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의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출간
"신간, 시와 산문을 한상에…이해에 도움될 것"
"인간은 외로운 존재…하나의 본질로 이해해야"
"코로나19, 희망 갖고 인내하면 반드시 이겨낼 것"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시는 물, 공기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무더운 여름 갈증 날 때 시원한 물 한 잔, 그 물이 너무 감사하죠. 땀을 많이 흘린 날 샤워할 때 그 물이 너무 감사해요. 물이 없었다면 일상의 삶을 유지할 수 없죠. 인간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영혼의 양식을 챙겨 먹으면서 일상의 삶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시는 그런 영혼의 양식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전 세대에 걸쳐 사랑받는 시 작품을 발표해 온 정호승 시인이 7년 만의 신작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를 펴냈다.
정 시인은 10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시'를 인간 영혼의 양식에 비유했다.
그는 "오늘날은 인터넷의 세계, 영상의 세계이고 앞으로 인공지능의 세계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삶의 변화 속도는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면서도 "저는 시에는 속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인간의 영혼은 속도의 문제와 전혀 별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간의 영혼에는 속도보다는 편안함, 평화, 안정 등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런 것에 양식을 공급해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시"라며 "인간이 존재하는 한 시는 영원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정 시인의 신작 산문집은 여느 시집 또는 산문집과 차별성을 보인다.
시 한 편을 읽고 나면 시인이 이 작품을 지을 때 들었던 생각, 영감을 줬던 경험 등 시작(詩作)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이어 만날 수 있다. 이런 구성으로 정 시인의 역작 60편과 그 이야기들을 감상할 수 있다.
정 시인은 "그동안 시는 시집으로 엮고 산문은 산문집으로만 엮여왔다. 시집과 산문집의 육체는 구분되어야 마땅하지만, 그 영혼마저 구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저는 늘 시와 산문이 한 몸인 책을 소망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는 내가 배고플 때 먹을 수 있는 밥과 같은 것이다. 요즘 다들 시가 어렵다, 독자들과 동떨어져 있다고 하는데 시를 쓰게 된 서사가 있는 이야기들, 그 배경이나 기획에 대한 이야기를 한 상에 같이 차리면 시를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 결과가 이 책이다"라고 부연했다.
신간의 제목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는 정 시인의 유명작 '수선화에게'에 얽힌 산문 마지막에 있는 문장이다.
정 시인은 "외로움은 우리가 사는 데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젊은이든 나이가 들었든, 외롭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외로움을 느끼는 상황을 잘 견디지 못하는 것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저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인데 그 본질을 갖고 '왜?'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우리가 밥을 안 먹었으면 당연히 배가 고프다. 인간이니까 죽음도 외로움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살면서 '왜 외로운가'를 생각하고, 자기 외로움을 부정하고, 원망하면 삶이 힘들어지지 않나. 그래서 저는 외로움을 하나의 본질로써 긍정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본질적으로는 외롭지만 그걸 이해함으로써 외롭지 않을 수 있다. 삶이 외로워도 그 이해를 통해서 스스로 긍정하고 견뎌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책 제목도 이렇게 정했다"고 말했다.
정 시인은 신간에 수록된 작품 중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수선화에게'와 '산산조각'을 꼽았다.
정 시인은 "'수선화에게'는 비교적 많은 독자들이 좋아하고, 애착 갖고 사랑해주는 시다. 왜 독자들이 그 시를 자신의 시로 생각하고 사랑할까 생각해봤다. 연약한 꽃대 위에 핀 수선화의 연노란 꽃 빛이 인간의 외로움의 색채라고 생각하고 수선화에 빗대어 인간의 본질적 외로움을 노래한 시인데, 이것이 외로움을 느끼는 시대를 함께 사는 독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산산조각'에 대해서는 "애착도 있고 스스로 위안도 받는 시"라고 소개했다.
그는 "제가 룸비니 앞에서 흙으로 만든 부처상을 순례 기념품으로 구입해 책상에 뒀는데, 그게 떨어져 산산조각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었다"며 "제 상상 속에서 부처님이 절 부르더니 걱정하는 제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러고는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난 것을 얻은 것 아니냐, 산산조각이 나면 그 산산조각난 상태로 살아가면 되지 않냐'라고 얘기했다. 그 말씀이 가슴에 박혀서 '산산조각'이라는 시를 썼다"고 설명했다.
정 시인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이게 시의 마지막 네 행이다. 이게 저한테 삶의 큰 위안, 힘을 주고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 섞인 삶을 위안하고 살아갈 용기를 주지 않나 싶다"고 전했다.
일흔의 나이, 정 시인은 앞으로 시인으로서의 활동을 후회 없이 보낼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제가 죽을 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저한테 죽음이 찾아왔을 때 '아 내 가슴 속에 아직 써야 할 시가 많은데, 아직 죽으면 안 된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도록 가슴 속에 있는 시를 빨리 쓸 것이다. '나는 지금 죽어도 괜찮다. 써야 할 시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남아있는 시간을 보내려 한다"고 밝혔다.
정 시인은 올해 코로나19 사태를 겪고 있는 이 시대 사람들을 향해서는 '인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인류는 지금까지 질병과 함께 살아왔다. 이미 다가왔기에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인내하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다. 인내의 힘을 누구나 지니고 있기 때문에 참고 기다려야 한다. 무엇을 갖고? 희망을 갖고"라고 했다.
또 "희망은 어디에서 주어질까. 희망은 생명이다. 희망이 없으면 생명을 얻을 수 없다. 이 희망은 절망과 고통 속에 뿌리내리고 자라는 나무, 꽃이라고 본다. 희망은 반드시 고통과 절망을 통해 생산되는 그 무엇이다. 지금까지 많은 질병들을 견디고 극복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코로나19도 반드시 이겨내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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