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리셋/기본소득]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21세기 新복지 유형 꿈꾼다

기사등록 2020/09/06 06:00:00

최종수정 2020/09/14 09:38:21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기본소득제 사회안전망 부상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이며, 개별적인 보장소득

실험적 정책 시도 있었지만 실현시킨 나라 전무

지속가능한 재정능력 최우선…증세 없인 불가능


[서울=뉴시스] 박미소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긴급재난지원금 현장 신청 첫 날인 지난 5월18일 오후 서울 성동구 금호2.3가동주민센터에서 박스에 선불카드가 놓여있다.2020.05.18. misocamera@newsis.com
[서울=뉴시스] 박미소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긴급재난지원금 현장 신청 첫 날인 지난 5월18일 오후 서울 성동구 금호2.3가동주민센터에서 박스에 선불카드가 놓여있다.2020.05.18. [email protected]

[세종=뉴시스] 오종택 위용성 기자 = 2020년 전 세계를 휩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류는 그 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미증유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사회 곳곳에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났고, 멀게만 느껴지던 4차 산업혁명이 곳곳에 뿌리 내리면서 탄소 경제의 종말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하고 있다.

코로나19는 기존의 복지제도에도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예기치 않은 전염병 위기에 대다수 국가들의 허술한 복지시스템이 민낯을 드러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작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위기를 디딤돌 삼아 선도국가로의 도약을 꿈꾸는 지금, 기본소득제 추진 요구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면서 세계 어느 나라도 섣불리 내딛지 못한 큰 걸음을 옮기려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어째서 기본소득제인가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기본소득이란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이뤄졌던 만큼 국가가 국민에게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몸소 체감한터다.

2009년 출범 이후 10년 넘게 기본소득을 연구하며 그 필요성을 설파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기본소득에 대해 "국가 또는 지방자치체(정치공동체)가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이라고 정의했다. 짧게 말해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균등하게 지급하는 현금'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기본소득에 대해 ▲국가나 지방정부가 모든 구성원에게 지급하는 보편적 보장소득 ▲자산 심사나 노동 요구 없이 지급하는 무조건적인 소득 ▲가구 단위가 아닌 구성원 개개인에게 직접 지급하는 개별적 보장소득이라고 설명한다.

정치권에서는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여야 가릴 것 없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국면에서 복지 확대와 사회안전망 강화가 핵심 이슈로 부상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김종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7월14일 오전 서울 명동 은행회관 뱅커스클럽에서 열린 니어재단 기본소득제와 주거 부동산 정책세미나에서 강연하고 있다. 2020.07.14.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김종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7월14일 오전 서울 명동 은행회관 뱅커스클럽에서 열린 니어재단 기본소득제와 주거 부동산 정책세미나에서 강연하고 있다. 2020.07.14.  [email protected]

코로나19 국면에서 치러진 지난 4·15총선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깜짝 등장했다. 투표 당일 전 여당은 재난지원금 소득 하위 70% 지급을 고집하는 정부를 설득해 전 국민 지급을 성사시켰다. 이것이 여당의 총선 완승에 상당한 밑거름이 됐을 것이란 평가를 부정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내후년 대선을 앞두고 기본소득에 대한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서 대권 구도의 향방이 바뀔 수도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코로나 국면에서 경기도를 넘어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요구하면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독주하던 대권구도를 양강 구도로 바꿔 놓기도 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에서 기본소득제를 들고 나오면서 '표풀리즘' 성향이 짙어지고 있지만 어찌됐건 재난지원금 지급이 국민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만큼 기본소득제 추진 시도 자체도 당장은 환영 받는 분위기다.

◇실험적 접근 있었지만 세계 어느 나라도 범접 못해

기본소득은 1516년 토머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에 등장하는 개념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로부터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를 실현시킨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1980년대 유럽의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기존 복지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기본소득을 논의하기 시작해 몇몇 나라와 도시에서는 실험적인 정책 시도가 있기는 했다.

2009년 독일의 구호단체가 아프리카 나미비아 빈민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고, 비슷한 시기 브라질 상파울루에서도 실험이 시도됐다.

핀란드에서는 기본소득의 고용 촉진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 2017년 실업 상태인 2000명의 20대에게 2년간 매달 560유로, 한화 약 73만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해당 실험에서 기대했던 고용 촉진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매월 일정하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으로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같은 시기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도 3년 기한으로 실험을 시작했으나 뚜렷한 성과 없이 1년 만에 중단됐다. 이보다 앞서 스위스에서는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까지 진행한 바 있지만 76.7%가 반대표를 던지며 성사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독일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위해 120명의 참가자를 선정하는데 무려 150만 명이 신청해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 모았다. 독일의 실험이 앞선 나라와 달리 어떤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할지 알 수 없지만 아직까지도 기본소득은 소설 속 유토피아에만 존재한다.
[제네바=AP/뉴시스] 2016년 5월 스위스 제네바의 한 공터에 '만약 당신의 수입 문제가 해결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글이 쓰여있다. 같은 해 6월 스위스에서는 전 국민에게 보편적인 기본소득을 지급할지 묻는 국민투표를 진행했으나 76.7%가 반대하며 부결됐다. 2020.8.28.
[제네바=AP/뉴시스] 2016년 5월 스위스 제네바의 한 공터에 '만약 당신의 수입 문제가 해결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글이 쓰여있다. 같은 해 6월 스위스에서는 전 국민에게 보편적인 기본소득을 지급할지 묻는 국민투표를 진행했으나 76.7%가 반대하며 부결됐다. 2020.8.28.

◇문제는 재원, 증세 불가피…"국민 공감대 이뤄야"

앞서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실험에서 소비가 늘어나고, 건강과 삶의 만족도가 개선되는 등의 긍정적 신호가 감지됐지만 실제 도입으로 이어지진 못한 이유는 무엇보다 지속할 수 있는 재정 능력을 갖췄느냐의 문제가 있었다.

국민투표까지 갔었던 스위스 사례의 부결 원인도 불확실한 재원 마련 방안과 기존 사회복지제도 재편에 대한 불안감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는 기본소득은 자산 규모에 따라 줄을 세우거나, 개인이 아닌 가구 단위로 묶고, 지급 규모를 달리하는 등 변형·파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엄밀히 따져 타이틀만 기본소득일 뿐 속은 다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 같이 막대한 재정을 지속적으로 투입해야만 실현 가능하다는 점이다.

기본소득을 제도화하기 앞서 무엇보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과연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의 문제다.

코로나 국면을 거치면서 추경을 거듭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이 투입됐다. 이러한 확장재정 기조는 내년에도 이어진다. 최근 몇 년 사이 나랏빚은 눈에 띄게 불었다. 정부는 코로나 위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재정 악화에 따른 건전성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막대한 재정 투입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기본소득을 논한다는 것부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만 본격적으로 공론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다.

기본소득 도입에 따른 기대효과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이를 뒷받침할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누락해서는 안 될 일이다.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만큼 기존 현금성 지원을 재조정 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국가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으려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반대로 경제 위기 속에 조세 저항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계속적으로 부자 증세, 핀셋 증세에만 매몰돼 고소득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세율 조정이나 지출 조정이 이뤄진다면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보편적 복지와 함께 보편적 증세도 함께 논의돼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강남훈 한신대학교 교수는 "기본소득이라는 것이 기존 복지제도를 유지하면서 아동수당이나 노인기초연금 등을 개편해 확장하는 것"이라며 "기존예산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것으로 결국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데 그렇기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성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는 "아직은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가 긴급 구호 재난에 초점을 맞춰지고 있지만 이는 한시적인 것으로 앞으로는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기본소득이 완전히 복지제도시스템 중 하나로 완성하기 위한 논의로 이어질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증세 논의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복잡한 세원을 보다 폭넓고 단순하게 개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수원=뉴시스] 2020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 온라인 전시관 개관.(사진=경기도 제공)
[수원=뉴시스] 2020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 온라인 전시관 개관.(사진=경기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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