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비서실·절대적 인사권, 박원순 사태 키웠나

기사등록 2020/07/20 14:27:02

비서실 폐쇄적 운영…내부 차출 관행된 듯

지자체장 제왕적 위치…기관장 '보위 문화'

인사권자에 대한 충성으로 쓴소리 어려워

[서울=뉴시스] 박미소 기자 = 10일 오전 서울시청 시장실 앞에 고 박원순 시장의 사진이 보이고 있다.2020.07.10.  misocamera@newsis.com
[서울=뉴시스] 박미소 기자 = 10일 오전 서울시청 시장실 앞에 고 박원순 시장의 사진이 보이고 있다.2020.07.10.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배민욱 기자 =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중심에는 서울시 비서실이 있다.

박 전 시장을 고소한 전 비서 A씨는 동료 공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비서관'에게 부서를 옮겨달라고 했지만 번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씨의 고소사실이 알려진 이후 서울시 전·현직 고위 공무원과 별정직, 임기제 정무 보좌관, 비서관 중 일부는 당사자에게 연락을 취하는 등 회유·압박 정황도 나왔다.

박 전 시장이 직속으로 관리하던 비서실의 폐쇄적인 운영이 문제 해결보다는 이번 사태를 키우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절대적 인사권을 가진 지자체장의 제왕적 위치도 사태를 막지 못한 이유로 꼽히고 있다.

20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시 비서실은 다른 부서와 비교해 소위 깜깜이 운영으로 불릴 만큼 폐쇄성이 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씨가 근무한 4년간 비서실의 운영을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채용 과정은 폐쇄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장 비서실에서 의전과 일정을 담당하는 비서직은 시청이나 산하기관 소속 공무원 중에서 시 인사과가 추천하는 방식으로 뽑아왔다. 하지만 2011년 시민운동가 출신인 박 전 시장 취임 이후에는 내부 차출 방식이 관행이 된 것으로 보인다.

직원을 비서실로 발령 낼 때도 따로 공고를 내는 것이 아니라 비서실 주관으로 면접을 진행해 뽑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측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는 비서직에 지원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가 마련돼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2020.07.10.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가 마련돼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2020.07.10. [email protected]
이 같은 환경으로 A씨가 다른 부서로 이동하기도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 안팎에서는 특수한 업무와 조직 문화로 구축된 비서실 분위기 상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해결하기 보다는 오히려 감췄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A씨 측의 기자회견과 입장발표문을 살펴봐도 A씨는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부서 이동도 요구했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A씨의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는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는 박 전 시장에게 받은 피해를 여러 차례에 걸쳐 호소했고 동료 공무원이 (시장으로부터) 전송받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며 "비서관에게 부서를 옮겨줄 것을 요청하면서 이런 성적 괴롭힘을 언급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A씨를 돕고 있는 여성의전화와 성폭력상담소가 16일 발표한 '서울시 진상규명조사단 발표에 대한 입장' 자료에 따르면 A씨는 '승진하면 다른 부서로 이동한다'는 박 전 시장의 인사 원칙을 근거로 전보 요청을 했다.

A씨는 "박 전 시장이 '누가 그런 걸 만들었느냐', '비서실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며 인사이동을 만류하고 승인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A씨는 2016년 1월부터 반기별로 인사이동을 요청했지만 좌절된 후 지난해 7월 근무지를 이동했다.

A씨의 고소사실이 알려진 이후 서울시 전·현직 고위 공무원과 별정직, 임기제 정무 보좌관, 비서관 중 일부는 당사자에게 연락을 취하는 등 회유·압박 정황도 나왔다.

이들은 "너를 지지한다"면서도 "정치적 진영론에, 여성단체에 휩쓸리지 말라"고 조언을 하거나 "힘들었겠다"고 위로하면서 "기자회견은 아닌 것 같다"고 만류했다고 한다. 또 "문제는 잘 밝혀져야 한다. (그런데)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힘들 거야"라며 피해자 압박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절대적 인사권을 가진 지자체장의 제왕적 위치와 조직에 만연한 기관장 '보위 문화'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서울=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2020.07.13.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2020.07.13. [email protected]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는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시장의 단순한 실수로 받아들이라고 했다"면서 "'비서 업무는 시장 심기 보좌하는 역할이자 노동'이라며 피해를 사소하게 만들어 더 이상 말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비서실이 있는 서울시청 6층은 박 전 시장 최측근으로 구성돼 있다. 정무라인인 이들을 소위 '6층 사람들'로 부른다. 박 전 시장은 자신의 정책을 구현하고 서울시정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관련 경력자들을 직접 공무원으로 임명했다.

지자체장은 절대적 인사권을 가진 제왕적 위치에 있다.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인사권자에게 충성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인사권자의 성희롱·성추행 가해 상황을 목격해도 쓴소리를 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외부에서 영입된 박 전 시장 정무라인 인사들 대부분이 정치권과 시민단체 출신이다. 서로 간 동지적 유대감에 비판과 직언보다는 박 전 시장 보호에 더 신경 썼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임순영 젠더특보는 박 전 시장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소식을 접한 뒤 이를 해결하기 보다는 직접 보고하고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장 개인의 보좌에 더 신경 쓴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1월 박 전 시장이 발탁한 임 특보는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이다. 이들은 '희망제작소'에서 연을 맺었다. 다른 정무라인 인사들은 사태가 발생한 후 침묵으로 일관하며 진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

시 관계자는 "비서실은 박 전 시장의 측근들이 근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폐쇄적인 구조와 환경이 이번 사태를 키운 바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시 관계자는 "박 전 시장이 쓴소리를 싫어하는 경향이 많았다. 어느 누구도 쉽게 직언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이런 우려들이 이번 사태를 막지 못한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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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2020/07/20 14:27:02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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