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영변-제재 해제' 제안에 美 '영변+α' 요구로 결렬
단계적vs포괄적 비핵화 접근법 차이…연말까지 지속
올해 美 대선…실질적 비핵화 협상 재개는 내년 이후
양측 유연한 접근 없이는 협상 결과 낙관하기 어려워
하노이에서 북한은 영변 핵시설 완전 폐기와 민생분야 대북제재 해제를 교환하자고 제안한 반면, 미국은 제재 해제를 위해서는 영변만 아니라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폐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미국은 비핵화의 최종 상태를 담은 포괄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려 했지만, 북한은 비핵화에 대응하는 미국의 상응조치를 단계적으로 합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노이에서 확인된 이 간극은 이후에도 좁혀지지 않았다.
북미는 하노이 결렬 직후부터 책임 공방을 벌였고, 비핵화 접근법의 차이는 선명해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에 연말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오라고 촉구했다. 미국측에 북한의 비핵화만 앞세우는 협상 태도를 전환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에 미국은 북한이 먼저 진정성 있는 비핵화 행동을 보여야 한다며 기존의 선(先)비핵화 협상 전략을 수정하지 않겠다고 맞받았다.
협상 교착 국면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6월30일 판문점에서 가진 깜짝 회동으로 풀리는 듯 했다. 당시 북미 정상은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한 실무협상을 조속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김명길 대사가 북측 실무협상대표로 나설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무협상 개최 소식에는 진전이 없었다. 오히려 북한의 잇따른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북미 대화의 모멘텀은 좀처럼 잡히지 않기만 했다.
미국의 기본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판단한 북한은 협상 채널을 닫다시피 하고 압박을 거듭했다. 대조선 적대 철회를 요구하는 담화에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 비난 표현이 등장했고,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 '중대 시험'이 진행됐다. 북한이 연말 시한을 앞두고 ICBM 발사에 나설 수 있다는 위기론이 제기되면서 한반도의 긴장 수위는 최고조로 끌어올려졌다.
다행히 연말은 도발 없이 지나갔지만 북한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대북제재라는 난관을 자력갱생으로 '정면돌파'하겠다고 강조하는 한편,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에 따라 한미연합훈련이 진행되는 오는 3월 북한이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북한이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사활을 걸고 있어 당분간 도발 가능성은 낮아진 상태다.
북한도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마감하고,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성대하게 기리기 위해 경제성과 도출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 협상 대가로 대북제재 완화를 얻어내는 것은 힘든 만큼 증산, 기술 선진화 등을 독려하는 데 국가 역량을 집중할 전망이다. 보건 인프라가 취약한 북한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국경폐쇄 조치를 취하고 대중 교류를 제한하고 있어 경제 살리기에 더욱 안간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양국의 협상 담당자들이 대거 교체된 것도 당분간은 대화 재개 가능성이 낮은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싱가포르·하노이 회담의 최전선에 있던 김영철 통일전선부장과 리용호 외무상을 직에서 배제하고 대미 협상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장금철과 리선권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미국 실무협상팀도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의 부장관 승진, 알렉스 웡 대북특별부대표의 유엔 발령 등으로 모두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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