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면 무죄 입증해"…디지털교도소, 초헌법 주장(종합)

기사등록 2020/09/07 19:01:00

디지털 교도소 게시 고대생 "억울하다" 사망

교도소 측, 유족·경찰에 "무죄 입증해라" 주장

"누명이라고만 주장하면, 피해자에 2차 가해"

전문가들 "유죄를 입증하지, 무죄 입증 안 해"

"허위사실 여부, 증명은 운영자가 해야" 지적

경찰, 명예훼손 혐의 수사…"용의자 추적 중"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이기상 기자 = 일명 '디지털교도소'에 게시된 대학생이 억울함을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이 사이트가 헌법과 형법의 대원칙을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지털교도소 운영자의 명예훼손 혐의를 수사 중인 경찰은 운영자로 추정되는 인물을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7일 디지털교도소에 올라온 공지에 따르면, 최근 디지털교도소가 신상을 올린 고려대 재학생 A(21)씨가 사망한 것과 관련해 운영자는 "A씨 유족들과 경찰 관계자분들께 부탁드린다"면서 "고인이 정말로 누명을 썼다고 생각한다면 스마트폰 디지털포렌식과 음성파일 성문대조를 통해 진실을 밝혀달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누명이라고만 주장하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법적인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희 교수는 "법적으로는 유죄를 입증하지 무죄를 입증하지는 않는다"면서 "무죄를 입증하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과 똑같아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이어 "법적으로 무죄입증 책임은 없다"고 덧붙였다.

또 입증 책임도 법적으로는 공소를 제기한 검사에 있기 때문에 디지털교도소 신상공개의 경우 '사적처벌'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봤다.

한 교수는 "형벌권으로 인정되는 것은 국가형벌권"이라면서 "이는 사적으로 복수하거나 처벌할 경우 사회질서가 엉망이 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사이트 자체가 헌법과 형법에서 정한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운영자가 A씨 범행의 증거라며 제시한 텔레그램 대화 장면이나 음성 파일도 정당한 유죄 증거가 아닐 수 있다.

한 교수는 "법정에서도 일방의 주장은 증거로 채택되지 못한다. 대화에 참여했던 사람이나 학생이 자신이 쓴 것이라고 진술을 해야 한다"면서 "그런데 검증 능력이 공인되지 않은 사이트 운영자가 일방 제출하는 것을 유죄(의 증거)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디지털 교도소 홈페이지 캡쳐. 2020.09.05. (사진=디지털 교도소 갈무리)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디지털 교도소 홈페이지 캡쳐. 2020.09.05. (사진=디지털 교도소 갈무리) [email protected]
A씨 사건과 관련해서는 사이트 운영자가 허위사실이 아님을 입증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창현 교수는 "A씨가 유죄이든 아니든, 유죄라고 확정적으로 글을 올렸기 때문에 단순 모욕이 아니라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면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은 가중처벌이 된다. 운영자가 처벌을 덜기 위해 허위사실이 아님을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는 반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디지털교도소 운영자의 경우 이미 한 차례 범죄자의 동명이인인 일반인을 성폭행범으로 지목한 전력도 있다.

지난 7월30일 격투기 선수 출신 김모(30)씨를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공범이라며 신상과 페이스북 주소 등을 공개한 것이다. 디지털교도소 측은 이후 "인터넷에서 돌고 있는 김모님은 동명이인이라는 제보를 받았다"면서 "죄송하다"고 밝힌 후 김씨의 신상을 내렸다.

이 교수는 "사이트 운영자의 경우 이미 여러 명의 신상을 공개하기도 해 한 차례 더 가중처벌이 될 수 있다"면서 "최대 7년6개월의 실형 선고도 가능하다"고 바라봤다.

실제 판결까지 받은 사람을 공개하더라도 문제는 있다. 신상정보 자체가 예민하게 다뤄지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을 통한 신상공개의 경우 경찰청, 경찰서 소속 의사, 교수, 변호사 등 전문가 총 7명으로 구성된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한 교수는 "사이트 운영 취지는 납득이 간다. 우리나라 사법부의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니까 그렇게 했을 것"이라면서 "그렇다고 해서 이런 린치가 허용돼서는 안 되지 않나"라고 말했다.

한편 경찰이 디지털교도소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 등을 수사하고 있지만, 운영자 측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경찰 수사가 쉽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운영자는 "본 웹사이트는 동유럽권에 위치한 서버에서 강력히 암호화돼 운영되고 있다"면서 "대한민국의 사이버 명예훼손, 모욕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하지만 경찰은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을 추적 중"이라면서 "경찰 수사가 어렵다는 것은 운영자의 주장일 뿐"이라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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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면 무죄 입증해"…디지털교도소, 초헌법 주장(종합)

기사등록 2020/09/07 19:01:0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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