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내부 논의 중…WTO 회원국 의견도 존중해야
선출 시한 다음 달 9일…앞서 열리는 美 대선 변수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장 합리적인 결정 내릴 것"
[세종=뉴시스] 이승재 기자 =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출 절차가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정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앞서 진행된 선호도 조사 결과에 따라 사퇴 수순을 밟으면 지금껏 도움을 준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게 됐기 때문이다. 반대로 선출 시한 전까지 이 문제를 끌고 가면 회원국 다수의 의견을 무시하는 모양새가 된다.
29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내부에서는 WTO 사무총장 선출을 위한 회원국들의 선호도 조사 결과를 두고 앞으로의 방침을 정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앞서 WTO 사무국은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가 사무총장 선출을 위한 결선 라운드에서 유 본부장보다 많은 표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는 당락을 결정하는 투표가 아니라 단일 후보를 추려가는 과정이다. 회원국 간 협의를 통해 의견 일치 가능성이 낮은 후보자부터 배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회원국 전원이 합의한 사무총장을 선출하게 된다.
회원국 대사들은 선호 후보자를 3명의 트로이카인 WTO 일반이사회(GC) 의장, 분쟁해결기구(DSB) 의장, 무역정책검토기구(TPRB) 의장에게 비공개로 전달하게 된다. 이후 일반이사회 의장이 선호도가 낮은 후보자에게 사퇴를 권유하는 식이다.
이번 결선 라운드에서 적은 표를 받은 유 본부장도 비슷한 권유를 받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선출 시한인 다음 달 9일까지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고 끌고 갈 수도 있다. 특히,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외교력에 따라 판이 뒤바뀔 수도 있다.
부담스러운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회원국들의 선호도 조사 결과를 무시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자칫 미국에 휘둘리는 나라라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심어줄 수도 있다.
정부가 사퇴를 선택해도 미국이 계속해서 나이지리아 후보를 반대한다면 사무총장 자리는 꽤 오랜 기간 비워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미국은 WTO 분쟁 해결 최종심을 담당하는 상소기구 위원들의 선임을 지속적으로 반대해왔다. 이로 인해 WTO는 지난해 말부터 상소기구 운영을 멈췄고 사실상 분쟁해결 기능을 상실했다.
전임인 호베르트 아제베두 사무총장이 돌연 사임을 결정한 이유도 미국의 견제로 인한 WTO 위상 저하가 꼽힌다. 그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 등이 WTO의 개도국 특혜를 받고 있지만 이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며 비판해왔다.
현재 미국과 중국이 선호 후보자를 통해 각각 선진국과 개도국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도 쉽게 발을 빼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금까지 중국은 공개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적은 없지만 정황상 나이지리아 후보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 달 3일 예정된 미국 대선은 변수다.
조 바이든이 집권하게 되면 그간 WTO에 부정적이었던 트럼프 행정부와는 다른 태도를 취할 수도 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의 나이지리아 후보 반대 입장이 바뀔 수 있다"며 "바이든이 당선될 경우 타협점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따라서 미국 대선 전에는 우리 정부도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만약 사퇴를 결정한다고 해도 그간 WTO 사무총장 선출 과정에서 도움을 준 미국의 입장을 감안한 충분한 협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 관계자는 "아직 정부의 입장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결론을 낼 계획"이라며 "미국의 지지 표명이 있었지만 WTO 회원국들의 의사 결정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고민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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