등 신축 건물을 사전에 확보한 뒤 공급되는 매입약정 주택도 오는 2025년까지 서울 2만 가구 등 총 4만4000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이들 주택은 임대료의 최대 80%를 보증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세형으로 공급된다.
국토부는 빈 상가와 관광호텔 등 숙박 시설을 주택으로 개조해 오는 2022년까지 전국 1만3000가구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할 예정이다.
정부는 또 중산층도 살 수 있는 30평대 공공임대주택을 내년부터 짓는다. 오는 2025년까지 6만3000 가구를 공급하고, 이후에는 연 2만 가구씩 꾸준히 공급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유형 통합 공공 임대 소득 구간이 중위소득 130%에서 150%로 확대되고, 주택 면적 한도도 60㎡에서 85㎡로 넓힌다.
하지만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 지방 광역시의 집값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9억원 이하의 중저가 아파트가 몰린 서울 외곽지역에서 신고가 경신이 이어지고, 지방 광역시 집값 상승률이 통계 집계 이후 8년 6개월 만에 역대 최대 상승률을 기록할 정도로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전세난에 지친 실수요자들은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 지역의 중저가 아파트 매매에 나서고, 정부의 규제가 덜한 일부 수도권 지역과 지방 광역시에는 투기 수요가 몰리면서 주택시장이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셋값 대비 저렴한 아파트를 찾아 수요자들이 몰리면서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집값이 급등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또 지방 광역시를 중심으로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값이 덜 올랐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개발 호재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 상승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한국감정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이달 셋째 주(16일 기준) 전국의 주간 아파트값이 0.25% 상승했다. 지난주(0.21%) 보다 상승폭이 커졌다. 특히 집값 상승률은 한국감정원이 통계를 작성한 2012년 5월 이후 8년 6개월 만에 최고치다.
서울 아파트값은 0.02% 올라 3주 연속 횡보했으나, 종로구(0.04%), 중구(0.04%), 중랑구(0.03%), 관악구(0.03%), 양천구(0.03%) 등에서 상승세가 뚜렷했다. 강남4구는 고가단지 위주로 관망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송파구(0.01%)와 강동구(0.02%)는 상승세를, 강남구(0.00%)·서초구(0.00%)는 보합세 유지했다.
수도권 아파트값은 0.18% 올라 지난주(0.15%)보다 상승폭을 키웠다. 경기도는 0.28% 상승하며 지난주(0.23%)보다 상승폭을 키웠다. 인천은 0.14%를 상승했지만, 지난주(0.16%)보다 상승폭이 줄었다. 다만, 조정대상지역을 묶인 김포시는 이번주 무려 2.73% 상승하면서 전국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김포는 이달에만 총 6.58% 폭등하며 과열 양상이다.
지방 아파트 매매가격은 이번 주 0.32% 올라 감정원 통계 작성 후 최고 상승을 기록했다.수도권인 인천을 제외한 5대 광역시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주 0.39% 오른 데 이어 이번주에는 0.48% 올라 역대 최고 상승폭을 기록했다.
주택시장에선 갈수록 전세난이 심각해지면서 집값 역시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부의 잇단 부동산 규제로 인한 전셋값 상승이 이어지면서 집값까지 밀어 올리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지만, 24번째 정부 대책은 근본적인 처방 대신 공급 총량을 늘리는 것에만 몰두한 '궁여지책'이라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공급하는 주택의 형태가 실수요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파트가 아닌 다가구·다세대 주택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전세난을 해소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더 나은 주거 환경을 원하는 실수요자의 요구와 동떨어져 있다는 얘기다.
빈 상가와 호텔을 주택으로 개조하더라도 원룸 형태에 불과해 3~4인 가구를 얼마나 흡수할지 불투명하다. 일부 호텔은 유흥가와 가까워 자녀가 있는 3~4인 이상 가구로부터 외면받을 가능성이 크다.
시민단체도 정부의 24번째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면 비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잘못된 정책으로 전세대란을 불러일으킨 정부가 전세난을 해결하겠다고 전세임대, 매입임대를 11만4000가구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포장만 임대인 가짜 임대에 불과하다"며 "정말 서민에게 필요한 공공임대주택은 연간 2만가구도 공급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단기간에 11만4000가구 공급은 현실성이 매우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또 전셋값을 결정짓는 또 하나의 변수인 신규 공급 물량도 갈수록 줄어든다. 내년부터 신규 아파트 공급이 줄면서 덩달아 전세 물건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내년 서울에서는 아파트 기준 총 2만3217가구가 분양 예정이다. 이는 올해 입주물량(4만2173가구)의 절반 수준인 55.1%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전세난이 앞으로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다세대, 다가구를 공공기관이 매입해 전세물량을 늘리는 건 기존에 가만히 두어도 나오는 물량이기 때문에 실제로 공급 물량이 늘었다고 볼 수 없다"며 "당장에 전셋집이 없는 게 문제인데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현재 상황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전셋값 상승이 중저가 아파트값을 끌어 올리며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방의 집값이 상향평준화될 우려가 있다"며 "전세시장을 비롯한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실수요자 원하는 형태의 주거와 지역, 시기에 맞게 공급 총량을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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