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오디션 예능 '더블캐스팅', 왜 '미스터트롯'처럼 못떴나

기사등록 2020/04/20 15:56:52

[서울=뉴시스] tvN '더블캐스팅' 멘토. 2020.04.20. (사진 = tvN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tvN '더블캐스팅' 멘토. 2020.04.20. (사진 = tvN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케이블채널 tvN '더블캐스팅'은 태생부터 '양날의 검'을 품고 있었다. 소수 장르의 마니아에 초점을 맞추느냐, 대중성에 무게를 두느냐. 

공개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그간 소외됐던 뮤지컬 앙상블을 조명, 주연으로 발탁하자는 기획 의도가 신선했다.

지난 2018년 케이블채널 MBC플러스 '캐스팅 콜'이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주역을 공개 오디션으로 뽑은 적은 있지만, '더블캐스팅'은 앙상블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

게다가 tvN 운영사인 문화 기업 CJ ENM이 제작하는 뮤지컬 '베르테르'의 타이틀롤을 뽑는 만큼, 효율적이기도 했고 시너지도 기대됐다.

하지만 뮤지컬의 서사적 맥락에 익숙해진 뮤지컬 마니아들에게 단편적인 노래만 등장하는 '더블캐스팅'은 부족해보였다.

게다가 일부에서 지적한 만큼 뮤지컬배우의 매력은 노래, 춤, 연기가 맞물려 캐릭터의 매력을 살리는 것에 있는데 '노래자랑'에 가까운 가창 대결은 이내 식상함을 안겼다.

장르적 특성상 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지도 못했다.

지난 2월 22일 첫 방송을 시작해 이달 18일 나현우를 베르테르로 선정하기까지 시청률 2%를 넘기지를 못했다. 막판에는 방송되는 요일은 달랐지만, 뮤지컬배우들을 비롯 가창력으로 무장한 이들이 대거 출연한 JTBC '팬텀싱어' 초반 방송과 맞물리며 화제성도 빼앗겼다.

그럼에도 '더블캐스팅'은 실패작으로만 낙인을 찍기에는 아깝다.

기획 자체를 비롯해 의미를 톺아볼 수 있는 부분이 여럿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뮤지컬 마니아들이 이 프로그램을 욕하면서도 끝까지 지켜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꽃봉오리', '랭보'의 '취한 배', '무한동력'의 '모르겠어', '마마, 돈 크라이'의 '달콤한 꿈', '귀환'의 '내가 술래가 되면' 등 창작 뮤지컬 넘버를 TV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만해도 뮤지컬 팬들에게는 호사였다.

특히 김원빈이 방송에서 부른 뮤지컬 '탈'의 '열두 개의 달'은 뮤지컬 마니아들도 잘 알지 못하는 '발견'이었다.

[서울=뉴시스] 나현우. 2020.04.20. (사진 = tvN 캡처)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나현우. 2020.04.20. (사진 = tvN 캡처) [email protected]
'더블캐스팅' 이민정 PD는 뉴시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뮤지컬 마니아와 관련 "프로그램 기획 단계부터 지금까지도 가장 어려운 숙제인 것 같다"고 했다.

"TV라는 매체를 통해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하고자 노력했는데 그러다 보니 원래 뮤지컬을 사랑해주시는 분들에게는 깊이감이 부족한 접근처럼 보였을 거 같다"는 것이다. "방송 후 댓글이나, 시청소감 등을 통해 주신 소중한 의견들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조금이나마 제작하는데 반영해보고자 노력했다"고 전했다.

'더블캐스팅'은 편집이 특성인 방송의 성격상, 극 전체보다 넘버 하나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제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 PD도 "시청자들은 한 장면만을 보는 것이기에, 극 전체를 볼 때의 감동을 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 PD는 "자료와 배우의 인터뷰 등을 통해 이 장면이 극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최대한 설명하고자 노력했다"면서 "가끔은 극의 전체 내용보다는 배우 개인의 감정이나 히스토리와 함께 봤을 때 감동이 배가 되는 경우가 있어서 그럴 경우에는 개인의 이야기를 더 담아보려 했다"고 설명했다.
 
마니아들 사이에서 가장 아쉬운 목소리가 나왔던 회차 중 하나는 주크박스 넘버 대결이었다.

이영훈이 작곡한 곡들을 엮은 '광화문 연가', 김광석이 부른 노래를 엮은 '그날들' 등이 그곳이다. 뮤지컬 넘버로 관객을 만나기 전 상당수 대중의 귀에 익숙한 노래들. 물론 뮤지컬스럽게 편곡된 노래들이었지만, 이미 수 많은 경연 프로그램에 등장한 명곡들이 왜 뮤지컬 관련 프로그램에서 다시 등장해야 하는지 의문이 제기됐다.

이 PD는 "뮤지컬을 애정하시는 분들에겐 더 뮤지컬적인 곡들이 소개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충분히 있으셨으리라 생각된다"면서 "반면 일반 시청자들에게 10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생소한 곡들만 소개하는 것 또한 어렵다 느껴졌다"고 털어놓았다.

[서울=뉴시스] tvN '더블캐스팅' 톱4. 2020.04.20. (사진 = tvN 캡처)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tvN '더블캐스팅' 톱4. 2020.04.20. (사진 = tvN 캡처) [email protected]
"익숙한 곡들을 뮤지컬 배우의 감성으로 표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마련한 라운드였다. 극을 아시는 분들은 임규형 배우의 '사랑했지만'을 들으시면서 '그날들'의 무영을 떠올렸다는 글들을 봤다. 반면 극을 모르시는 분들도 낯설지 않게 무대를 지켜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여겼다.

또 출연자를 돕고 평가도 해야 하는 '멘토' 역을 맡은 뮤지컬배우 차지연의 남편인 앙상블 윤은채가 출연한 점에 대해서도 온라인 상에서는 갑론을박이 많았다. 차지연은 결국 그가 출연했을 때 심사를 포기하기도 했다. 윤은채 배우는 본선 격인 톱12에 뽑히지 못했다. 

이 PD는 "누군가의 남편이기 이전에 앙상블 배우 윤은채로 지원서를 냈다. 아내가 멘토여서 경연에 지원조차 못하는 건 안된다고 생각했다. 경연에 참가한 모든 분들에게도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공정히 심사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차지연을 비롯 5명의 멘토 군단은 뮤지컬계 어벤저스에 가까웠다. '뮤지컬계 대모'로 통하는 이지나 연출과 스타 배우 엄기준·마이클 리·한지상 등이었다.

배우에 편중된 구성은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난보다 알맞은 비판, 충고 보다는 적당한 조언 등 애정 어린 시선으로 후배들을 대하는 모습은 따듯했다.

프로그램의 편집도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난무한 '악마의 편집'을 지양하고 응원의 태도를 지향하며 멘토들과 연대했다. MC를 맡은 뮤지컬배우 신성록은 1열에 앉은 관객의 심정으로 출연자들의 무대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프로그램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최종회에서 멘토와 출연자들의 듀엣 무대도 인상적이었다. 마이클 리가 자신이 그랭구아르를 연기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부른 '대성당들의 시대'를 김지훈과 나눠 부르고, 차지연이 자신이 주연을 맡은 뮤지컬 '호프(HOPE)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에 앙상블로 출연했던 김지온과 이 곡의 넘버 '빛날 거야 에바 호프'를 함께 부르는 장면은 뭉클함을 안겼다.

이 PD는 "후배들이 무대 위에서 마음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함께 즐기시고 때로는 후배 배우들의 아쉬운 부분들을 따끔하게 지적해주시면서 같이 작업할 후배 배우님들을 끌어주고 그들이 빛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마음으로(심사위원이 아닌) 진정한 멘토로 처음부터 끝까지 임해주신 게 강점"이라고 짚었다.

[서울=뉴시스] tvN '더블캐스팅' 멘토. 2020.04.20. (사진 = tvN 캡처)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tvN '더블캐스팅' 멘토. 2020.04.20. (사진 = tvN 캡처) [email protected]
'더블캐스팅'에 대해 일부에서 비판적 태도를 취한 부분 중 하나는 중소극장에서 주조연을 맡은 배우가 출연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배우들이었고, 그들을 너머 앙상블 배우들에게 더 집중하려고 했던 점은 인정해줘야 할 법도 하다.

이 PD는 "몇몇 제작사의 임금체납 문제나 상대적으로 적은 페이 현장에서 겪는 감정적인 부분들, 불안정한 생계... 그리고 무엇보다 기회의 부족이 앙상블 배우분들의 가장 큰 고충이 아닐까 생각한다"면서 "무대에 서서 혼자 넘버를 끝까지 부른 것만으로 감격하시는 많은 앙상블 배우님들을 보며 이 분들이 더 반짝반짝 빛날 기회들이 많이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실제 톱 4에 진출한 김원빈은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을 과감하게 선곡, 끝까지 안정되게 소화하며 호평을 듣기도 했다. 조승우, 홍광호, 박은태 등이 이미 불러 아우라가 짙어진 탓에 기성 배우도 고르긴 힘든 곡이었다.

'더블캐스팅' 남성 앙상블 편이 끝나자마자 한편에서는 여성 앙상블 편을 기대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실제 CJ ENM이 제작한 또 다른 뮤지컬 '보디가드'는 여성이 타이틀롤이기도 하다. 이 PD는 "기회의 측면에서 어쩌면 여성 앙상블 배우님들이 더 절실하지 않나 생각한다. 저희가 놓친 부분들, 보완할 부분들을 잘 다듬어서 여성 앙상블 편도 만들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이 PD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뮤지컬의 매력에 대해 더 알았다. "같은 극, 같은 배역이어도 연기를 하는 배우, 당일의 관객 등에 따라 그날 그날 호흡이 달라진다는 점이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뮤지컬은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장르"라며서 "이런 매력적인 뮤지컬이 일반 대중들에게 더욱 사랑받을 수 있게  뮤지컬이라는 장르와 뮤지컬 배우들을 지속적으로 소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방송을 만드는 저희가 해야할 가장 큰 과제"라고 여겼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앙상블을 향해서는 "저희 제작진을 믿고 프로그램에 지원해주시고 출연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가지고 계신 열정과 재능들을 저희가 다 담아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쉽고 죄송하다. 저희 프로그램을 발판으로 앞으로 무대 위에서 뵙게 될 기회가 많아지길 기도한다"고 바랐다.

[서울=뉴시스] '더블캐스팅' 최종회. 2020.04.19. (사진 = tvN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더블캐스팅' 최종회. 2020.04.19. (사진 = tvN 제공) [email protected]
공연평론가인 지혜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더블캐스팅'에 대해 "일반 시청자들이 앙상블배우에 대해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뮤지컬 배우 그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봤다.
 
"그들이 부르는 넘버들, 특히 다양한 창작공연의 넘버들이 소개되면서 생생한 심사평들을 통해 작품과 넘버가 자연스레 분석된 점이 재미이자, 소소한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베르테르의 주연배우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뮤지컬시장과 뮤지컬배우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고 더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는 의의가 있고, 시즌2가 있다면 여자앙상블에게도 꼭 기회가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더블캐스팅' 우승자인 나현우는 오는 8월 광림아트센터 BBCH 홀에서 막을 올리는 '베르테르' 20주년 기념 공연에 타이틀롤로 나서게 됐다. 주로 앙상블로 활약하던 그가 주역을 맡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엄기준이 같은 역에 캐스팅된 상황이다.

조광화 연출, 구소영 음악감독 등 내로라하는 창작진이 뭉쳤다. 구 음악감독은 앞서 '더블캐스팅' 제작진에게 "창작진 모두가 협업해 만들어가는 작품인 만큼 누가 우승자가 되어도 베르테르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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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2020/04/20 15:56:52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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