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의협, 의대정원 증원 등 의견 조율 실패
인턴·레지던트, 21일부터 무기한 파업 돌입
의협, 26~28일 파업 후 무기한 집단행동 계획
의협 "코로나와 투쟁은 별개"…필수 인력 유지
대전협 "전공의는 필수인력 아니다"…전체 파업
전공의·의대생, 국시 거부·사표 제출 등 초강수
"1년간 의사 수급 안되면 의료 시스템 붕괴"
[서울=뉴시스] 안호균 기자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2차 대유행의 초기 단계에 진입한 상황에서 이번주 의료계가 무기한 집단 파업에 돌입한다. 의료계는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등 주요 정책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파업을 지속한다는 입장이어서 진료 공백 사태가 우려된다.
20일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에 따르면 의료계는 오는 21일부터 순차적으로 집단 행동에 돌입할 예정이다.
인턴과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은 순차적으로 무기한 업무 중단을 시작한다. 인턴과 4년차 레지던트는 21일, 3년차 레지던트는 22일, 1·2년차 레지던트는 23일 각각 업무를 중단한다. 대전협은 지난 두번의 집단 행동(7일·14일)과 달리 파업이 시작되면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업무에 복귀하지 않는다는 계획이다.
의협은 오는 26~28일 사흘간의 총파업을 단행한다. 지난 14일 파업 때는 참여율이 30% 대에 그쳐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협은 교수, 전공의, 개원의 등 의료계 모든 직역이 단체 행동에 공감하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참여율이 훨씬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의협은 ▲의대 정원 확충 ▲공공의대 설립 ▲한방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비대면 진료 육성 등 이른바 '의료 4대악 정책'이 철회되지 않는다면 파업을 강행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사흘간의 파업에서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정부와 의협은 최근 코로나19 사태가 급격히 악화되자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19일 긴급 회동을 열었지만 입장차만 확인하고 헤어졌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복지부와 의협의) 의견이 서로 달랐다"며 "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하자고 한 반면, 의료계에선 모든 정책을 철회하자고 해 의견 격차가 있었다"고 말했다.
의협은 정부가 이번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고 지적한다.
김대하 의협 대변인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는다고 해서 만났는데 복지부가 기존에 갖고 있던 '원안대로 추진'이라는 전제 조건에는 변화가 없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의 요구는 단순하다.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에 분명한 결함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정책을 철회하고 코로나 극복에 집중하자는 것"이라며 "그리고 어느 정도 상황이 안정된 시점에서 협의체를 만들어 취약지 의료 불균형 등에 대해 논의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의협은 앞으로의 파업에서도 응급실, 중환자실 등에 근무하는 필수 인력은 현장에 남겨 진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김대하 대변인은 "상반기 대구·경북으로 달려간 의사들도 정부가 좋아서가 아니라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으니 자발적으로 갔던 것"이라며 "선별진료소든 생활치료센터든 의사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그런 곳에는 다 달려갈 것이다. 코로나19는 정부와의 갈등과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번 단체행동 때도 자발적으로 필수적인 기능은 유지를 했었다. 앞으로의 단체 행동에서도 의료 다란이 유발되는 것들은 없도록 노력하겠다"며 "국민들께 피해를 끼치려고 하는 파업이 절대 아니고 우리의 합리적인 주장이 무시되고 있기 때문에 항의의 뜻을 표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입장은 훨씬 강경하다.
대전협은 지난 두 번의 단체행동과 달리 모든 진료과목 전공의들이 업무 중단에 참여토록 한다는 방침이다.
김형철 대전협 대변인은 "전공의는 필수 인력과는 상관이 없다.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지난 7일 97%가 병원을 나갔는데 외래 환자들조차 줄을 서지 않을 정도로 잘 돌아갔다"며 "전공의가 나간다고 해서 필수 기능이 마비된다는 것은 국민들을 두렵게 만들려는 전략일 뿐"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은 사직서 작성과 국시 거부 등의 수단을 통해 정부에 강력하게 대항하겠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의료 인력 공급에 공백이 생길 위험이 큰 상황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40개 의대 본과 4학년생들은 9월1일로 예정된 의사 국가고시(국시)를 거부하기로 했다. 대상자 3036명 중 91.6%인 2782명이 국시 거부에 참여했다.
또 대전협은 의료계의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인턴들의 전공의 시험 거부, 레지던트 4년차의 전문의 시험 거부, 전체 전공의의 사직서 작성 등을 순차적으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김형철 대변인은 "당연히 우리가 정부 관계자들보다 코로나 환자에 대한 심각성을 훨씬 많이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를 설득하는 것"이라며 "코로나19를 잘 극복하기 위해 총력을 쏟아부어도 모자랄 판에 하루하루 의료인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말들을 쏟아내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의료 현장에서는 필수 인력이 현장에 남는다면 당장 코로나19 대응에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극심한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코로나19 사태가 내년 이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의료 인력의 신규 공급은 사실상 '제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필수 인력이 남는다면 당장 선별진료소나 음압병실 운영 등에는 큰 지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코로나19 환자가 폭증하고 파업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큰 혼란이 빚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일년 동안 의사 수급이 안되면 대학병원의 의료 시스템은 붕괴한다고 본다"며 "정부가 상황을 너무 악화시켰다. 사태가 내년까지 지속되면 코로나19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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