諸정파 협력 다짐에도 내각 구성 난항 전망
레바논 의회, 9월2일 내각 구성 협의 착수키로
反정부 시위대 "아디브도 기득권의 일부" 반발
[서울=뉴시스] 이재우 기자 = 레바논이 31일(현지시간) 무스타파 아디브(48) 주(駐)독일 대사를 새 총리로 지명했다. 새 총리 지명은 지난 4일 수도 베이루트에서 인재(人災)로 추정되는 대규모 폭발사고가 발생한 지 27일, 부패하고 무능한 내각에 대한 반발에 밀려 지난 10일 내각이 총사퇴한 지 21일 만이다.
그의 지명은 옛 식민 종주국으로 레바논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프랑스의 임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방문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이뤄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베이루트 복구를 위한 국제사회 지원을 주도하고 있지만 그 대가로 레바논의 대대적인 개혁을 요구한 바 있다.
레바논 국영 NNA통신과 LCBI방송, AP통신 등에 따르면 수니파 무슬림인 아디브는 이날 의회에서 진행된 총리 지명 투표에서 재적 128명 중 90명의 지지를 얻었다. 아디브는 독일에서 레바논으로 돌아온지 이틀만에 총리 지명자가 됐다.
미셸 아운 대통령은 이날 의회 투표 결과에 따라 아디브에게 새로운 내각 구성 권한을 부여했다. 레바논은 대통령이 총리 지명권을 갖고 있지만 총리가 국정을 책임지는 사실상 내각제 국가다.
아디브는 총리 지명 직후 기자들과 만나 "레바논에 주어진 기회는 많지 않다"며 "개혁은 국제통화기금(IMF)와 합의를 통해 즉각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를 위해 전문가로 내각을 구성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아디브는 전날 레바논 최대 정파인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물론 레바논 수니파 최대 정파인 미래운동까지 주요 정파들의 총리 추대를 받았다. 협력도 약속 받았다. 이는 전임자인 하산 디아브 전(前) 총리가 수니파임에도 헤즈볼라의 지지만을 확보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미래운동은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
헤즈볼라 수장인 하산 나스랄라는 아디브에게 경제 복구와 대대적인 개혁을 위한 내각 구성을 촉구했다. 미래운동 지도자인 사드 하리리 전 총리도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전문가 정부를 주문했다. 레바논 의회는 다음달 2일 새로운 내각 구성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AP는 아디브가 새로운 내각 구성권을 확보했지만 내각 구성이 순탄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레바논의 분열된 정치계급은 누가 고위직과 주요 부처를 맡는지를 두고 갈등을 겪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 기득권 타파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대가 아디브를 수용할지도 미지수다. 아디브는 총리 지명자가 된 이후 첫 행보로 폭발사고로 피해를 입은 지역을 방문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폭발 참사에 대한 조사를 가속화할 수 있도록 기록적인 시간에 정부를 구성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시민들은 아디브를 향해 "당신은 지배계급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외쳤고 아디브는 차에 올라 급히 떠나야만 했다.
아디브의 지명은 마크롱 대통령의 방문을 목전에 두고 이뤄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6일 외국 정상으로서는 처음으로 베이루트 사고 현장을 찾아 지원을 약속했다. 다만 레바논 정치권에 개혁과 부패 척결을 요구했다. 그는 다음달 1일 다시 방문해 답을 듣겠다고도 한 바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물론 IMF와 주요국 정상들은 레바논이 개혁을 단행하기 전에는 지원할 수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레바논은 지난 3월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IMF와 구제금융 지원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레바논 정치권이 IMF가 요구한 개혁안을 수용하는 것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답보 상태다.
AP는 레바논 주요 정치세력들이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교관인 아디브를 신속히 총리 지명자로 내세운 것은 마크롱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는 절박함이 담긴 것이라고 풀이했다.
한편, 아디브는 지난 2013년부터 최근까지 주독 대사를 지냈다. 과거 전직 총리인 나지브 미카티 총리의 고문을 역임했고 2005~2006년 레바논 선거법 개정 위원회에 참가했다. 법과 정치학 박사 학위를 소지한 아디브는 한때 레바논과 프랑스 대학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