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 한일 갈등 재고조에 비상체제 재가동
삼성 '평택 신규투자', SK '中 설비투자' 등 차질 우려
[서울=뉴시스] 고은결 기자 = 최근 한국과 일본의 외교 갈등이 다시 심화할 조짐을 보이자 국내 반도체 업체들도 덩달아 긴장하고 있다.
한일 관계는 지난 2일 우리 정부가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절차 재개를 선언하며 긴장감이 돌았으며, 한국 법원이 일본 전범기업의 국내 자산 압류에 대한 법원 결정문을 공시송달하기로 결정하며 더욱 얼어붙고 있다.
반도체 업계는 올 들어 코로나19 사태, 미중 분쟁 등 변수로 불확실성이 치솟은 상황에서 한일 관계 위기까지 겹치자 서둘러 비상경영 체제를 재가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최근 한일 갈등이 재고조할 것으로 예상되자 내부적으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논의 중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 법원이 일본 전범기업의 국내 자산 강제매각을 위한 절차에 돌입한 데 대해 4일 "모든 선택지를 검토하겠다"며 보복 대응을 시사했다. 이에 일본의 추가 수출 규제 강화 조치 가능성에 대한 우려까지 대두하며, 국내 업체들은 다양한 시나리오별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전 세계 해외법인 등을 통한 협력사 상황 등 관련 정보 수집도 진행 중이다.
업계에선 한일 갈등이 재점화하며 국내 업체들의 최근 투자 행보까지 타격을 받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달 평택캠퍼스의 극자외선(EUV) 파운드리 생산라인 투자, 이달 초 낸드플래시 생산라인 투자 계획을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지난 4월 중국 우시 공장 설비 투자를 위해 중국 법인에 3조3000억원을 대여하기로 결정했다.
기업들은 대외 악재가 겹치는 상황이 길어지면 실물 경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업계는 지난해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 이후 다각화 노력이 진행 중이나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앞서 일본 정부가 지난해 7월 대(對) 한국 수출규제 방침을 밝힌 이후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부품·소재 국산화, 수입처 다각화를 통해 발 빠르게 대응함으로써 실제 생산라인 가동 중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
다만, 이 같은 조치에도 수율 활보를 위한 최적화에는 상당한 시간과 기회비용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소재는 수년, 설비와 부품은 그 이상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한국에 수출할 때 일반 포괄허가 대상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바꾼 소재는 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이다.
EUV용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여전히 대부분 일본에 의존하는 실정으로 알려져 있고, 리소그래피 등 핵심 공정 장비는 네덜란드 ASML 등 유럽과 니콘 등 일본이 거의 독점하는 상황이다.
아울러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성장 전략이 차질을 빚으면 맹추격 중인 중국 반도체 기업과의 격차가 좁혀질 수도 있다. SK하이닉스는 2분기 내 128단 낸드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고,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 업계 최초로 100단 이상의 V낸드 양산에 돌입했다.
이 가운데 최근 중국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는 올해 말에 128단 적층형 낸드플래시 메모리 양산을, CXMT는 연내 17나노 공정 기반의 D램 양산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일본 수출규제라는 큰 고비를 겨우 넘겼는데 한일 갈등이 다시 불붙으며 불확실성이 장기화되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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