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회담·정파 회동·참사 현장 방문·NGO 회의 광폭 행보
"개혁·부패 척결 없이 지원 없다…변화 없으면 징벌적 조치"
'새 총리 지명자' 아디브에 개혁 주문
[서울=뉴시스] 이재우 기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옛 식민지인 레바논에 개혁과 부패 척결을 거듭 압박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6일 외국 정상으로서는 처음으로 베이루트 폭발 참사 현장을 찾아 지원을 약속했다. 그는 개혁과 부패 척결을 선결 조건으로 내걸었고 한달만에 재방문에서 확답을 요구하는 모양새다.
1일(현지시간) 레바논 국영 NNA통신과 LCBI방송, 데일리스타, 프랑스24 등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31일부터 레바논을 방문 중이다. 그는 첫 회동자로 새로운 총리 지명자인 무스타파 아디브가 아닌 중동의 디바라고 불리는 가수 파이루즈(누하드 와디 하다드)를 택했다.
레바논 정치권은 마크롱 대통령의 방문을 불과 몇시간 앞두고 독일 주재 대사였던 아디브를 총리 지명자로 승인한 바 있다. 아디브가 귀국한지 이틀만에 이뤄진 승인은 마크롱 대통령 방문을 앞두고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는 레바논 정치권의 절박함이 담긴 것이라는 해석(AP통신)이 나왔다.
마크롱 대통령이 레바논 정치권의 성의 표시에도 첫 회동자로 비(非)정치인을 고른 것은 레바논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셈이다. 다만 AFP통신은 페이루즈가 기독교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마크롱 대통령의 이번 일정이 기독교인인 레바논 대통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방문 둘째날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과 양자회담과 레바논 건국 100주년 축하 오찬을 했다. 양자회담 화두는 개혁이었다.
아운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새로운 정부 구성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면서 개혁과 부패 척결, 금융 분야 불균형 시정 등을 약속했다. 그는 "종파 지도자가 아닌 국민이 왕이 되는 새로운 레바논의 출발점이 되도록 국가적인 대화를 시작하겠다"고도 다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레바논의 시민국가 전환에 만족감을 드러내면서 프랑스는 개혁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화답했다. 레바논의 경제 재건을 위해 국제사회가 참여하는 회의를 직접 주재할 의향이 있다고도 했다.
다만 그는 레바논 정치권을 향해 새로운 정부가 의회의 협력 아래 조속히 출범하기를 바란다고 쓴소리를 했다. 기독교와 수니파 이슬람, 시아파 이슬람이 분점하고 있는 레바논 정치권은 누가 고위직과 주요 부처를 맡는지를 두고 갈등을 겪는 경우가 잦다.
마크롱 대통령은 레바논에서 광폭 행보를 하고 있다. 이날 프랑스 외무장관과 주(駐)레바논 대사, 언론 취재단을 대동하고 베이루트 항구를 찾아 폭발 참사 잔해 수습을 지원 중인 프랑스군으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은 뒤 레바논 정부의 개혁이 이행되지 않는 한 자금 지원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신속한 정부 구성과 개혁, 부패 척결도 촉구했다.
그는 아디브 총리 지명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면서 개혁 드라이브에 기대감을 표출했다. 레바논 다수당인 친(親)이란 시아파 무정정파 헤즈볼라에 대해서는 '레바논 국민 일부를 대표하는 정당'이라고 언급한 뒤 테러리즘 때문에 레바논의 다른 문제가 희생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후 레바논 재건을 지원하는 유엔과 시민사회단체, 민간단체 대표단과 회의를 주재하면서 비정부기구(NGO)는 유엔의 조율 아래 레바논 정부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원 물자의 행방을 반드시 추적해야 한다고도 했다. 레바논 정부의 투명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레바논 재건을 위해 국제사회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면서 향후 6주안에 국제사회를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이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지원 물자 추적 체계 구축 등 레바논 정부의 투명성 확보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오후 레바논 정치세력들과 회동을 한 뒤 기자회견에서 "내가 모든 정파에 부탁한 것은 정부 구성에 15일 이상이 걸리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라며 "레바논 정치 지도자들이 2주 이내 새 내각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그는 "레바논 당국의 부패가 입증되면 표적 제재가 이뤄질 수 있다"면서 "이 제재는 유럽연합(EU)와 조율 하에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오는 12월 레바논에 세번째 방문을 할 것"이라며 "프랑스는 결코 레바논에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그는 레바논 정부가 8주 안에 약속을 이행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는 레바논에 백지 수표를 주지 않을 것"이라며 중앙은행 감사 등 기한내 개혁이 이행되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원조 승인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1일 공개된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도 "레바논 정파 지도자들로부터 향후 6~12개월 이내 총선 실시 등 개혁과 관련한 신빙성 있는 약속을 받기를 원한다"고 했다. 이 인터뷰는 그가 전날 파리에서 베이루트로 이동하는 동안 이뤄졌다.
그는 "향후 3개월 이내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변화가 이뤄지기를 원한다"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국제 구제금융을 보류하는 것부터 지배계층에 대한 제재까지 징벌적 조치에 나서 국면을 전환하겠다"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이 레바논 현 체제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도 했다.
다만 그는 이란과 거래 끝에 아디브를 선택했다는 비난은 일축했다. 나는 "나는 아디브를 모른다. 나는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며 (레바논 내정에) 간섭하거나 승인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반정부 시위대가 원하는 후보는 헤즈볼라의 동의를 얻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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